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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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물이 담긴 컵을 보고 누구는 “반이나 찼네”라고, 누구는 “반밖에 안 찼네”라고 말한다지요. 긍정적 사고와 부정적 사고의 차이를 언급할 때 들곤 하는 예시인데요. 절반에 가까운 표를 얻고도 승리를 놓친 더불어민주당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요. “졌(지만) 잘 싸(싸웠다).” 이재명 대선후보와 함께 이번 선거를 앞장서 이끈 송영길 당대표 등이 선거 다음 날 내놓은 평가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맞습니다. 비록 지긴 했지만 압도적인 ‘정권교체’ 여론 속에서도 민주당 역사상 최다 득표라는 성적을 거뒀으니 ‘선방’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평가를 관전자 혹은 지지자들이 내놓을 수 있을지언정 당사자들이 내린다는 건 못내 어색합니다. 물론 이 후보의 당선을 위해, 정권 재창출을 위해 불철주야 고생한 자원봉사자들과 캠프 관계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일회성’ 언급이었을 수 있습니다. 열혈 지지자들의 허무하고 지친 마음을 달래는 것 또한 지도부의 덕목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당시의 언급보다 그후 민주당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이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안타깝게도 후속 행보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편집실에서]민주당이 수상하다

민주당은 신속하게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윤호중 원내대표가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n번방’ 사건을 추적하고 공론화한 박지현씨를 공동위원장에 임명한 것을 필두로 비대위의 상당수를 20~30대로 전진 배치한 게 눈에 띄지만 당장 당내에서부터 “선거 패배의 책임을 져야 할 인사가 비대위의 간판을 맡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발이 나옵니다. 2개월여 지나면 전국 단위의 선거가 또 한차례 있습니다. 바로 전국 17개 시도자치단체장 등을 뽑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6월 1일)인데요. 하마평에 오르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니 그야말로 ‘반성과 쇄신’과는 거리가 멉니다. 전혀 새롭지도 혁신적이지도 않은 ‘라인업’으로, 대선 승리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접수하려는 ‘국민의힘’의 파상공세를 막아낼 수 있을까요. ‘촛불 혁명’이라는 전 국민적 열망 속에 출범한 정부가 불과 5년 만에 정권을 뺏긴 원인을 과연 제대로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고 있는 걸까요. 벌써부터 ‘친(이재)명’이니 ‘친(이)낙(연)’이니 ‘친문(재인)’이니 하는 말이 모락모락 새어 나옵니다. 다당제 실현을 위한 선거제도 개편, 결선투표제 도입 등의 정치개혁 공약은 어떻게 될까요. 선거에서 졌으니 도로 서랍 속으로 들어가버리고 말까요.

지지 여부를 떠나 유권자들이 패자를 떠올릴 때 기대하는 예상 행보가 있습니다. 평생의 라이벌 YS와의 대결에서 고배를 마신 DJ의 ‘정계은퇴’ 선언(1992년)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여전히 남탓을 하고 자기편끼리도 책임 공방만 일삼으며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내달린다면 지방선거 결과는 뻔합니다. 이번 선거의 ‘박빙’ 결과는 그때 가서 최종 결론을 내려고 잠시 미뤄둔 유권자들의 ‘빅 픽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역대 최소 표차로 승부가 갈린 이번 선거가 어느 당에 약이 되고 독이 될지 그때쯤이면 비로소 명약관화해지겠지요.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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