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의 시톡

(9)‘철렁’의 길이는 딱 긴 한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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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만 신간시집 <설운 일 덜 생각하고>

서로 비슷해 헷갈리는 말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공감(共感)과 동감(同感)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공감은 남의 주장이나 감정, 생각 따위에 찬성해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이고, 동감은 어떤 의견이나 생각에 한가지로 똑같이 느끼는 것이라네요. 공감보다 동감이 훨씬 가깝고도 친밀한 감정이군요. 시집을 읽으면 공감은 되지만, 동감은 어려울 듯합니다. 그런데 문동만 시인(1969~ )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묘한 동질감이 들더군요. 나희덕 시인은 시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에서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다”고 했지만, 마주앉은 시인의 눈빛을 보고 바로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과 “나무의 내면”을 알아챘습니다. 늦게 만나 오래 만날 것 같은 행복한 예감이 들더군요.

문동만 시인(오른쪽)과 <설운 일 덜 생각하고> / 아시아

문동만 시인(오른쪽)과 <설운 일 덜 생각하고> / 아시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문동만 시인은 1994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 창간호에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시집으로 <그네>와 <구르는 잠>을 냈고, 2015년 제1회 박영근작품상을 받았습니다. 수상작 ‘소금 속에 눕히며’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시입니다. 심사평에서 “문동만의 이 시는 그 비극이 발생하고 모두 공황 상태에 빠져들고 있을 때 어렵게 써진 작품”이라 했지요. 시인의 시선이 가족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에 머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부모부터 자식에 이르는 삶의 서사

5년 만에 낸 시집 <설운 일 덜 생각하고>에는 총 35편이 실려 있습니다. 다른 시집에 비하면 절반이 약간 넘는 분량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도서출판 아시아의 ‘K-포엣 시리즈’는 국문판과 영문판을 함께 발간합니다. 영문판은 해외 온라인 서점 등에서도 판매되지요. ‘K-포엣 시리즈’만이 가진 메리트입니다. 안도현 시인의 시선집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6권이 발간됐는데, 일곱 번째 김정환 시인의 <자수견본집>부터 시선집에서 창작시집으로 바뀌었습니다. 시집 말미에는 ‘시인 노트’와 ‘시인 에세이’, ‘발문’이 수록돼 있습니다. 시집에 발문이나 해설을 수록하는 건 일반적인 추세이고, 간혹 산문도 볼 수 있지만 ‘시인 노트’는 다른 시집 시리즈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시도입니다.

발문을 쓴 김수이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에 대해 “조부모부터 자식에 이르는 삶의 서사”라 했습니다. 보통 가족사를 시로 쓰면 삶과 시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가벼운 말 한마디부터 심각한 가족의 죽음까지 다시 시로 태어납니다. 상처를 드러내면서 슬쩍 숨기는 시의 특성상 가족을 불편하게 하기도 합니다. 살다 보면 “가슴 철렁한 일 여러 번 생”(이하 ‘철렁’)기고, 심장이 배꼽까지 “딱 긴 한 뼘” 내려온다는데 “아무도 그 낙폭을 알려주지” 않아 부지불식간에 재봤다고 합니다. 순식간에 내려와 “어떤 장기도/ 밀어내진 않”고 “심장만 외롭게 전율”하다가 제자리로 돌아간다고 하네요. 심장은 혈액을 순환시켜 온몸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한 가정으로 치면 가장과 같습니다. 그러니 가장 혼자 외롭게 가슴 철렁한 일을 여러 번 겪는다는 말이지요.

밥이나 하라는 말과 가시

세상에 먹고사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시인 이전에 생활인이니까요. 산다는 건 결국 밥을 버는 일입니다. 이번 시집 맨 앞에 놓인 시가 ‘밥이나 하라는 말’입니다. 습관적으로 던지는 말이지만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부엌에 “들어가 밥이나 하라는 말”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요. 부엌일을 주로 맡아서 하는 여자를 얕잡아 이르는 ‘부엌데기’라는 말을 생각나게 합니다. 집안의 대소사를 의논하는 자리는 차치하고, 해종일 들일을 하고 들어와 쉬지도 못한 채 “흙 묻은 손”을 씻고 밥을 해야 했던 엄마. 시인은 “밥을 차리러 간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가까스로 이어가며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여 밥이나 하라는 말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삶을 버리라는 것과 다름없으면서 “밥의 자식”이나 “불내의 식구”가 아닌 말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 여자들에게 미안한 것이/ 더 많아지는 나이”(‘고인돌’)가 된 시인은 “밥 차리러 가는 당신 때문”에 살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밥’이 아니라 ‘밥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밥을 버는 일보다 밥을 해 차리는 사람들이 더 중요하고, 그 사람들에게 평생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가시가 돋친 말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습니다. 가슴 깊이 박혀 응어리가 됩니다. 시인은 ‘가시’라는 시에서 “우리의 뼛속에/ 살 속에” 가시가 박혀 있다면서 “환한 날에는 심장을 더 찌”른다고 했습니다. “가시 같은 사람들이/ 잘려 버려지는 밤”이면 가시방석에 앉은 듯 마음이 무겁습니다. 늘 당하기만 하는 건 아닙니다. “청어는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면/ 그놈의 오장육부에 잔가시를 박으며/ 기꺼이 죽어준다”(‘청어’)고 했습니다. 제아무리 힘이 세도 잔가시의 껄끄러움을 견디지 못해 다음부터는 청어를 잡아먹지 않는다네요. “아무리 흘러가도 아무리 발라내도/ 생의 여울마다”(이하 ‘회류하는 가시’) 잔가시에 걸린다는 걸 알 나이가 된 시인의 눈길은 자신과 타인을 다치게 하는 가시가 아닌 사람을 살리는 가시에 머뭅니다. 한 식당에서 칠순의 아들이 늙은 아버지에게 생선살을 발라주는 정겨운 풍경, “아이를 어르듯이/ 천천히요 조심히요” 하던 말들 말입니다. 시인은 “생선살만큼은 새끼들 숟가락에/ 올려주고 대가리나 꼬랑지를 입속에 넣고/ 기막히게 발라내던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시인의 아버지가 그랬듯 시인도 시인의 자식들에게 그리하겠지요.

▲이 격렬한 유한 속에서
박용하 지음·달아실·1만원

[김정수의 시톡](9)‘철렁’의 길이는 딱 긴 한뼘입니다

시간을 데려오고
데려가는 나뭇잎의
사계가 가져다주는
조용한 평화와 맞바꿀 만한 위력이 삶에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소멸의 산책
박균수 지음·문학의숲·1만원

[김정수의 시톡](9)‘철렁’의 길이는 딱 긴 한뼘입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하지 않겠다.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야생의 강
서혜경 지음·문장·9000원

[김정수의 시톡](9)‘철렁’의 길이는 딱 긴 한뼘입니다

문턱 없는 저세상에서 하얀 날개를 달고 나를 내려다보는 당신, 어머니가 보고 싶은 날에는 시를 씁니다.

▲우리의 피는 얇아서
박은영 지음·시인의일요일·1만원

[김정수의 시톡](9)‘철렁’의 길이는 딱 긴 한뼘입니다

무엇을 쓰든
필연이길 바라지만
우연도 사랑합니다.
인연, 심연, 본연…
세상 모든 연을
연연합니다.
연이어 쓰겠습니다.

▲별세계
김유림 지음·창비·1만1000원

[김정수의 시톡](9)‘철렁’의 길이는 딱 긴 한뼘입니다

당신이 이 시집을
읽다 보면,
어떤 문형(門形)이
눈에 띌지도 모른다.
그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첫 문장을 비문으로 적는다
김혜천 지음·시산맥·1만원

[김정수의 시톡](9)‘철렁’의 길이는 딱 긴 한뼘입니다

내 안에 나를 일으켜 세우는 불꽃이여.
닿을 수 없어
더 닿고픈 그대여.

<김정수 시인 sujungih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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