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말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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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명재상 황희가 그랬다죠. 하인 둘이서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따지는 걸 보고선 “둘다 맞다”고 결론을 내렸답니다. 이 말을 들은 황희의 조카가 “아니,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라고 묻자 “그 말도 맞다” 하고선 읽던 책을 마저 읽어내려갔다고 하지요.

[편집실에서]“네 말이 옳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졌습니다. 전쟁의 원인을 놓고 말들이 많습니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의 팽창 정책이 화근’이라는 주장과 ‘옛 소련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러시아의 야욕이 빚은 참사’라는 주장이 엇갈립니다. 표면적으로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이하 나토) 가입 시도가 갈등의 촉매로 작용했습니다. 소련 및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출범(1949)한 나토가 야금야금 회원국 수를 늘려가며 동진하는 배경에 미국의 패권주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게 러시아의 시각입니다. 반면 미국이나 자유주의 세력 동맹국들은 주권국가인 우크라이나의 자율성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며 2014년의 크름반도(크림반도) 병합이나 돈바스 ‘침공’ 등 사례를 볼 때 이번만큼은 러시아의 도발을 단호히 응징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강 대 강의 충돌’이라는 외부변수로만 해석해서는 이번 사태를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변수와 역사적 맥락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얽히고설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악연’, ‘친러’와 ‘반러’로 나뉘어 오랫동안 반목해온 갈등의 역사, 오락가락 급선회를 거듭한 국가의 외교안보 정책, 집권층의 해묵은 부정부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오늘의 사태에 이르렀기 때문이지요. 이걸 두고 또 외적 요인이 우선이냐, 내부 변수가 우선이냐 다툽니다.

내부 변수 중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우크라이나 현 집권세력의 지도력도 있습니다. 역시 시끌시끌합니다. 당장 “6개월 된 초보 정치인 대통령(젤렌스키)이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충돌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국민의힘은 “자유민주주의와 평화를 열망하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이양수 수석대변인 논평)고 비판했습니다. 윤석열 후보는 줄곧 “힘이 있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태 해결의 열쇠를 피해자(우크라이나)가 쥐고 있다는 인식은 양측이 다 비슷해 보입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전쟁의 책임은 침략한 자의 것”이라고 못 박습니다. 이번 전쟁은 과연 누구 탓입니까.

도시가 화염에 휩싸이고 무고한 사상자들이 속출합니다. 내 탓, 네 탓 따지기 전에 급한 불부터 꺼야 합니다. 우크라이나호(號)의 선장인 젤렌스키 대통령이 해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강대국들이 충돌하는 국제정세가 더 큰 문제라는 인식은 자칫 누가 집권하더라도 우크라이나엔 포연이 자욱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너무 허무해져 버립니다.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대선이 임박했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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