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용산공원을 ‘대청마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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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학자인 리처드 플로리다는 도시의 창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술, 인재, 관용의 정신이 도시를 지배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보다 많은 인적자원을 가진 장소는 그렇지 못한 장소에 비해 더 빠르게 성장한다고도 보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3월 20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3월 20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여러 논란과 우려, 작은 혼란과 나름의 기대가 뒤섞인 비상한 관심 속에서 청와대가 일반에게 개방된다. 대통령 집무실은 용산으로 이전한다. 우리 중앙정치의 해묵은 권위문화를 해소하고 일하는 실무정부의 근접 위용을 보이기 위한 조처라고 다음 정부는 설명한다. 실질적으로 도시의 혁신과 성장에 도움을 주려면 서울의 도시창조성과 시민경제의 역동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계의 도시 뉴욕은 야심 찬 젊은이들이 맨해튼을 의욕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도시 문턱 낮추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중 하나로 ‘실리콘 알리’라는 벤처창업단지를 저렴하게 개발해 지원하고 있다. 또 첼시와 소호 등 도시 곳곳의 장소를 젊은이들이 경제적이고 문화적으로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조성 중이다.

런던은 역사 고적이 많은 현실 속에서도 젊은이들이 도시를 문화사업 활동이나 창조사업 활동 등에 활용하도록 역사유물전시관 등 공공장소의 빈 공간을 청년들의 판매사업 등에 개방하는 배려를 선보이고 있다. 암스테르담도 국립미술관과 고흐기념관 주변의 공공용지를 야외 마켓과 컨벤션 장소로 조성해 청년들의 문화상품 장터나 신생기업의 신제품 홍보장소로 활용하도록 한다.

시민 품으로 돌아와야 할 용산공원

서울은 청년들이 모이는 장소가 주로 스스로 돈을 내고 소비자로 찾아가야 하는 상업적 장소와 유료공간이 대부분이다. 오히려 많은 청년이 모여드는 장소의 임대료나 공간비용이 이용자가 많을수록 높아져 청년들이 장소의 가치를 높여 놓으면 돈은 건물주나 상업자본이 거둬 가는 아이러니도 본다. 이런 양태가 비단 서울뿐이겠는가.

차제에 용산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기회로 삼아 용산공원 일대를 우리 청년들의 미래경제 일터와 무료공간의 장터로 만들었으면 한다. 이름은 ‘대청마루’로 생각해봤다. ‘(대)통령과 (청)년들이 경제(마)당을 만드는 장소(루)’라는 의미다.

용산공원 조성은 미군 군사용지 약 90만평의 부지가 우리에게 돌아오는 일이다. 전체 면적이 도로로 나뉘어 있지만, 합하면 여의도보다 큰 면적이다. 일본이 강점했던 시절까지 고려하면 너무 오랫동안 서울시민의 발길이 닿지 못한 곳이라 마음껏 누리고 싶은, 퍽이나 그리웠던 우리의 땅이다.

사실 서울의 지가는 청년들이 누구나 쉽게 이용하기 어려운, 아주 고가의 수준이다. 급여를 연봉으로 5000만원을 주는, 좋다는 직장에서 30년을 쓰지 않고 모아야 서울의 평균 주택가격 수준인 15억원 장만이 산술적으로 가능하다. 현실에서 그럴 수 있는 청년이나 서민은 거의 없다. 서울의 청년은 물론이고, 전국의 청년들이 서울을 무대로 한 활동을 꿈꾸는 것 자체가 대다수에게는 무망한 기대들이다.

용산공원은 글자 그대로 공원으로 조성돼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 공원 아래로 지하도시를 만들어 청년들이 마음껏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원래 대청마루는 나무판자 사이로 골을 가지런히 만들어 틈새를 사이사이에 두고 있다. 마찬가지로 용산공원도 대청마루의 형상을 이미지화해 공원 아래의 지하도시를 같이 만들어 위에서 빛과 바람과 소리가 들어가는, 하늘이 보이는 골들을 공원 벌판 사이사이에 만들고 지하를 청년의 경제·문화 도시로 만들면 좋겠다. 마치 마루판 형상의 자연공원이 깔린 사실상 지하의 지상도시처럼 만들면 좋겠다.

이렇게 만든 지하 도시공간은 누구나 이용이 가능한 청년들의 창업 공동공간으로, 미래세대의 협업 일터로, 스타트업 기업들의 신제품 홍보장터로, 국제문화 교류 공간으로 조성하면 그 장소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 청년들, 젊은 창업가들이 될 수 있다.

기왕에 상상을 더 보태보면 지하층을 더 세분화할 수도 있겠다. 시·도단위 지역별로 향토기업들의 공동 마케팅 매장이나 서울에도 진출한 지방기업들의 공동 기술연구센터가 들어가면 좋겠다. 더 세분화하면 우리 글로벌 기업들의 국제 컨벤션 공간이나 대형 상품 판매 및 홍보매장을 들이면 어떨까. 민간기업의 이용이나 공간임대는 정당한 가격으로 받아서 지하도시 공사비나 청년 공간들의 일상 운영비 등에 사용할 수 있지 싶다.

청년들의 일터와 소망을 담길

프랑스 파리에는 국제적인 문화공간과 민간 첨단기업들의 연구소 및 오피스 건물, 청년활동의 야외 공간 등을 다양하게 배치한 장소가 있다. 파리의 신도시 공급기능도 부여하고, 발전이 뒤처진 파리 북부지역의 성장을 도왔다. 바로 그 유명한 라데팡스 지역이다. 이 같은 콘셉트도 용산공원 지하도시 건설에 담아볼 만하다.

프랑스 남부에는 야외 자연에 조성된 첨단산업연구단지 소피아앙티폴리스가 있다. 이런 개념도 용산공원 지하도시에 활용하면 좋겠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도시를 세밀하게 다시 ‘도보 이용 도시’로 만들어가고 있다. 용산공원 지하도시와 지상공원을 부드럽게 상하로 연결하는 아이디어로 활용할 수 있겠다. 이미 서울 세종로의 지하 전시장과 매장 그리고 서울시청과 서울시의회 옆, 영국대사관 앞 등의 지하와 지상이 연결된 공공서비스 공간도 규모가 작지만 이런 개념을 담아내고 있다. 토지 효용의 느낌이 참 좋은 곳이다.

국내외 상황이 참으로 엄중하다. 마치 기원전의 한시대를 휩쓴 지중해 일대의 역병, 전쟁, 지진, 화산폭발 같은 ‘축의 시대적 혼돈’이 다가오고 있다. 그로 인한 역경과 시련이 인류에게 단속적으로(intermittently) 고강도로 닥치고 있다.

새로이 대임을 맡은 다음 정부는 잘 해보고자 갖가지 다짐과 온갖 정책을 따져보고 있겠지만, 실천의 시간과 효과의 시기는 분초를 다퉈야 한다. 국민의 삶은 어려운 계층일수록 생계의 경각을 다툰다. 새로운 국가에너지와 성장동력이 현실적으로 당장 필요하다. 그 중심에 청년들을 세워야 한다. 그들이 겪고, 그들이 내면에 쌓아가면서 만든 이 질곡의 시간에서 한국의 희망을 만들어내야 한다.

기왕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기로 했으니 공약 이행이나 분위기 일신 차원에 그치지 말고, 대통령이 청년들과 국가의 미래 출발선에 손잡고 나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 자리에 대통령 집무실이 있고, 청년들의 일터와 소망이 있고 국민의 안식처가 있기를 바란다. 용산공원 지하도시에 청년경제 문화마당을 만들자는 ‘대청마루’ 제안은 그런 점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일고(think about)해주기를 바란다.

<엄길청 국제투자분석가·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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