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

이성애의 안전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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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애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뭐랄까, 인정하는 편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삶의 형태가 있어 왔으니 그런 결합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고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세상이라 할지라도 ‘안전’만큼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양성과 평등이라는 미명 하에 뭐든 오케이 해버리면 그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이나 약자의 피해를 눈앞에서 보고도 놓쳐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오늘을 생각한다]이성애의 안전을 바라며

이성애 특유의 위태위태한 속성 때문이었을까, 언젠가부터 나는 ‘진짜 이성애’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말 깔끔한 ‘사람 대 사람,’ 아니 ‘남 대 녀’의 사랑을 보고 싶다는 마음을 오랫동안 품어왔다. 그런 기회는 예상보다 더 쉬이 오지 않았다. 적어도 <브리저튼> 시즌2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넷플릭스 <브리저튼>은 영국 왕정시대를 배경으로 ‘브리저튼’가(家) 자녀들의 혼사 이야기가 펼쳐지는 사극 로맨스 드라마다. 시대극 특유의 의상과 세트 등의 볼거리를 제공하면서도 제법 다양한 인종과 관계를 끌어와 현대적 느낌도 놓치지 않았다. 사실 세상에는 살인·도박과 같은, 다채로운 매체 자극이 많기 때문에 시즌1에는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그러다 시즌2 예고편의 감칠맛 나는 연출과 새롭게 등장하는 인도계 배우들의 매력에 홀려 어쩔 수 없이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배우들의 거친 숨소리를 따라 감정의 강약에 휩쓸리면서 이 세계를 함께 호흡했고, 어느 순간 입맛을 다셔보니 무척 달았다. 특히 의무와 책임의 갑옷을 두른 장녀·장남을 둘러싼 이성애의 전통 금기와 욕망이 혀에 걸리는 맛이 다디달았다. 이게 진짜 이성애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주변 그 누구와도 드라마와 관련해 진정한 소통을 할 수는 없었다. 이성애를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드문데다가 이 시리즈가 넷플릭스 히트작임에도 그들 중 아무도 이 드라마를 봐주지 않았다. 그래서 홀로 외롭게 제작사가 만든 공식 팟캐스트까지 찾아 들으며 제작기, 배우들과 연출팀의 속사정마저 파악해냈다. ‘여배우만 모르는 기습 키스신’ 같은 리얼리티에 익숙한 나로서는 ‘신체접촉 전문가’까지 동원되는 제작 뒷얘기에 너무 놀라버렸다. 가족·친구를 비롯한, 다양하고 친밀한 관계 간의 신체접촉은 물론이고 민감한 사랑 표현의 연기 지도, 촬영 후 배우들의 감정 케어까지 해주는 전문가가 제작에 많은 개입을 했다는 사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성애 자본이 돈 잘 쓰는 법은 진정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런 꼼꼼한 뒷받침이, ‘이성애’라는 위험한 주제를 다루는 이 드라마가 정말 우리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안전한 사랑 이야기’가 되도록 해주지 않았을까.

안전하기만 하다면야 이성애만 한 사랑이 또 있을까 조심스럽게, 까짓것 읊조려 본다. 다만 그저 안전하기를 빈다. 이 극단적인 사랑에 안전한 울타리만 잘 세워낼 수 있다면, 이성애도 제법 괜찮은 사랑 방식일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스크린 안에서만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반지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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