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다치면 차라리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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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주물 불판에 놓였던 고기를 위장으로 떠나보내고 소주 한병이 거의 비어갈 무렵이었다. 아저씨가 남은 고깃덩어릴 싹 집어다가 내려놓는 동안 대화가 잠깐 끊겼다. 술자리에서 기자들에게 배운 인터뷰 기술을 활용해보기로 했다. 공백의 틈에 원하는 화두를 슬며시 밀어넣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사고 당일과 다음 날엔 부동산 뉴스만

“듣자니께 건설 쪽 가셨담시롱? 그 판떼기는 사람 억수로 마이 다치지예?”

두 눈 끔뻑대던 아저씨는 막잔을 치고선 비로소 운을 떼기 시작했다. “다치면 차라리 다행이지.” 아저씨는 동료가 다치는 건 종종 봤어도 죽는 걸 직접 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1월 말쯤, 간만에 건설 쪽으로 복귀해 현장 분위기도 파악할 겸 까대기, 그러니까 지게를 멘 채로 위층에 자재 날라다 주는 일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오십 초반 중년이 감내하기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현장에서 쌓은 눈칫밥으로 아파트 한채는 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정시정각의 말끔한 일처리보다는 적당히 핀잔 들어가면서 쉬엄쉬엄하는 게 더 효율적임도 알고 있었다. 아저씨는 탁월한 입담꾼답게 단순 노동마저 “자의식 수수료”라고 멋들어지게 묘사했다. 요는 자의식과 체력을 골고루 안배하는 게 핵심이었다. 무작정 몸을 한계치까지 몰아갈 게 아니라 때론 욕 들을 걸 각오하고 쉬어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자의식 수수료를 내는 것, 즉 어쩔 수 없이 한소리 듣는 걸 두려워하면 금방 골병 난다고 했다.

사흘째, 그날도 중간층에서 잠깐 쉬어가던 중이었다. 겨울 눈치도 안 보고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입김을 뿜어대던 그때, 그야말로 찰나 같은 비명을 들었다. 지게를 내려놓고 발성원을 따라갔을 땐 사람이 이미 바닥에 쓰러진 채였다. 아저씨는 사람이 죽은 그 당시보다 이후에 벌어진 일에 더욱 분노하고 있었다. 당일, 그다음 날에도 뉴스 한건 보도되질 않았다. 현대건설에서 잇달아 사고가 난 탓에 6월쯤 돼서야 뉴스가 났고, 그 안에 ‘1월엔 근로자 한명이 추락사했다’고 한줄짜리 문장이 들어 있을 뿐, 그마저도 건설사가 연속으로 사고 안 쳤으면 영영 눙치고 갔을 사건이었다. 술이 좀 오른 아저씨는 평소에 그 능글능글한 모습이 안 떠오를 정도로 화를 냈다.

“신문지에다 한가롭게 아파트값 뛰느니 마느니 하는 기자 놈들 싹 다 잡아 족쳐야 해. 1월에 사람이 떨어져 죽었는데 6월에 기사 몇개 딸랑 내고 말더라. 집값 얘기로는 웬종일 떠들잖냐. 이게 진짜 사람 새끼들이야? 야, 현우야. 너 이제 기자들 좀 알잖냐. 함 물어보자. 이런 짐승 같은 새끼들도 기자 취급해줘야 하냐?”

듣던 당시엔 반신반의했다. 아저씨는 예전엔 ‘나꼼수’, 최근엔 ‘열린공감TV’의 애청자였다. 아저씨가 내게 정치를 알라며 주었던 책들의 작가들도 기존 언론과 별로 안 친한 분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존 언론을 향한 불신과 편향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검색을 해봤는데 아저씨 말이 맞았다. 당일과 그다음 날. 기사는 하나도 나지 않았다. ‘지역뉴스’를 검색해보니 진짜 아파트값 기사밖에 없었다. 어느새 우린 부동산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정작 땅 아래 스며든 피를 모르고 살았던 건 아닐까. 현장 노동자들이 의외로 산재에 둔감했던 건, 죽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세상을 향한 냉소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참담한 기분이었다. 어느덧 삼겹살 한근 마무리하고 갈비를 굽기 위해 불판을 가는 동안 빈 소주병 두개가 쌓였다.

열을 올리던 아저씨는 잠시 담배를 한대 피우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자리에 돌아온 아저씨는 수도권 대형 건설사의 장점도 슬며시 언급했다. 특별히 눈에 띄는 중간착취가 없다, 즉 ‘똥떼기’ 관행이 보이질 않더라는 것. 지방에서 노가다를 뛰다 보면 그야말로 온갖 기이한 임금 낚아채기 기술이 보인다. 소장이 대기업 과장·부장 접대비를 팀장 똥을 떼서 보충하고, 팀장은 또 손해를 메꾸려 노가다꾼의 똥을 떼는 ‘쓰리쿠션’, 팀장이 아예 처음부터 노가다꾼들의 급여 통장과 카드를 들고 가서 자기 몫 챙기고 남은 돈을 주는 ‘짬처리’, 받은 월급 중 일부를 아예 대포 통장으로 입금하라고 지시하는 ‘상납’까지. 이런 과정을 거치고 또 거쳐 노동자들에겐 흡사 ‘테세우스의 배’(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역설)처럼 원본이 온데간데없는 월급만 떨어지곤 했다. 대기업 직할 현장은 확실히 달랐다. 근로계약서를 칼같이 쓰고 정확하게 적혀 있는 날짜에 적혀 있는 임금을 주더라는 것. 당연한 일인데도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초심을 돌아보다

아저씨는 이런 문화는 얼른 밑으로 내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더니, 질문의 방향을 자연스레 내 근황으로 돌렸다. 지방에 박혀 조용히 용접만 하던 놈이 갑자기 칼럼 쓰고 방송을 타더니 급기야 국무총리실까지. 당최 어떻게 되먹은 일이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나라고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살았겠나. 크루아상처럼 우연에 우연이 여러겹 뭉쳐 이리된 것일 뿐이었다. 잘 모르겠다는 말에 아저씨는 벼락출세의 원인을 특이하게도 언어에서 찾았다.

“내가 니 칼럼은 전부 챙겨 보거든. 근데 그 왜, 우리 판떼기에서만 쓰는 말들이 있잖냐? 그 상스러운 걸 칼럼에다 그대로 다 실을 순 없잖어. 그렇다고 먹물들 말로 쓰면 맛이 안 살고. 그 중간 언어를 찾아야 하는데 니가 그걸 잘하더란 말이지. 노조 아재들이 이게 안 돼. 맨날 머리띠 두르고 메가폰 잡고 소리만 치잖아. 간절한 건 이해하겠는데 촌스러워. 그림이 너무 구리잖아. 먹물들이 원하는 양식미라는 게 또 따로 있을 거 아니냐. 우리 얘기를 가진 놈들 언어로 번역해야 해. 좀 아니꼬워도 세상은 그렇게 바꾸는 거지. 넌 그게 되더라. 그래서 니가 중요한 거야. 쇳밥 얘기를 먹물들 알아먹게 쓸 수 있으니까.”

소주에 절여져 푹 퍼져가던 머릿속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근 몇개월간 “당신은 중요한 존재”라고 말해준 사람들은 이미 사회에서 성공한 이들, 통장이며 부동산에 박아둔 돈은 제각기 다를지언정 모두가 좋은 직업과 학벌을 가진 이들이었다. 창원에서 얌전히 용접만 하고 살았다면 평생 볼 일 없었을 사람들의 환대와 존중은 기쁘고 불안했다. 공장 일꾼이란 정체성으로 현장의 서사를 팔아 나 혼자 비겁하게 출세하는 건 아닐까. 진짜 현장 노동자들은 천현우를 기득권 앞에서 글 재롱부리는 간신쯤으로 생각하진 않을까. 고마운 덕담에 최근 들어 무게를 불려 나가던 걱정의 응어리가 가벼워졌다.

“내가 잘할 수 있겠으예?”

“당연하지!”

건배와 함께 다시금 초심을 되새겼다. 내가 지나쳐왔던 세상이었다. 담배 냄새와 절삭유 냄새로 찌든 곳, 차가운 금속과 뜨거운 불꽃의 감촉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비지땀 흘리며 뿌듯했던 하루도, 죽살이에 벅차 힘겨웠던 하루도, 이내 막걸리와 소주로 씻어내곤 하루를 또다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쇳밥꾼들의 마음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천현우 용접노동자>

천현우의 쇳밥이웃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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