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우릴 주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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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기업이 기술로 먹고살지, 손발로 노동을 해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건 인도도 안 하고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2021년 9월)

“어떤 후보를 뽑느냐에 따라 우리는 남미 후진국에 해당하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을 수도 있고….”(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2022년 3월)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이 발언들을 보자마자 흠칫했다. 말 한마디로 얼마나 많은 외국을 ‘멕인’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인도는 한 국가라지만, 아프리카와 남미는 대륙이다. 수십억 인구가 남의 나라 정치판에서 난데없이 싸잡혀 모욕을 당했다. 물론 타국을 욕보이려는 게 아니라 나(우리)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아프리카와 남미 국가가 ‘대체로’ 민주주의 지표가 떨어지고 저개발인 것도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하의 함의가 명백한 맥락에 다른 나라를 함부로 끌어와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실로 아찔한 발언이다.

한국을 지켜보는 눈이 많다. 한국 뉴스를 한국인만 보리라 여긴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한국어 사용자는 약 7700만명으로 언어 중 14위다. 한국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한국어를 배운다. 이들은 한국 뉴스를 보고,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를 접한다. 한국인들이 영어를 공부할 때 영미 뉴스를 찾는 것과 같은 이치다. 관심의 발원이 K팝이든 K드라마든 간에 그 끝은 한국 ‘사회’로 온다는 뜻이다. BTS와 <오징어게임> 흥행으로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들이 늘었다고 하니, 앞으로 한국사회를 향한 시선 또한 그만큼 다 무겁고 날카로워질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말실수나 단순한 ‘아찔함’에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막 시작된 2020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때 이른바 ‘빵 쪼가리 사태’가 터졌다. 베트남에 입국한 한 한국인이 정부 방침에 따라 격리됐는데, 이때 격리 생활의 열악함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식사로 지급받은 ‘바잉미(베트남식 쌀 바게트)’를 “아침에 빵 쪼가리 몇개를 주네요”라고 인터뷰한 게 화근이었다. 이는 곧장 번역, 캡처돼 현지 여론을 휩쓸었다. 평소 민족감정을 드러낸 적 없던 베트남 친구들도 그때만큼은 섭섭함을 토로했다. 택시를 타면 기사가 그 얘기를 꺼낼 정도였다. 특히 베트남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식문화를 폄훼한 데 대한 서운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걸그룹 소녀시대의 노래 ‘더보이즈’에 “전 세계가 우릴 주목해”라는 소절이 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노래가 나온 2012년 당시만 해도 오글거리는 가사라고 생각했다. 이젠 저 대목이 ‘더 많은 시선의 무게를 지게 될 것’이란 경고성 예언이었나 싶다. 개인이 한 말도 후폭풍을 불러일으켰는데, 공인이라는 정치인들의 입은 더 무거워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대통령은 외교를 하는 자리다. 서운함이 반한감정으로 번지기까지 그리 많은 장작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차기 정부는 공연히 반한감정에 기름을 끼얹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참에 ‘나를 칭찬하기 위해 남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는 진리를 실천해보면 어떨까.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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