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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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두고 신·구 권력이 맞붙었습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정면돌파’를 선택했습니다. 일견 화끈해 보입니다. 동일한 공약을 내놓고도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문재인 정부의 모습이 중첩되면서 ‘역시 다르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입니다. 구호와 감정적 호소만 요란했지, 추진 방법이나 소통 방식이 거칠고 어설프기 그지없습니다.

[편집실에서]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

당선인의 약속대로 ‘광화문 시대’를 열었다면 많은 박수를 받았을 겁니다. 하지만 속전속결로 ‘광화문 이전’ 공약을 접더니 대안으로 제시한 이전 후보지가 국방부청사입니다. 광화문 이전 약속을 못 지킨 건 양쪽 다 마찬가지라는 얘깁니다. 기존의 청와대에 비해 용산 국방부청사가 얼마나 대중친화적이고 개방적인 공간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왜 청와대의 내부구조가 폐쇄적이라고 하는 건지, 하고 많은 곳 중에 왜 갑자기 국방부청사를 대안으로 택했는지 명확한 비교분석 자료도 없습니다. 공기를 정해놓고 부실공사를 강행하는 일부 건설 현장처럼 그저 속도만 강조하는 모양새입니다. 시기는 유동적이지만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에 새로 둥지를 틀 가능성이 현재로선 커 보입니다. ‘미래권력’이 새집에 들어가겠다는데 ‘과거권력’이 무슨 수로 막겠습니까. 새 정부 출범에 딴죽을 거는 ‘옹졸한’ 모양새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계획대로 오는 5월 10일 청와대를 개방하면 과거 청계천이 그랬던 것처럼 전국에서 몰려든 구경 인파로 녹지원과 경내 산책로 등이 북새통을 이루겠지요. 당선인의 결단을 추켜세우는 목소리도 커질 거고요. 할 뻔했다가 못한 문재인 정부로선 두고두고 뼈아픈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십만평 규모의 미군기지 반환과 맞물려 용산은 가뜩이나 ‘희망과 기회의 땅’으로 떠오른 곳입니다. 마천루와 국제업무지구가 속속 들어서면서 그야말로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나는 지역입니다. 이재에 밝은 투자자들은 벌써부터 움직이기 시작했겠네요.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용산지역의 부동산 시장에 미칠 파장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기사들도 슬슬 보이기 시작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이유 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꼽습니다. 당선인이 직접 나서 ‘용산 시대 개막’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만큼 가격 안정을 위한 세심한 정책은 세워놓았겠지요. 당선인은 물론이고 배우자, 친인척 나아가 인수위원들, 청와대 참모, 정부 고위직들의 용산지역 부동산 매입 및 보유현황을 면밀히 파악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부동산 잡겠다고 연일 큰소리쳤지만 주요 인사들이 다주택자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책이 시장에서 씨알도 안 먹혔던 문재인 정부의 과오를 되풀이해선 안 될 것입니다. 오이밭에서는 신발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습니다. 당장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의 지역구가 용산이라지요.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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