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 분배지표 개선으로 명예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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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선 소득주도성장특위 위원장 인터뷰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라는 세 기둥으로 구성돼 있다. 세가지 중 과거 정부와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은 수출 대기업의 낙수효과에 기댄 기존의 성장 패러다임을 바꿔보자는 소득주도성장이었다.

사진 / 박민규 선임기자

사진 / 박민규 선임기자

“우리가 과거에는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길”(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장)이었던 만큼 논란도 컸다. 야당은 “족보 없는 이론”이라며 소득주도성장 폄훼에 나섰다. 특히 16.4% 인상된 최저임금을 적용한 2018년 취업자 수, 하위 10%의 소득지표 등 일부 통계가 악화하자 공세의 강도는 더 높아졌다. 이후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추진 동력이 크게 떨어지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짚어본 소득주도성장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일까. 지난 3월 30일 만난 김유선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65)은 “소득분배 지표들이 현 정부 들어 꾸준히 개선된 걸 보면 소득주도성장이 명예회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소득주도성장 정책 패키지를 지속적이면서도 과감하게 이어가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했다.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장에 이어 지난해 1월부터 특위를 이끌고 있는 김 위원장은 노동전문 싱크탱크인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고용정책과 노사관계 전반을 연구해온 노동경제학자다.

-사람마다 소득주도성장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 소득주도성장의 정확한 정의를 다시 한다면.

“소득주도성장은 저소득층의 가계소득을 끌어올리고, 사회안전망과 복지를 확대하고, 사람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 내수기반이 확대되고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경제전략이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2010년대 초반부터 임금주도성장(wage-led growth)을 주창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소득주도성장이라고 명명한 이유가 뭔가.

“임금주도성장이라고 하면 임금 노동자로 한정되는 면이 있다. 한국사회의 경우 노동자들보다 소득수준이 낮은 자영업자들이 많지 않나. 노동자뿐 아니라 자영업자를 포괄해 소득수준을 끌어올리자는 측면에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명칭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자유주의 경제학자, 보수언론 등은 소득주도성장이 ‘족보 없는 이론’, ‘검증되지 않은 정책 실험’, ‘경제정책이 아니라 분배에 치중한 사회정책’이라며 비판했다. 이른바 ‘족보 논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근거 없는 비판이다. 족보가 없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 회복 전략으로 임금주도성장을 제안했던) ‘포스트 케인스주의’라고 볼 수 있다. 우파가 생각하는 족보는 과거 한국사회에 팽배하던 ‘선성장-후분배’ 담론이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16.4%로 결정된 뒤부터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공세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목적의 비판이 있었다고 본다. 야당도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이야기하는데 분배에 대해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야당의 분배는 복지정책을 통해 사후적으로 분배하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사후적 재분배와 더불어 시장소득(근로·사업소득, 이자, 배당 등) 측면에서도 불평등이 심하기 때문에 이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소득주도성장을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이라고 인식한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다양한 정책 패키지가 있다고 반박했지만 뚜렷하게 각인될 만한 다른 정책수단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양한 정책 집행이 분명히 있었다. 주로 시민들에게 인지된 건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노동정책 영역이다. 이 영역은 노사라는 이해관계자 집단이 명확하게 있어 주목도가 높은데다 언론도 이 부분을 주로 부각했다. 노동정책뿐 아니라 자영업자 대책도 있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에게 부담이 갈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정책으로 대응을 했다. 소상공인·영세 자영업자의 경영상 부담을 완화하고 저임금 노동자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연간 3조원 규모의 일자리 안정자금을 집행했다. 2018년 10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법정 계약갱신 청구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고, 임대차 갱신 시 임대료 인상률 상한을 9%에서 5%로 낮췄다. 카드 수수료 인하도 몇차례 있었다. 다만 2020년부터 코로나19로 자영업자 피해가 커진 부분에 대해선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재분배 영역에선 제도적으로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근로장려금(EITC) 확대, 기초연금 인상, 고교 무상교육, 아동수당 도입 등이 그것이다. 전국민고용보험제, 한국형 실업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제도 개선도 이뤄졌다. 이런 부분이 어려운 분들이 실질적으로 내 삶이 확 바뀌었다고 느낄 정도는 아닐 수 있지만 일정한 진전이 있었던 건 분명하다.”

“소득주도성장, 분배지표 개선으로 명예회복”

-시장소득 양극화 개선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 외에 어떤 정책수단이 필요하다고 보나.

“최저임금 인상으로 임금 격차가 축소된 면이 있다. 중위임금과 하위 10%의 임금 격차는 상당히 축소됐다. 다만 중위임금하고 상위 10%의 임금 격차는 하나도 줄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이 아래를 끌어올리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중위임금과 상위 10%의 임금 격차를 축소하는 데는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 격차 축소를 위해 다양한 정책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그중 하나가 ‘연대임금’ 정책이다. 1980년대나 1990년대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임금인상과 관련해 하후상박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잘난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는 게 떳떳하고 당당한 것이라는 식으로 풍토가 바뀌었다. 최근 임금인상을 하면 대부분 정률제다. 만약 똑같이 3%를 올린다 해도 액수로 보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같은 재원 내에서 정액으로 인상하면 임금 격차가 좁혀질 수 있다. 그다음에 고위 임원이나 최고경영자(CEO)의 고액 연봉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문제가 있다. 고액 연봉자의 임금을 일반 직원들의 몇 배 이내로 제한하는 걸 고려해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대·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한국사회의 오랜 숙제다. 지금처럼 교섭 방식이 기업별 교섭이면 계속 격차가 벌어지는 만큼 초기업 교섭(산별교섭)을 통해 임금 평준화를 도모하는 게 필요하다. 초기업 교섭을 활성화하려면 노조법상 ‘단체협약 효력확장’ 제도 적용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하나의 지역에서 같은 업종의 노동자 3분의 2 이상이 하나의 단체협약을 적용받게 될 때’라는 요건이 엄격하기 때문에 현재로선 효력확장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와 함께 건설공사 노동자의 임금이 하도급 단계를 거치면서 깎이지 않도록 발주자가 정한 금액 이상으로 임금을 보장하는 ‘건설공사 적정임금제’를 다른 업종으로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임금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고 있는 택배, 배달라이더 등의 영역은 ‘공정 수수료’ 보장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노조법 개정 등을 통해 산별교섭을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두드러졌다고 보기 어렵다.

“노사 모두 기업별 교섭이라는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정부도 초기에 이를 바꿔보려는 노력을 많이 하진 못했던 것 같다. 예컨대 택배, 배달라이더 등은 노사 모두 나름대로 ‘임금’ 기준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은 기업별 노사관계가 제도화돼 있지 않아 오히려 초기업 교섭에 유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런 영역에서 초기업 교섭을 하고 단체협약 효력을 확장하는 등 새 모델을 만들 수 있다.”

-2018년 취업자 수 증가폭 둔화, 1분위(하위 20%) 근로소득 감소세 등으로 소득주도성장이 야당과 보수언론의 집중적 공격을 받은 결과,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에서 혁신성장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했다는 관측이 있었다.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소득주도성장이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다소 뒤로 밀렸던 건 사실이다. 다만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성장 때문에 고용참사, 분배참사가 벌어졌다는 당시 비판은 사실과 상당 부분 달랐다. 2018년 연평균 취업자 수 증가폭이 9만7000명에 그친 건 사실이다. 2019년엔 달랐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10.9%에 달했지만, 그해 연평균 취업자 수 증가폭은 30만1000명으로 예상을 뛰어넘었다. 고용률도 2018년 0.1%포인트 감소했지만 이내 회복해 2019년에는 60.9%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고용이 줄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움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가계동향조사보다 표본이 많아 더 공신력이 있는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시장소득 자체는 2020년까지 크게 악화되지도, 개선되지도 않았다. 개선이 뚜렷하게 이뤄지지 않은 건 고령화와 가구 구성의 변화 때문으로 보인다. 재분배 정책을 통한 가처분소득(시장소득+연금을 포함한 공적이전소득-세금·사회보험료 등 공적이전지출)의 경우 확실히 개선된 걸 확인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정책을 운영할 때 단기적 통계에 너무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재인 정부가 마무리되는 최근 시점에서 보면 노동소득분배율, 지니계수 등 각종 분배지표가 개선된 것으로 나온다. 그간 저평가받았던 소득주도성장이 이러한 개선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는지.

“소득주도성장, 분배지표 개선으로 명예회복”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2017년 22.3%였는데 2020년 16.0%다. 하위 10%와 상위 10% 임금 격차도 4.3배에서 3.6배로 떨어졌다.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인 노동소득분배율도 2017년 62.0%에서 2020년 67.5%로 높아졌다. 67.5%는 한국은행이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최저임금 인상뿐 아니라 노인일자리 사업이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할 수 있다. 야당에서는 정부 재정으로 일자리 수치만 늘린다고 했지만 70~80대 노인들은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노인빈곤율이 2020년 현재 처음으로 30%대로 떨어진 데도 노인일자리 사업 확대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가구소득 분야에서 가처분소득이 개선된 것은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근로장려금 확대 등 재분배 정책의 효과다. 2020년 코로나19 이후엔 자영업자 지원이 미흡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긴급재난지원금, 긴급생계지원 등이 가처분소득을 개선하는 역할을 계속한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도 소득주도성장의 중요한 축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는데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 같다. 또 공약과 달리 민간 부분의 비정규직 사용을 억제하는 법·제도 도입도 안 됐다.

“공공부문은 정부가 의지를 가지면 할 수 있는 영역이라 일부 진전을 시켰다. 다만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에서 이른바 공정 이슈가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예전에 한 조직 안에 있다가 아웃소싱된 것을 원상복구시킨다고 생각했는데 MZ세대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공정성 논란 여파도 있고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야당의 공격도 들어와 민간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다룰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또 문재인 정부 초기 때는 국회가 여소야대여서 비정규직 관련 법 개정을 임기 후반기로 미룬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다 보니 후반기로 갈수록 동력이 떨어졌다. 2021년 비정규직이 대폭 증가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커진 불확실성으로 사용자들이 일단 기간제 노동자를 많이 뽑은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향후 이 흐름이 고착화될까 우려스럽다.”

-소득주도성장으로 소득 격차 완화가 일정하게 이뤄졌다고 해도 자산 격차 문제는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다. 집값 상승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 소득주도성장이 시장소득 격차 해소에 집중하다 보니 자산 격차 해소 부분은 놓쳤다고 봐야 하나.

“소득불평등뿐 아니라 자산불평등도 중요한 이슈라는 걸 전제해야 했는데 정부 초기에 소득불평등 문제가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졌다. 부동산 영역은 소득주도성장특위에서 직접적으로 다룬 이슈가 아니었다. 다만 문재인 정부 전체로 놓고 보면 부동산 등 자산 격차 문제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영역이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한쪽에선 소득주도성장이 그 방향 자체가 틀렸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선 방향성은 맞는데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정책적으로 잘 구현하지 못해 소득주도성장이 되레 오명을 뒤집어썼다고 한다.

“과거에 비해 소득주도성장이 최근 명예회복을 하고 있다고 본다. 특위에서 최근 <소득주도성장, 끝나지 않은 여정>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16명의 필자가 참여한 결과물이다. 책을 준비하며 정리하다 보니 소득주도성장이 지나치게 저평가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족보 없는 이론이라는 우파의 주장과 달리 오히려 소득주도성장이 앞으로 계속 지향해야 할 경제전략이라는 게 필자들의 공통적 생각이었다. 분배지표와 관련해 부분적 성과도 있었다. 다만 대통령 임기 5년 안에 불평등이 싹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니니 지속적인 정책 노력이 필요하다. 일관성을 가지고 좀더 과감하게 추진했어야 한다는 지적에는 공감한다. 최저임금 인상 등의 경우엔 비판을 수용하면서 유연하고 탄력성 있게 추진해 나갔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앞으로 소득주도성장의 기조가 어느 정부에서든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나.

“새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걸 보면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이윤주도성장으로 가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긴다. 명칭을 무엇으로 하든 불평등 문제, 양극화 해소는 향후 정부가 받아안을 수밖에 없는 과제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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