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대에 오른 배우자들

전업주부 18년, 그의 자부심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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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후보의 남편 이승배씨

아내와 남편의 꿈은 같다. 역할만 서로 다를 뿐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63)와 배우자 이승배씨(66)는 진보정당이 시민의 삶에 확고히 뿌리내린 사회를 꿈꾼다. 심 후보가 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게 이씨의 역할이다. 이씨는 가사노동을 도맡고 있다. 지난 2월 23일 경기 고양 심 후보의 지역구 사무실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이씨는 “내 자아실현의 방법은 아내의 일을 적극 돕는 것”이라며 “심 후보는 국민을 올바른 길로 안내하는 길잡이이고, 나는 그의 조력자”라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2월 15일 오후 광주 서구 유스퀘어 앞에서 남편 이승배씨와 함께 유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2월 15일 오후 광주 서구 유스퀘어 앞에서 남편 이승배씨와 함께 유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유독 ‘배우자 리스크’가 부각되는 선거가 펼쳐지고 있다. 그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길동무’처럼 이씨는 심 후보의 유세현장에 동행한다. “내가 ‘대통령의 배우자’가 되는 것보다 심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했다. 둘은 어떻게 만났을까. 이씨는 심 후보를 “우주의 인연으로 만난 영원한 동반자”라고 표현했다.

심상정은 정치만 하시라 이씨와 심 후보는 젊은 시절 노동운동을 하다가 인연을 맺었다. 이씨는 심 후보가 1985년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했을 때 뉴스를 통해 심 후보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구로동맹파업은 단일 사업장을 넘어 최초로 여러 노동조합이 연대한 파업이었다. 이씨는 당시 화물 분야 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그는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입학해 1983년 졸업했다.

둘은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활동을 통해 처음 만났다. 심 후보는 1985년 8월 노동자 정치조직인 서노련 결성을 주도했고 중앙위원장을 맡았다. 1986년 가을쯤 이씨가 서노련 관련 모임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데 심 후보가 등장했다. 심 후보는 당시 수배 중이었다. ‘김혜란’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후 심 후보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에서, 이씨는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에서 활동하며 가까워졌다. 1992년 결혼에 이르렀다.

이씨는 결혼 후 출판사를 운영했다. 심 후보가 노동운동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던 터라 생계 방편이 필요했다. 이씨는 “처음에는 출판사를 전심전력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어느 시점이 되면 노동운동 일선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고 말했다.

심 후보는 2003년 인생의 갈림길에 섰다. 최초의 산별노조인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 임기를 마쳤을 때다. 심 후보는 두가지 제안을 받았다. 민주노총 사무총장 출마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를 통한 정계 진출이었다. 이씨는 고심하는 심 후보에게 “정치를 하는 게 맞겠다”고 조언했다. 그는 “노동자나 노조의 자생력이 그리 좋지 못한 거 같았다. 기업별 노조 내에서도 연대성이 약화되고 있었다. 정치를 통해 동일노동·동일임금, 산별적 연대 등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고 봤다”고 말했다.

심 후보는 결국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배지를 달았다. 이씨는 “그때부터 딴생각하기 힘들더라”며 “(아내도) 진보정당을 경험한 선배가 아무도 없다 보니 모든 게 새로웠고 모든 걸 알아서 챙겨야 했다”고 말했다. ‘전업주부’ 생활의 본격 시작이었다.

“가사노동, 아주 중요한 일” 18년이 흘렀다. 이씨는 자신의 가사노동을 두고 “아주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자부심을 느낀다고도 했다.

“정의당이 정치의 중요한 축으로 아직 안착하지 못했다. 이게 이뤄지기 전까지는 가사노동 전담이 불가피하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내가 심 후보에게 ‘당신이 먹은 거 당신이 치워’라고 요구한다면, 이는 진보정당의 성장을 바라는 많은 분께 죄를 짓는 것이라 생각한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의 남편 이승배씨가 2월 23일 경기 고양 심 후보의 지역구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 정희완 기자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의 남편 이승배씨가 2월 23일 경기 고양 심 후보의 지역구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 정희완 기자

집안 가계는 심 후보가 가져다주는 300만원으로 해결한다. 집안일을 하면서 어려운 점을 물었다. “생활을 많이 단순화했다. 반찬도 입맛에 맞는 것으로 1~2개만 만든다. 심 후보의 입맛도 그리 까다로운 편이 아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씨는 밖에서 돌아온 심 후보에게 가능하면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심 후보는 굉장히 지친 상태로 집에 돌아온다. 안 그래도 복잡한 상태의 사람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건 피해야겠다 생각한다. 불가피하게 전달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나중에 보라’고 쪽지를 전달한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평정 상태에서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심 후보가 먼저 물어올 때를 제외하면 조언도 자제한다. 이씨는 “당에서 공식적으로 일하는 사람들끼리 논의하는 게 맞다. 잘못된 판단을 내리더라도 해당 임무를 맡아 현장을 잘 아는 사람들끼리 논의하고 결정했다면 존중하는 게 옳은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1초라도 빨리 궤도에 올랐으면” “저 심상정과 저랑 같이 사는 이승배씨 모두 털어서 먼지 한톨 안 나오는 사람이다.” 심 후보가 2월 23일 유세에서 한 말이다.

이씨는 대선후보의 배우자 문제가 주목받는 작금의 상황을 두고 “최악”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적 책임의식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정치하려는 사람은 공적 책임의식을 명확히 가져야 한다”며 “그 가족들도 최소한의 상식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청와대에 들어가면 대통령의 배우자로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우선 나온 말은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심 후보가 당선된다는 얘기니까”였다. 그러면서 “분수에 맞게 지내겠다. ‘대통령의 남편’이라는 위치에 걸맞게 나를 잘 성찰하려고 한다”고 했다.

대통령 후보의 ‘최측근’이 바라보는 이번 대선은 어떤 모습일까. 이씨는 대선이 새로운 시대정신을 화두로 치열하게 논의하는 마당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불평등, 기후위기, 차별 문제 등을 시급한 과제로 지적했다. “사람이 죽는 게 흔한 일이 돼버렸다”며 산업재해 문제도 심각하게 보고 있다. 그는 “대전환기 시대의 중요 과제를 언급하는 사람은 심 후보뿐”이라고 했다. 이어 “비과학적인 무속신앙이 등장하고 자신을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검토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버젓이 대통령 되겠다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이씨는 한국사회가 드러내는 각종 폐단의 원인으로 거대 양당 중심의 정치체제를 꼽는다. 선거 때마다 어김없이 나오는 ‘사표론’도 비판했다. 거대 양당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체제 옹호론’에 불과하다는 게 이씨의 진단이다. 양당의 굴레에 포획된 대한민국을 조금이라도 전진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번 대선에서 심 후보를 선택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씨는 “정의당과 심 후보를 찍는 게 삶을 바꾸는 일이고 사회개혁을 이뤄내는 지름길”이라며 “정의당에 오는 한표 한표가 거대 양당을 긴장케 하고 그들이 변화를 추구하게끔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의 창당 이후 22년이 흘렀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진보정당은 아직 “초창기이고 모색기”다. 1초라도 빨리 진보정당이 일정한 궤도에 올랐으면 하고 이씨는 간절히 바란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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