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도시 변화에는 시간과 가치가 필요하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대한민국 인구 1% 남짓한 과천시에서 주택 공급만을 목표로 하는 현 정부의 정책이 시민들의 강한 반감을 사고 있다. 과천시 도시개발이 왜 문제인지, 시민저항이 왜 거센지는 자명하다. 과천이라는 도시는 제2종합청사를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1979년에 탄생했다. 서울에 이은 제2의 행정수도 기능을 했다. 2012년에 갑자기 과천청사 이전계획을 발표하더니 ‘국토의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하에 과천의 정부부처를 지방으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촉진하고 국가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에 따른 특별계획에서 과천시는 빠져 있다.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은 공공기관 등이 새로 이전하는 도시만을 위한 법으로 전형적인 불균형 법안이다.

경기 과천시민의 폐와도 같은 공간인 정부과천 청사 앞 유휴부지(빨간선 표시 부분)를 찍은 항공 사진이다. 지금은 놀고 있는 땅이지만 앞으로 축제도 산책도 쉼도 가능한 시민들의 공간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다. / 과천시의회 제공

경기 과천시민의 폐와도 같은 공간인 정부과천 청사 앞 유휴부지(빨간선 표시 부분)를 찍은 항공 사진이다. 지금은 놀고 있는 땅이지만 앞으로 축제도 산책도 쉼도 가능한 시민들의 공간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다. / 과천시의회 제공

행정도시라는 정체성 상실

행정도시라는 정체성을 잃은 과천의 시민들은 지금 경제적 어려움의 늪에 빠져 있다. 30여년의 발전을 뒤로하고 정체되고 낡은 행정의 표본으로 전락한 과천시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우수한 역량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실정으로 내몰렸다. 지자체의 선출직 공무원부터 나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도시개발이라는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의견을 모을 필요가 있다. 근시안적으로 현시점만 바라볼 게 아니라 과거와 미래도 함께 봐야 한다. 그 시간 속에 쌓인 가치와 흔적들의 역사, 문화, 관계, 소통, 커뮤니티, 환경, 자본 등을 분해하고 융합하는 과정이 도시개발이다. 이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5년간의 과천 도시개발정책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무분별하게 중앙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따라 하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LH의 사업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시차를 두고 택지개발 방식으로 부지 3곳을 파헤치고 있는데 개발부지 3곳의 규모만 놓고 보면, 거의 신도시급이다. 이 정도라면 사업자들(국토부와 LH)이 기반시설 전부를 부담해야 한다. 과천 전체를 아우르는 환경영향평가, 교통영향평가, 교육영향평가 등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부분만 개발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며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가고 있다. 그 결과 기반시설 확충 작업이 턱없이 부족하다. 역대 지자체장들은 또 여와 야를 막론하고 이에 협조했다.

2018년 12월 수립한 ‘미니 3기 신도시’ 건설 계획이라는 게 있다. 서울시의 주택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천에 주택을 짓겠다고 수립한 계획인데 졸속 처리를 비판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크다. 집값 안정을 명분으로 지방자치단체와 주민의사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인 결과, 전략환경 영향평가나 하수처리장 등 도시 기능 유지를 위한 도시계획의 내실을 갖추지 못했다. 이런 시민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관계 당국의 행정오류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라는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권고(2019년 9월 26일)가 국토부의 밀어붙이기식 정책결정이 얼마나 비민주적이었는지를 여지없이 드러냈지만, 지자체장들은 그저 중앙정부의 방침을 따라 하기 바빴다. 택지개발을 한다면서 교육부와 LH의 학령인구 산정도 제멋대로였다. 결과는 학교 부족으로 이어졌다. 철도교통과 도로교통 인프라도 모두 부실하기 짝이 없다. 일단 짓고 보자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하수도처리시설의 용량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등 주먹구구식 행정투성이다. 지금이라도 정부 기관들이 오류를 바로잡고 책임 있는 변화에 나서는 선례를 남겨주길 기대한다.

둘째는 도심 내 균형발전이다. 인구 7만의 계획도시로 건설한 과천은 지난 35년간 양적 팽창에도 기반시설이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다 보니 도시 전체가 불균형하게 발전했다. 재건축규제를 현실화하고 지구단위계획 정비를 통해 주택단지를 균형 있게 개발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 이대로 가면 벨트형으로 길게 형성된 과천의 양단만 택지개발로 인해 격동적인 변화를 맞는다. 중심지구는 슬럼화될 게 뻔하다. 심리적 위축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삶의 질이 추락한 원도심 주민들과 사전청약에 당첨된 미래의 주민들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주택 공급 못지않게 중요한 게 원도심의 공공주택과 개인주택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일이다. 이들 지역의 주거환경을 제대로 정비해야 과천이 제대로 중심을 잡고 일어설 수 있다. 지자체의 행정력을 주문한다.

개발과 발전은 다른 개념

셋째는 도시골격의 형성이다. 과천은 과천대로와 양재천을 통해 도심의 골격 라인을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 과천대로를 지하화해야 한다. 그린벨트 규모까지 고려하면 전국에서 면적(35.86㎢)이 가장 작은 시로 불리는 과천시에 꼭 필요한 사업이다. 상부공간을 시민들과 공유하며 도심의 단절을 해소하는 것은 물론, 가용부지를 확보하고 소음·공해·분진과 미세먼지 등의 환경오염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교통적인 측면 자체로만 봐도 중부권을 남북으로 잇는 과천대로의 지하화는 교통량의 분산에 효과적인 대안이다.

고금란 과천시의회 의장

고금란 과천시의회 의장

양재천은 과천이 발원지다. 발원지와 합류되는 12개의 지역하천을 상부에 주거 및 주차, 보행 공간으로 복개해 관리가 어렵고 수량도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양질의 친수공간을 제공한다는 본연의 공공정책은 온데간데없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하천은 더 중요해진다. 시민들의 요구도 높아진다. 양재천을 과천의 커뮤니티, 문화, 역사, 경제, 토지이용계획 등과 연계되는 자연축으로 삼아 시 전체를 걷기 좋은 친환경 도시로 발전시켜야 한다. 특히 과천지식정보타운지구는 인공하천과 양재천을 연결하는 작업도 필수다.

마지막으로 과천의 폐부인 유휴부지 문제다. 정부과천청사 맞은편 8만9000㎡ 면적을 말 그대로 ‘정부의 노는 땅’으로 접근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주택 공급 4000호’라는 부동산정책으로 이어졌다. 이에 분개한 시민들은 ‘주민소환’이라는 막강카드를 지난해 6월 30일 꺼내들었다. 김종천 과천시장을 소환하겠다는 거였다. 소환은 불발에 그쳤다. 과천시는 여전히 이렇다 할 계획도 없이 유휴부지를 움켜쥐고 개발연구 용역 발주만 이어가고 있다. 청사 유휴부지는 정부가 1970년대에 과천주민들로부터 강제 수용했던 땅이다. 국가경제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행정 규모와 기능이 급성장하면서 청사 수요를 충당하기 위함이었다. 그 용도를 더 이상 이어가기 어렵다면 이제 과천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개발과 발전은 분명 다른 개념이다. 개발에 따른 부작용과 문제점을 보완해 가면서 발전을 이뤄나가야 한다. 즉 도시는 포용의 능력을 갖춰야 한다. 계층, 세대, 성별, 빈부 등을 아울러야 한다. 도시 발전과 성장의 동력을 이루는 산업과 경제의 중심을 명확히 해야 하는 이유다. 성장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없도록 잘 살피고, 이들을 보듬는 정책을 펴는 일이 지금 지자체에 주어진 막중한 책무다.

<고금란 과천시의회 의장>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