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동과 빨래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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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변했지만 알맹이는 여전한 그곳

사라져 버린 과거가 지명에 남아 있는 곳들이 있다. 서울 강북구 삼양동과 수유동 빨래골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조선시대 궁중의 빨랫감들을 처리하던 빨래터가 이곳에 있었고, 궁중 나인이나 무수리들은 이곳에서 빨래를 하고 바깥나들이에 쉬기도 하는 여러모로 쓸모 있던 장소라 한다. 북한산에서 흘러내린 풍부한 물길과 빨래를 널어 말리기에 좋은 평평한 너럭바위들이 골짜기에 연이어 있었다는데, 하천은 복개됐고 암반 위에는 집들이 들어섰다. 오직 이름만으로 옛 모습을 상상할 수 있으니 빨래골이란 지명은 역사책처럼 참으로 귀한 이름이다.

궁중의 세탁물을 빨래하던 개천은 복개되고 집들이 들어섰다.

궁중의 세탁물을 빨래하던 개천은 복개되고 집들이 들어섰다.

조용히 모습을 바꾸는 골목

서울의 오래된 마을과 골목들처럼 이곳도 행인 중 태반이 노인이다. 보행 보조기를 밀면서 느릿한 걸음을 옮기던 노인은 이곳에서 평생을 살았단다. 80년 가까이 한곳에 뿌리내리고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일 터인데 그는 “여기가 공기도 좋고 동네가 조용해 살기에 편하다. 사람들 인심도 순하고 모난 데가 없어 동네 시끄러운 일이 별로 없다”고 이야기했다. 젊어서는 새벽바람에 길음시장까지 걸어가 장사했는데 몸이 불편해진 이후로 일은 접었다고 했다. 예전과 지금이 얼마나 달라졌냐고 묻자 “껍데기는 변했는데, 알맹이는 하나도 변치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대개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 크게 달라질 것도 변할 것도 없다는 설명이었다. 골목 안에는 새로 지은 공동주택과 50~60년은 돼 보이는 낡은 집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오래된 블록집들도 말끔히 고치고 새로 칠을 해 그다지 퇴락한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골목길 한편에서 ‘마을사랑방’ 건물 신축공사가 한창이었다. 여기저기 ‘도시재생사업’ 신청을 독려하는 현수막이 보이고, 단독주택 수리비를 정부에서 지원한다는 안내문도 거창하게 붙어 있다. 골목은 조용하게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복개된 골목으로 냇물 대신 차들이 다닌다.

복개된 골목으로 냇물 대신 차들이 다닌다.

큰길에서 골목으로 접어들어 옛날 흐르던 복개된 물길을 따라 북한산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한빛맹학교가 보인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전공 과정까지 통합한 교육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는 부속 기업으로 한빛힐링센터를 운영하는데, 제대로 된 안마를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안마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꽤 인기가 있단다. 교육이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지만 육신의 불편함을 가진 이들에게는 더더욱 소중한 기회를 준다. 이곳에 터를 잡은 지 오래되기도 했지만, 주민들은 별다른 불편의 시선을 보이지 않아 빨래골 인심이 순함을 느낄 수 있다.

오래된 주택이 많은 탓에 골목 안의 한 주택 수리 업체가 눈에 들어왔다. 가게 앞 반자 위에 잘 다듬은 더덕 몇봉지를 그대로 놓아두고 가격표를 붙인 돈통만 옆에 두었다. 복고풍 수동식 무인 판매 시스템인 셈인데 그 옆에 쓴 글은 씁쓸했다. “CCTV에 찍혀 있으니 더덕 가져간 사람은 조용히 돈 갖다 넣으시오.” 욕심이 양심을 가렸을 수 있고, 잠깐 깜빡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가게 벽에 붙어 있는 설명문의 ‘보일러에 집수리를 하면 절반까지 지원한다’는 내용을 읽고 있자, 옆 가게 주인이 집수리할 거냐고 말을 건넨다. 올겨울 뒤늦게 닥친 한파에 보일러 터지는 집들이 줄줄이라서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니까 미리미리 예약해야 한단다. 그는 “사람이나 집이나 나이가 들수록 건사를 잘해야 한다. 한두방울 새는 물이라고 우습게 봤다간 나중에 집 전체를 뜯어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주택 수리 업자가 본 세상의 이치인 셈이다. 세월 앞에 장사는 없는 법이라 쌓이는 시간의 무게는 모두에게 버겁다.

오래된 동네인 만큼 요즘 볼 수 없는 간판도 눈에 띈다.

오래된 동네인 만큼 요즘 볼 수 없는 간판도 눈에 띈다.

“갈 데가 없어 등산을…”

북한산을 끼고 있는 덕분에 평일 한낮인데도 간간이 등산객을 골목길에서 만날 수 있었다. 세상에 속할 바 없는 한량들이라 부럽기도 하고, 산을 찾는 일로 소일해야 하는 신세가 안쓰럽기도 했다. 산을 꽤나 좋아하나 보다고 묻자 “갈 데가 없어서 산엘 간다”고 대꾸했다. 사내의 이야기로는 그럭저럭 먹고살던 호프집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가게 문 닫은 것은 약과이고 복장이 터져 잠을 못 잔다고 했다. 하루하루가 전쟁인 세상에서 느닷없이 떨어진 포탄 한발에 사람들의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빨래골 인근에는 화계사와 삼성암이라는 큰 절이 있다. 화계사 입구에는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도 있으니 부처님이든 하나님이든 이 환란을 끝내주시길 바라지만 하늘의 일은 하늘의 권능, 세상일은 세상의 것이니 당분간 질병이 가져온 혼란은 이 골목에도 변함없을 것 같다.

신축 공동주택 사이로 오래된 집들이 숨어 있다.

신축 공동주택 사이로 오래된 집들이 숨어 있다.

빨래골이 산자락에 바짝 붙어 있어 시장에 가려면 멀리 삼양시장이나 수유시장을 이용해야 하는데, 골목 곳곳에 채소가게며 중형마트가 있어 장보기에 불편함은 없다고 한다. 멀리 가지 않는 대가로 살짝 비싼 물가를 체험해야 하지만 골목 안에서 과일이며 채소 따위를 구할 수 있다는 건 큰 편리함이다. 빨래골의 고깃간은 정육점이란 신식 간판 대신 아직도 푸줏간이란 이름을 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삼양동과 수유리 일대의 지명에는 유독 예쁜 우리말을 쉽게 볼 수 있다. 솔샘, 가오리, 무넘이, 빨래골…. 뭔가 설명이 따로 붙어야 하지만 그 이름만으로도 예스럽고 아름답다. 빨래골 푸줏간 주인이 끊어주는 고기가 더 실하고 넉넉할 듯한 건 아마도 간판이 주는 정겨운 기분 때문이리라.

빨래골은 도시와 자연의 경계선에 있다.

빨래골은 도시와 자연의 경계선에 있다.

빨래골 부근에는 초중고등학교가 여럿 있다. 골목 안 깊숙한 곳에도 아이들을 위한 군것질 가게나 분식집들이 숨어 있다. 산자락의 바람을 피해 아이들은 종종걸음으로 붕어빵 노점 천막 안으로 찾아들고 있었다. 1000원짜리 한장에 여러마리를 살 수 있던 ‘풍요의 시절’은 끝났다. 붕어빵의 몸값도 높아졌다. 아이들은 동네 놀이터에서 공놀이하거나 뜀박질을 한다. 어린 손자의 손을 잡고 귀가하는 노인들의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대충 눈에 띈 바로는 삼대가 함께 사는 가구도 여럿 있는 것 같았다. 아파트단지와 달리 단독주택이거나 오래된 공동주택에는 3대가 모여 사는 경우가 흔한 편인 듯싶다.

한빛맹학교도 빨래골의 주인공이다.

한빛맹학교도 빨래골의 주인공이다.

교육환경과 자연환경이 좋아 재개발 바람이 불 것 같지만, 빨래골과 수유리 일대는 진작 뉴타운 지정에서 해제됐다. 아파트의 꿈을 버리지 못한 이들이 공공개발 쪽으로 방향을 튼 듯했다. 공공개발 개별 신청 안내를 독려하는 현수막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지나가는 노인에게 재개발을 물어보자 “꺼져도 이미 진작에 꺼진 불씨다. 주민들의 상당수는 무허가 건물 시절부터 이 근방에서 살던 사람들이라 여기가 고향이다. 재개발한다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것도 마뜩잖아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미 주변에 아파트단지가 여럿 들어섰지만 이렇게 가끔 한곳 정도는 고층의 주거단지를 벗어나 한적하게 남아 있어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빨래골에서 복개천을 따라 수유역 쪽으로 가다 보면 기사식당 골목이 눈에 띈다. 전에는 더 많았다고 하는데 지금 남아 있는 기사식당은 대략 10여곳. 중식부터 한식과 돈가스까지 다양한 메뉴로 기사들을 불러들인다. 식자재를 정리하는 식당 종업원에게 다가가 “기사들에게 인기 있는 메뉴가 뭐냐”고 묻자 “제육볶음이나 돈가스, 햄버그스테이크 정도가 잘 나간다. 빠르게 나오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데다 든든히 요기를 할 수 있는 메뉴라서 그렇다”고 답했다. 식당마다 써놓은 메뉴가 대략 20가지가 넘었다. 복개천 도로라 식당 앞에 넉넉히 주차할 수 있고 인근에 가스충전소가 가까이 있어 기사식당의 입지로는 최적이었다. 한데 기사식당도 요즘엔 불경기라서 몇집은 문을 닫았다고 했다.

평일에도 골목길에서 북한산 등산객을 마주칠 수 있다.

평일에도 골목길에서 북한산 등산객을 마주칠 수 있다.

한때 택시기사들을 여론의 풍향계로 꼽던 시절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는 기사에게 “요즘 대선철인데 손님들이 정치 이야기를 하냐”고 물었다. 그는 손사래를 치면서 “말도 못 꺼낸다. 요즘엔 그저 손님은 휴대폰을 보고 기사는 운전만 하고 그게 마음 편하다”고 했다. 선거 때가 되면 늘 있던 말다툼도 요즘엔 거의 사라졌단다. 각자가 들여다보는 휴대폰은 세상과 담을 쌓고 타인과의 분란을 사라지게 한다.

세속과 자연의 경계 관통

빨래골과 삼양동은 한때 교통이 불편한 동네로 꼽히기도 했다. 길음동 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수유 삼거리 쪽으로 이어진 길이 시내로 나가는 주된 통로였기 때문이다. 요즘엔 우이신설경전철이 생겨 교통이 한결 나아졌다. 한 부동산 주인은 “아무리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살기엔 불편한 점이 적지 않다. 집값이 비교적 안정적이라서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편이다. 노후에 여가를 보내기에도 적당하다”고 설명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삼양동과 수유리 일대가 1970년대에는 국민주택단지가 있어서 70여평 정도 되는 단독주택이 많았다고 한다. 그 시절엔 직장에서 자리 잡고 융자받아 국민주택단지 집 한채 장만하면 성공한 축에 들어갔다고 했다. 국민주택단지의 대부분 주택이 헐렸다. 그 자리에 빌라들이 들어섰다. 골목 안에서 간간이 당시의 집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골목을 걷는 내내 인수봉과 백운대가 숨었다 드러났다 숨바꼭질을 하며 봉우리를 보여주었다. 희고 잘생긴 화강암 암벽이 속세의 고단함과는 거리를 두고 고고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무리 속상한 일이 있어도 이 골목을 걷다가 문득 북한산의 강인한 모습과 마주하면 시름을 잠시 내려놓게 된다. 빨래길 일대의 골목길이 좋은 건 그렇게 세속과 자연의 경계를 관통하고 있어서다. 번잡하게 살아가지만 문득 고요한 마음을 낼 수 있는 찰나를 빨래골 골목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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