(1)정책은 딜레마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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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있는 여의도의 문법으로 볼 때 정치인과 참모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정무형’이고, 다른 하나는 ‘정책형’이다. 정무(政務)란 본래 정치나 국가 행정에 관련된 사무란 의미지만, 실제로 사용되는 의미는 그보다 넓다. 정확한 정의가 어려울 정도다. 청와대의 ‘정무’수석은 정부와 정당 간의 가교역할을 한다. 지자체의 ‘정무’부지사·부시장은 모호한 의미만큼 역할도 다양하다. ‘정무형’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아마도 ‘정무 감각’의 용례와 가장 유사할 것이다. 정무 감각이란 정치적으로 주목을 받고 형세를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능력 정도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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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보면 정치인들은 대다수가 ‘정무형’이다. 정무에 매우 능한 정치인은 ‘전략통’이란 별칭도 얻는다. 정무에 능하면서 간혹 정책 이해도가 있는 정치인은 ‘정책통’으로 불린다. 정책에 능하면서 정무에 무능한 이는 애초에 선출되기가 어렵다. 참모들 중에선 정무에 밝지 않은 ‘정책형’도 소구력이 있다. 정치인은 법안과 예산, 정부 정책을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인의 신임을 얻는 참모는 ‘정무형’인 경우가 많다. 참모가 자기 소신을 가지고 정책을 현실화하려면 정책 전문성은 물론 정무 감각까지 겸비해야 한다.

언론의 정치 보도도 정책보다는 정무에 집중한다. 현안에 대해서도 정무적 공방, 즉 갈등에 주목한다. 최근 논란인 장애인 이동권 의제에서도 지하철 승강기와 저상버스, 콜택시 등의 정책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간의 공방을 주로 보도하는 식이다.

정책은 예산과 법규의 창의적 조합

실제로 장애인 이동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정책이다. 여기서 정책이란 예산과 법규의 창의적인 조합이다. 정무적 공방은 어떤 정책을 선택할 것인가에 영향을 미칠 때만 의미가 있다. 정치인들은 정책에 의미 있는 영향을 주지 않더라도 정무적인 공방을 통해 인지도를 얻는다. 논란의 중심에 설수록 권력을 가질 가능성이 높은 정치인으로 빠르게 성장한다.

이런 정치 풍토로 인해 정치인 다수는 정책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정무적 감각만 비대하게 발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정치인들과 정당이 집권하면 그때부터는 정책 전문성이 필요하다. 세상의 온갖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구를 받기 때문이다. 그 시점에 민주당 계열의 정부는 주로 학계와 시민사회의 전문가들에게 정책 생산을 의뢰했고, 국민의힘 계열의 정부는 주로 관료들에게 정책을 의탁했다. 과거보다는 국회의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 등의 역량이 강화되고, 정당 내에 정책 연구기관과 정책 전문가의 역할이 커지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정책은 외주 신세를 면치 못한다. 수주 주체에 따라 정책의 특징도 뚜렷하다. 민주당 계열 정부에선 효과를 예측하지 못한 설익은 정책을 다수 내놨다. 국민의힘 계열 정부는 과거 관념에 사로잡히거나 문제에 대응하기엔 현저히 미진한 대책을 내놓곤 했다. 정책이 주류화되지 못하는 국회와 정당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정치가 사회 문제를 개선하는 ‘본래의 역할’을 회복하려면 정치의 중심에 정책이 있어야 한다. 정치 공론장의 중심에 정책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정책이 있는 시사평론, 정치평론도 늘어야 한다. 그게 바로 필자가 이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다. 정책이 있는 시사평론, 더 나아가 새로운 관점으로 정책을 평가하는 정치평론을 통해 정책 논의를 주류의 마당으로 끌어올리고자 한다.

선악 구도에서 벗어나야

이 연재는 ‘딜레마’의 관점에서 정책을 하나씩 다룰 예정이다. 그 전에 벗어나야 할 게 있다. 바로 선악 구도로 정책 바라보기다. 영국의 오래된 속담 중에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을 정책 분야에 적용하면 “선한 정책이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2022년 4월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여러 ‘선한 정책’을 폈다는 평가를 받지만,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상징하듯 정책의 총체적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대통령 취임 후 첫 방문지였던 인천국제공항에서 발표한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으로 상징되는 ‘소득주도성장’, 투기 차단을 위해 다주택자들에게 무겁게 과세한 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 개편 등은 모두 선한 취지에서 비롯된 정책이다. 이 정책은 추진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을 야기했고, 추진 동력은 갈수록 약해졌으며 성과는 미미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만이 ‘선한 정책과 나쁜 결과’의 사례는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보금자리 주택, 박근혜 정부의 맞춤형 보육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도 선뜻 ‘선한 정책’이라고 평가하긴 어렵지만, 추진 주체들은 좋은 취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중 국민 다수에게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 정책은 전무하다.

이쯤 되면 이상하지 않은가. 왜 좋은 취지의 정책이 자주 나쁜 결과로 귀결되는 것일까. 그런데 어찌보면 당연하다. 모든 정책은 기안자의 좋은 취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을 평가할 때 취지를 따지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다. 제대로 원인을 파악하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정책의 결정 과정에 주로 영향을 미치는 건 무엇일까. 정책의 정당성일까, 아니면 정책의 효과일까.

안철수 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왼쪽)이 4월 18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에서 열린 제6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공동취재단

안철수 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왼쪽)이 4월 18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에서 열린 제6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공동취재단

최근 현안인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을 예로 들어보자. 더불어민주당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나누면 중립성이 훼손된 검찰을 견제하고, 권력 균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이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고문을 지키기 위한 방탄법안을 만들겠다는 것”이란 입장이다. 물론 일부에선 검수완박 입법이 사건의 처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따지는 목소리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이처럼 정책을 결정할 때 효과를 따지는 목소리는 미약하고, 각자가 정당하다고 역설하는 주장만 드높다. 실제 다른 여러 정책이 결정되는 논의 과정도 잘 복기해보면 정책 논의의 주요 주제가 효과인 적은 거의 없다. 대부분 정당성과 취지만을 따진다.

이렇게 각자가 정당성만을 주장하다 보면 정책 논의는 주로 진보·보수의 구도, 심지어는 서로 자신이 무조건 옳다는 선악의 구도가 된다. 이런 구도에선 정책의 이모저모를 따져보는 논의가 어렵고, 정책 집행 이후에도 유리한 근거만 모으는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다. 그러다 정책의 부작용이 속출하거나, 문제를 개선하는데 무용했음이 드러났을 때는 이미 되돌리기에 늦은 경우가 많다. 그때엔 정책 실패라는 비판이 워낙 거세 보완 정책을 추진할 만한 동력도 사실상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이렇게 반복된 정책 실패의 근저에는 ‘정책을 다루는 논의의 방식’이 있다. 막상 정책을 결정할 때 정책의 기대 효과, 부작용 등을 면밀하게 따지지 않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정책을 바라보는 시각, 정책 논의의 구도를 바꿔야 한다. 단번에 그 구도를 바꿀 순 없겠지만, 모든 정책이 딜레마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보는 게 좋은 출발점일 수 있다. 딜레마란 사전적으론 ‘두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모든 정책은 나름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기대되는 효과가 있는 반면에 감수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어떤 정책을 추진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의 결정은 대부분 딜레마의 상황이다. 세상에 완전무결하고, 장점만 있는 정책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성격이 다른 두 정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딜레마 상황에 가깝다. 딜레마를 강조하는 건 이쪽도 저쪽도 선택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딜레마를 고려한 정책 결정은 역설적이게도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한다. 그 방법은 네가지 정도가 있다.

정책 바라보는 시각 바꿔야

첫째, 정책은 단건으로 내기보다는 조합(policy mix)이어야 한다. 특히 단점이 뚜렷하고 부작용이 예상 가능한 정책일 경우엔 처음부터 보완하는 정책을 함께 제시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2017년 7월 최저임금위원회는 2018년의 최저임금을 전년보다 16.4% 올린 7530원으로 결정했다. 이때 최저임금 인상과 조합을 이룬 정책은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 단속 강화’였다. 최저임금 인상의 단점을 보완하는 정책인 ‘일자리 안정자금’은 이듬해에 시행됐다. 처음부터 일자리 안정자금은 최저임금 인상과 조합으로 함께 묶였어야 했다. 보편지급이냐, 선별지급이냐를 두고 매번 논란을 벌인 재난지원금의 경우에도 정책 조합으로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보편지급하되 연말정산 시 선별적으로 과세하는 ‘보편지급-선별과세’가 보편지급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이다.

둘째, 정책 커뮤니케이션을 잘해야 한다. 정책 커뮤니케이션은 정책을 결정할 때만이 아니라 정책의 효과에도 영향을 미친다. 정책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와 신뢰도가 효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셋째, 정책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타이밍을 잘 찾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 주택은 부동산 경기 침체기가 아닌 활황기에 더 의미 있는 효과를 낼 수 있었다. 부동산 보유세 강화는 집값이 오르기 전에 선제적으로 썼으면 조세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었고, 공시지가 현실화율을 상향하는 정책도 부동산 가격이 안정화되는 시기였으면 시장 수용성이 높았을 것이다. 이처럼 정책의 효과는 외부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적절한 타이밍이 부작용을 최소화한다.

넷째, 정책에 대한 중간 점검과 보완이다. 처음부터 딜레마를 고려했다면 정책의 부정적 효과를 면밀히 관찰하면서 적절한 보완 대책을 적시에 낼 수 있다. 이 방법을 정책에 하나씩 적용해볼 차례다. 정책을 일부러라도 딜레마에 빠뜨려보자. 그 딜레마의 정체를 낱낱이 밝혀내고, 어떻게 딜레마에서 건져낼 수 있을지 살펴보자. 이런 과정을 통해 정책을 구해내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정치도 건져낼 수 있지 않을까.

*윤형중은 한겨레신문 기자로 일하며 정책 전문 저널리스트를 꿈꿨다. 대통령 공약의 파기 과정을 분석한 책 <공약파기>를 썼다. 민간 싱크탱크인 LAB2050의 정책팀장을 지냈고, 현재는 프리랜서 정책연구자로 주로 경제와 복지 분야를 연계해 정책을 분석하고 있다. 지난 대선 기간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정책본부에서 기획재정 분야의 정책을 담당하는 정책조정2팀장을 맡았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운영위원이기도 하다.

<윤형중 정책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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