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김(三金)’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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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선거가 코앞입니다. 여러 대선을 겪고 투표도 했지만 가장 기억나는 선거를 꼽으라면 뭐니 뭐니 해도 1987년 치러진 13대 대선입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후 이뤄진 첫 선거였고 등장인물도 쟁쟁했습니다. 6·10민주항쟁 이후 ‘봇물 터진’ 민주화의 물결 속에 ‘신군부독재’를 종식하려는 진보세력과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보수세력들이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쳤더랬죠. 벽보와 플래카드, 장외유세 등이 선거운동의 대종을 이루던 시절이었는데요. 특정 후보의 열성 지지자들이 상대 후보의 벽보를 훼손하거나 플래카드를 찢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편집실에서]‘삼김(三金)’이 온다

여의도광장, 보라매공원, 장충단공원 등에서 장외유세가 열리면 지지후보의 연설을 듣겠다고 전국에서 구름처럼 인파가 몰려들었는데 TV 화면에 비친 대통령 후보들의 사자후가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습니다. 매일 저녁 지상파 9시 뉴스가 어김없이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의 순서로 이들의 선거유세 장면을 보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의아했던 건 화면 속 군중의 숫자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동일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기호순(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으로 항상 인파가 넘쳤습니다. 뚜껑을 열어보니 투표율이 정확히 그대로 나왔습니다. 각각 36.64%, 28.03%, 27.04%, 8.06%를 얻었으니까요. 언론이 현실을 정확히 반영해 보도했던 걸까요, 아니면 언론이 그렇게 몰고 가는 바람에 결과가 그렇게 나왔던 걸까요. 지금껏 해소하지 못한 궁금증입니다.

30여년의 세월이 흘러 여야가 ‘정권교체’냐 ‘민생안정’이냐를 두고 다시 한 번 맞붙었습니다.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합니다. 그때도 단일화 이슈가 뜨거웠습니다. 삭발, 단식 등의 줄 잇는 단일화 요구에도 끝내 YS와 DJ는 제 갈 길을 갔습니다. 결과는 노태우 후보의 당선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둘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거의 대등한 투표율이 나온 걸 보면 어느 한쪽도 양보하기 쉽지는 않았겠다 싶기는 합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단일화는 막판까지 쟁점입니다. 여야로 나눠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양상이지만 진영을 기준으로 바라보면 공수가 바뀐 모양새입니다. 최종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단일화 결과를 바라보는 훗날의 평가는 그때와 비슷할까요, 달라질까요.

당시는 3김(YS-DJ-JP)의 전성기였습니다. 각자의 개성과 철학, 정치 역정을 바탕으로 이들은 지역(PK·호남·충청)의 맹주를 자처하며 이후로도 한동안 천하를 ‘삼분지계’했습니다. 상도동, 동교동, 신당동이 상징하던 ‘3김(金)정치’는 막을 내렸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새로운 ‘3김’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유력 후보들의 부인들(김건희-김혜경-김미경)입니다. 후보 못지않게 세간의 관심이 뜨겁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남편(이승배)도 유세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이들 중 과연 누가 배우자와 함께 청와대로 들어가게 될까요, 변화한 세상에 걸맞은 새로운 대통령 부인(남편)상을 제시할 적임자는 누구일까요? 이번 호 ‘표지 이야기’에서 집중적으로 살폈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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