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행궁동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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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와 21세기가 따로 또 같이

경기도 수원의 중심은 어디일까? 수원역을 비롯해 저마다 중심으로 삼는 이유가 있겠으나 대부분은 수원화성(水原華城)을 꼽는다. 그곳에 또 화성행궁(華城行宮)이 있다. 팔달문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시장의 골목이 줄지어 북적이고, 서쪽 행궁산 기슭으로 공방거리와 행궁동 카페골목이 있다. 젊은이들은 어떻게 그리도 좋은 곳들을 잘 찾아다니는 건지 어디건 그들의 발길이 닿는 곳엔 눈 호강을 하며 느린 산책을 할 수 있는 골목길이 숨어 있다.

수원 화성행궁 일대는 행리단길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수원 화성행궁 일대는 행리단길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수원화성을 높이 꼽는 이유는 여러 실용적인 이유와 역사적 사실이 있겠지만, 왕과 실학자들이 꿈꾼 이상을 구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정조대왕은 “여기에는 나의 깊은 뜻이 있다. 장차 내 뜻이 성취되는 날이 올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뜻이 성취된 날이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성이 세워지고 허물어지며 흩어지기를 여러 번 반복한 후 오늘날 오롯이 다시 제모습을 찾았다. 성을 굳이 아름답게 만들 필요가 있겠냐는 질문과 저항에도 정조는 “아름다움이 적을 이기느니라”라는 말을 남겼으니 그 아름다움이 시간의 파괴적인 힘을 이겨낸 것도 사실이다.

무차별의 문화가 매력

수원화성은 효율을 우선으로 꼽는 이 시대에도 아름다웠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니 장안문이나 팔달문, 화성행궁 등 여러 건물의 아름다움에 대한 의심은 접어도 좋다. 눈을 돌려 가득 들어오는 조선 건축물의 우아함과 효율이 어느 곳보다 무겁게 남아 있다. 비록 근자에 복원했더라도 기록의 민족답게 문고리 모양 하나까지 적어놓은 덕에 옛 모습과 지금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느긋이 행궁터를 걸어도 좋고, 팔달산 비탈 기슭을 걸어 올라가 산자락의 봄바람을 만끽해도 좋을 만큼 일대는 행락의 여유와 운치를 준다.

팔달문 일대는 여러 시장이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다.

팔달문 일대는 여러 시장이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다.

젊은 순례객들이 다녀간 다음에는 길이름이 남는다. 화성행궁 주변 행궁동 일대에도 행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남았다. 전국의 많고 다른 ‘~리단길’에 비해 행리단길은 조금 고풍스럽고 한가롭다. 간간이 골동 가게도 보이고, 손으로 만든 장신구를 만드는 공방도 숨어 있다. 그런 가게에서도 비단에 쪽으로 물을 들인 하늘하늘한 스카프를 판다. 일품이다. 적도 인근에서 건너온 커피 향기를 맡을 수 있고, 보성 비탈에서 이슬 먹고 자란 작설차도 즐길 수 있다. 물론 달곰한 자판기 커피도 만날 수 있다. 베트남 쌀국수집도 눈에 띄고 태국 음식점도 보인다. 젊은 취향의 가게들이 주를 이루나 노숙한 분위기의 가게들도 곳곳에 숨어 있다. 자기가 속한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차별 없이 즐길 게 많다는 이야기다. “이리 오너라!”를 외쳐야 할 듯한 옛 문화의 흔적이 있고, 길거리 춤판이 벌어져야 할 듯한 자유분방함도 함께 느낄 수 있다. 행리단길의 매력은 그 턱 없는 무차별의 문화에 있다.

화성행궁 바로 옆 행리단길의 주된 좌표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 있다. 현대미술 작품을 엄선해 전시하는 공간이라 그 자체가 행궁의 조선 건물과 대비돼 시간과 공간과 문화가 섞인 묘한 경계를 보여준다. 행리단길을 목적 삼아 걸어도 좋고, 미술관을 목표 삼아 찾아가도 좋다. 무심히 스쳐 행궁의 반듯한 가로를 걸어도 나쁠 게 없는 길목이다. 길을 따라 18세기와 21세기가 따로 또 함께 있으니 이야깃거리도 많은 골목이다.

팔달문시장은 현대화로 잘 정비된 시장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팔달문시장은 현대화로 잘 정비된 시장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평지길 아래 골목은 젊은이들에게 넘겨주고 노장들은 팔달산 비탈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삶의 우여곡절을 다 겪은 후라 굴곡 없는 곧은길은 그다지 재미가 없다는 듯 비탈을 걷는다. 이제 봄물이 한창 오른 숲은 새순이 하늘을 향해 치오르고 산수유는 진작 꽃망울을 터뜨렸다. 생강나무며 조팝나무가 꽃을 보여준다. 산길의 보석이라 눈으로 줍고 부지런히 또 산을 오르는 이들의 모습이 온산 가득하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통닭골목

정조대왕의 효심 이야기도 좋고, 화성행궁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일도 갸륵하지만, 인간사는 먹고사는 일로 시작해 끝을 맺는다. 장안문과 팔달문을 가로지르는 정조로를 사이에 두고 수원천을 따라 동쪽 편은 온통 시장통이다. 그중 몇몇 시장 골목은 명성이 전국에 뻗쳐 있다. 통닭골목은 이미 방송에도 수차례 소개됐을 만큼 통닭 메뉴가 골목을 지배하고 있다. 통닭골목에서 내세우는 닭은 가마솥에 튀겨낸 옛날통닭. 별다른 튀김옷을 입지 않아도 식용유에 튀겨낸 닭은 고소하고 쫄깃하다. 골목 안 통닭집은 대충 잡아 10여곳. 저녁장사 준비를 위해 이것저것 살피던 통닭집 주인은 “아무리 유명해도 장사가 예전만 못하다. 우선 저녁일 끝나고 모여 맥주에 닭 한마리 뜯고 가는 재미를 누리지 못하니 어쩔 도리가 없는 일 아니겠냐”며 말을 흐렸다. 시장을 따라 한두집 있던 통닭가게가 골목을 이룰 정도로 번성했으나 이젠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된 듯하다. 닭의 잘못도 사람의 잘못도 아닌 애꿎은 세월의 탓으로 삼을 밖에 도리가 없는 일 아닌가 싶다.

행리단길 일대는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다양하다.

행리단길 일대는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다양하다.

통닭골목을 빠져나오면 농기계 수리상과 종묘상들이 눈에 띈다. 때를 놓치면 한 철을 접어야 하는 것이 농사일이라 이것저것 농기구를 챙기고 씨앗을 살피는 농부들의 모습이 분주하다. 곁들여 봄을 뽐낼 화분을 구하려는 주부들의 모습도 다양했다. 누군가는 지금 당장 일이 급하고, 어떤 이에게는 한 철 농사일이 긴요하다. 시간이 흘러가는 폭은 저마다 닥친 일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이다. 한 철은커녕 하루하루를 때워야 살 수 있는 이들에겐 그마저 남의 밭에 고랑 파는 일일 뿐이다.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수원 일대에도 가내공업 수준의 의류 공장들이 꽤 있는 듯, 재봉틀 가게들이 눈에 보인다. 의류 관련 기계를 팔고 원자재와 부자재 가게도 있다. 지동교 다리 건너 수원천을 건너면 지동시장이 있는데 이곳은 순대국밥으로 유명한 골목이다. 갖가지 순대를 곁들여주는 순대정식과 국밥은 예전 장이 열릴 때면 이곳에 들러 국밥 한술 뜨고 탁주 한잔 마셔야 장보기를 마쳤다고 한다. 지동시장에 육류 도매시장이 있는지라 그 사이사이 국밥집과 순대 전문식당이 있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수원천을 따라 양곡 상가가 보이고 미나리광시장이 있다. 아마 예전 이곳 천변 습지에 미나리꽝이 있었겠거니 짐작할 뿐이다.

젊은 취향의 가게와 문화 중심지가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젊은 취향의 가게와 문화 중심지가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못골 종합시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수원천을 건너면 팔달문시장이 나온다. 팔달문시장은 현대화를 마쳐 잘 정비된 모습이다. 가로세로 골목마다 가게 호수가 잘 정리돼 있고 파는 물건들도 꽤 품질이 높아보였다. 30년차 옷가게 주인은 “주말에는 매우 바쁘고 평일에는 사람 구경이 힘들 때도 있다. 다들 어려워도 힘내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냐. 그렇게밖에 살아갈 줄 모르는 팔자니까 없는 힘도 만들어서 산다”고 했다. 철이 어중간해 겨울옷은 이미 끝났고 봄옷도 기다려 봐야 할 것 같다며 “세월 가는 것이 아무리 지겨워도 겨울 가기 무섭게 여름은 또 금방 온다”고 웃었다.

깔끔하게 정비된 팔달문시장

시장 공터에 햇보리순을 끓여 나눠주며 권하는 장사꾼이 보인다. 종이컵에 넉넉히 따라주며 “팔다리 저리고 힘없고 허리 아프며 무릎 쑤시고 아침에 잘 못 일어나면 이것이 직방이다”는 그의 말에 솔깃했으나 생각보다 맛이 없어서 빈 컵을 들고 조용히 물러섰다. 그래도 장 구경 끝난 노인들과 호기심이 발동한 젊은이들이 꾸준하게 종이컵을 받아 마시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언론의 자유를 외치기 시작한 곳이 아마도 장마당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통닭골목은 아직도 10여곳의 통닭집이 명성을 보이고 있다.

통닭골목은 아직도 10여곳의 통닭집이 명성을 보이고 있다.

시장통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역시 과일과 채소를 파는 가게다. 1000원짜리 한장에 푸성귀 한다발을 살 수 있고, 고르는 실력에 따라 실한 과일도 헐값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 장사꾼은 느긋하고 오히려 나이 든 장사꾼들이 급하게 손님을 잡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젊은 가게 주인은 “물건이야 사는 사람 마음이지 파는 사람 마음대로 팔 수 있나? 그냥 전 벌려 좋은 물건 놓아두고 사주기를 바라니 느긋하게 장사해도 큰 차이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손님과 싸우듯 악을 쓰며 전쟁을 벌여도 결국 남는 건 큰 차이가 없다는 게 달관한 그의 장사 경험이다. 그럼에도 시장에는 늘 다툼이 그치지 않는다. 길을 걷다 부딪혀도 악을 쓰고, 물건값을 놓고 치열하게 싸운다.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믿는 이들도 있고, 어차피 복은 정해져 있다고 믿는 느긋한 사람들도 있다. 그 물음에 대한 결정된 답이 없기에 인생은 늘 복잡하고 어렵게 마련이다. 어느 편에 서서 세상을 봐야 갈피를 잡을 수 있을는지 오늘도 헤매야 한다.

팔달문시장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니 여느 중소형 백화점과 다를 바 없었다. 군데군데 아주 값싼 카페가 보이고 특대형 사이즈의 옷을 파는 독특한 가게라든가,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장식품 가게 등이 눈에 띄었다. 팔달문에서 지동 일대가 시장통인데도 이 도시는 시장이 부족해보였다. 한낮에도 사람들은 시장으로 몰려오고 무엇인가를 사들고 또 자기 사는 곳으로 돌아가고 있다. 시장에서 사과 한알이라도 골라 살 수 있는 시절은 그래도 최악은 아닌 셈이다.

시간의 호리병이 있고, 그 안에 구분 없이 모든 걸 넣어뒀다가, 문득 필요한 게 있으면 병 안을 뒤져 찾아내면 되는 곳, 팔달문 일대 화성행궁과 시장 골목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정조대왕이 꿈꿨던 이상이 무엇인지 역사의 혜안이 부족해 알 수 없으나, 그가 만든 아름다운 건축물은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친 파괴에도 다시 살아남았다. 그 안에 “아름다운 것이 적을 이긴다”는 왕의 주장이 살아 있다. 민주주의 시대를 겪으면서 모든 국민이 아름다운 시절을 꿈꾼다. 모두가 아름다워져 세상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이길 수 있고, 꿈의 좌절을 극복할 힘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 정조대왕이 꾸었던 꿈의 조각들을 행궁동 골목길을 걸으면 만날 수 있다. 골목길을 빠져나올 때 우리가 꿈꿀 내일의 가치가 모두에게 뼈저리게 다가갈 수 있다면 좋겠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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