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유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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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문화부로 발령받아 2020년 8월까지 약 2년간 방송 담당으로 일했다. 방송 담당 기자가 되면 국내 방송사 출입은 물론이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유튜브 등 각종 방송 콘텐츠를 리뷰하고 관계자들을 인터뷰한다. 유명 연예인과 인기 프로그램 취재도 즐거웠지만, 가장 좋았던 건 대중의 시선을 잡아끌지는 못했으나 재미있고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발굴’하는 일이었다.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웬만큼 좋은 프로그램이 아니고선 “여러분, 제발 이것 좀 봐주세요!”라고 외치기 쉽지 않았다.

<유퀴즈> 방송화면 갈무리 / tvN 제공

<유퀴즈> 방송화면 갈무리 / tvN 제공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유퀴즈)은 “요즘 뭐가 재미있어?”라는 단골 질문에 자신 있게 내놓던 몇 안 되는 프로그램이었다. 2018년 8월 첫 방송한 <유퀴즈>의 매력은 개그맨 유재석과 조세호가 거리로 나와 일상에 숨어 있는 퀴즈왕을 찾아다닌다는 설정에 있었다. 시청자가 간접 참여의 기쁨을 누리던 퀴즈쇼들이 사라지고, 연예인의 일상을 폐쇄회로(CC)TV로 들여다보는 관찰형 예능이 득세하던 시대에 ‘길거리 퀴즈쇼’라는 콘셉트는 ‘사람 냄새’라는 단어의 진정성을 보여줬다.

‘국민 MC’ 유재석을 간판으로 내걸었지만, 시청률이 1%대에 그치면서 반짝하고 사라질 위기도 있었다. 2019년 ‘시즌2’로 돌아온 <유퀴즈>는 시민 개인이 품고 있는 사연을 끌어내는 데 집중했고, 마침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방송이 아니었다면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그냥 지나쳤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때론 오열했고, 때론 박장대소했다. 시청률이 막 2%를 넘긴 2019년 6월 프로그램 소개 기사를 썼고, 같은해 8월 연출을 맡은 김민석 PD를 인터뷰했다.

“시민 출연자 입장에선 본인과 개인을 둘러싼 소중한 분들에게 좋은 추억이 되는 하나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니까 책임감이 더 생겨요. 개인적으론 훗날 ‘대한민국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에 분노하고 좌절했을까’, ‘어떤 것으로부터 위로받으며 살았을까’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기록이라는 얘기를 들었으면 합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 PD는 이렇게 말했다. 시청률 3%만 돌파해도 ‘최고 시청률’ 타이틀을 얻던 시기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길거리 인터뷰가 막히면서 <유퀴즈>는 온·오프라인에서 화제를 낳은 인물을 초대하는 방식으로 콘셉트를 변경했다. 오랜 시청자로서 유명인 위주로 꾸려가는 구성에 불만도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시청률은 2배 이상 상승해 화제성 1위의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유퀴즈>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최근 이 프로그램에 ‘논란’ 딱지가 붙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출연을 놓고 각종 의혹과 해석이 난무한다. ‘제작진과 출연진이 촬영 당일까지 윤 당선인의 출연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김 PD가 이달 tvN에 사표를 낸 것과 윤 당선인 출연이 무관하지 않다’ 등 온갖 소문이 돌아다니고 있다.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거리를 걷다 우연히 만난 ‘보통 사람’들이 출연해 웃음을 주던 프로그램이 수행원을 거느린 권력자의 출연 단 한 번으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니 그저 슬프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이유진 사회부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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