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층(浮動層)을 부동층(不動層)으로 사로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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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비호감이 낳은 부동층 10%… 그들을 잡을 마스터키는 뭘까

“막하막하의 대결이죠.” 김용식씨(가명·29)는 20대 대선판을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했다. 김씨뿐만이 아니다. ‘막상막하’, 자웅을 겨루는 수준 높은 대결이 아니라 ‘누굴 뽑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한탄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역대급 비호감’이란 오명 아래 펼쳐지는 대선 레이스 속에 마음 둘 곳 없는 이들이 있다. 이른바 ‘부동층’이다. 부동층(浮動層)이란 물에 떠서 흔들리듯이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했거나 지지 후보를 바꿀 의향이 있는 유권자 집단을 뜻한다. 이들이 왜 결정을 못 했는지 들여다보면 부동층의 마음을 잡을 실마리가 보인다. 선거운동이 한창인 지금, 떠다니는 부동층 표심을 굳건한 ‘부동층(不動層·움직이지 않는 유권자)’으로 사로잡을 후보는 누구일까.

2월 17일 서울 종로구선관위에서 관계자들이 선관위에 제출된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들의 벽보를 살펴보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2월 17일 서울 종로구선관위에서 관계자들이 선관위에 제출된 제20대 대통령선거 후보들의 벽보를 살펴보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마음이 떠다니는 이유

김용식씨는 이번 대선을 보이콧할까 고민 중이다. 그는 “막하막하”에 이어, 특히 양당 후보가 보여주는 모습이 “데칼코마니 같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쪽에서 번갈아 가며 논란이 터져나오고, 후보의 아내들까지 각각 대국민 사과에 나서는 모양새가 두 당이 매한가지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그는 “2017년 시민들이 정치적인 주체로서 집단적인 경험을 했음에도 대선이 이런 식이라 더 가슴 아프다. 지금의 이 상태가 되기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권재창출 대 정권교체’란 진영 대결 성격의 이번 선거에서 기존 지지 정당에서 이탈한 이들이 부동층으로 빠지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는 대체로 2030세대, 특히 여성을 부동층의 핵심으로 지목한다. 지난 2월 13일 발표한 리얼미터 주간집계(오마이뉴스 의뢰)를 보면, 18~29세와 30대에서 부동층은 각각 9.7%와 12%로, 6% 이하인 다른 세대에 비해 높았다. 여성은 18~29세와 30대 부동층이 13.3%와 17.5%로 전 세대와 연령에 걸쳐 가장 높았다. 같은 세대 남성은 각각 7.1%와 7.4%에 그쳤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2020년 총선을 비롯해 최근 선거에서 민주당이 크게 이길 수 있었던 건 20~50대가 진보 진영으로 묶였던 덕분인데, 4·7 재보궐선거부터 이들이 진보 진영에서 떨어져 나가 보수 정당 혹은 제3 후보에게 가거나 부동층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5년간 청년들이 현 정부의 젠더 이슈, 부동산 문제, 북중 중심 외교정책 같은 요인으로 인해 진보적인 어젠다와 멀어졌다고 진단했다. 엄 소장은 “과거에는 진보와 보수로 양대 진영이 있었다면 지금은 60대 이상은 보수, 4050은 진보, 2030은 실용주의로 구분된다. 유권자 덩어리가 3개가 된 것이다. 실용주의 입장에서는 굳이 이념적으로 투표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직전 두 번의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연속 표를 던졌던 박주희씨(가명·31)가 대표적이다. 그는 뉴스를 볼 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바뀐다. 그는 “양당이 자기 지지세력인 딱 30% 정도만 가지고 ‘모욕 대결’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시대정신은 보이지 않고 ‘상대방 모욕을 잘하면 부동층이 우리 쪽으로 오겠지’ 생각만 하는 판처럼 보인다”고 했다. 박씨는 나라가 기울지 모른다는 ‘슬픈 예감’에 빠져들곤 한다. 그는 “한창 일할 30대 초중반을 다음 정권과 함께해야 하는데 후보들에게서 우리나라를 경제적으로 부흥시켜보겠다는 카리스마가 안 느껴진다”고 말했다. “정치가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후보를 뽑고 싶진 않다”는 그는 결국 ‘차악’을 고려하고 있다. 박씨는 “조선 숙종이 환국으로 엘리트 세도가를 갈아치웠듯이 한국 정치인들에게는 ‘못하면 얄짤없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 투표 경험이 풍부한 이들에게도 이번 대선이 난제인 건 마찬가지다. 박경이씨(가명·63)는 ‘부끄럽지 않은 대통령’을 뽑고 싶다. 그는 “후보의 배우자가 무속인에 의지하고, 법인카드를 함부로 쓰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옛날에는 그래도 확고한 ‘하나’, 마음을 주고 편을 들어주고 싶은 장점을 가진 특출난 후보가 있었는데 이번엔 그런 사람이 안 보여 결정이 더 힘들다”고 했다.

부동층(浮動層)을 부동층(不動層)으로 사로잡아라

후보 지지율, 현 대통령 지지율보다 낮아

선거에 부동층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특이한 일은 아니다. 막판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부동층(스윙보터)이 있는 건 어느 선거나 마찬가지다. 이번엔 후보들에 대한 호감도가 낮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러다 보니 각 후보의 지지율과 호감도가 현 대통령의 지지율보다 낮다. 한국갤럽 2022년 2월 2주 데일리 오피니언을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수행평가를 긍정적으로 응답한 비율(41%)을 넘어 호감도를 보인 후보가 없다. 각 후보에 ‘호감 간다’고 답한 비율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37%,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가 각각 34%, 심상정 후보가 30%였다.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응답은 57~64%에 달했다. 다른 여론조사 결과도 큰 틀에서 대동소이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역사적으로 위기가 있을 때 대통령 지지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현재 코로나19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 국정평가에 긍정 응답이 높은 것은 지지가 아니라 의지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위기에서) 의지의 대상은 여당도, 여당 후보도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 지지율이 여당 후보로 전이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층 일부는 제3지대로 흘러가기도 한다. 이진호씨(가명·26)는 ‘청렴’을 기준으로 후보를 고르고 있다. 이씨는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마치고 교도소 가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후보가 비리를 저지를지 안 저지를지를 우선적으로 보게 된다. 민주당·국민의힘 후보는 아내까지 포함해 자꾸 도마에 오르내리며 서로 싸워서 싫다”고 했다. 그는 자녀·아내 같은 가족 문제가 덜 까다로워 보이는 안철수 후보로 선택지를 좁혔다. 남은 변수는 안 후보가 제안한 단일화의 막판 성사 여부다. 김씨는 “만약 윤 후보로 단일화가 된다면 또다시 고민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최슬기씨(가명·31)는 ‘대선 이후’를 보고 투표할 예정이다. 이번 대선에서 20대 남성(‘이대남’)에 비해 2030 여성이 유권자로서 덜 호명되고 있어 아쉽다는 생각에서다. 최씨는 “6월에 지방선거도 있고 이번 대선이 정치의 끝이 아니지 않나. 이번 투표 결과가 분명 다음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고 정책에도 반영될 것”이라며 “사표가 되더라도 소수자 문제에 앞장서온 심상정 후보에 투표해 여성 유권자가 이만큼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부동층(浮動層)을 부동층(不動層)으로 사로잡아라

국민은 어떤 리더를 원하나

부동층 유권자의 마음을 열고 들어갈 열쇠는 무엇일까. 이들에게 ‘왜 뽑을 사람이 없느냐’를 뒤집어 ‘어떤 리더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김용식씨는 “시야가 넓은 정치인이었으면 좋겠다. ‘국민을 위해서’라고 했을 때 그 ‘국민’이 포함하는 범주가 넓은 사람”이라고 답했다. ‘국민’을 자신의 지지자나 특정 세대·성별로 한정하지 않는 정치인이란 뜻이다. 박경이씨는 “대통령이 되려고 공약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실현가능한 공약을 내서 한가지라도 지킬 줄 아는 사람”을 꼽았다. 최슬기씨는 “우리 세대가 원하는 정치인이 부족하다.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돼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층을 적극적 유권자로 이끌어내는 일은 정치의 몫이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낮은 투표율을 우려하는 건 부동층이 아직 10%(한국갤럽·2022년 2월 2주 데일리 오피니언)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엄경영 소장은 “2030이 종래의 정치 무관심층으로 돌아가고 있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열심히 투표했는데 변화된 게 없어 효능감이 사라지는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2030이 부동층화되고, 그 부동층은 대체로 정치 혐오 또는 정치 무관심층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엄 소장은 “최근 선거에서 지속적으로 투표율이 높아졌다가 지난해 4·7 재보궐선거에서 꺾였기 때문에 앞으로 그런 (투표율 하락) 흐름이 계속 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후보들은 남은 기간 지지층을 확고하게 다지는 것과 더불어 막판 부동층 표심 잡기에 나서야 한다. 최근 여론조사상 오차범위 밖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 뒤처지고 있는 이재명 후보 측은 ‘샤이(shy·수줍은) 이재명’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지지후보를 표명하지 않아 여론조사에선 지지층으로 잡히지 않는 ‘샤이 유권자’, 즉 부동층 일부가 사실은 자신 쪽 지지자일 것이란 희망 섞인 관측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샤이 트럼프’가 주목받았고, 통상 지지율을 추격해야 하는 쪽에 ‘샤이 유권자’들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큰 건 사실이다. 신율 교수는 “샤이 유권자를 주장하는 건 후보 스스로 자기를 지지하는 게 창피한 일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이어 “남은 기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불거지는 반중 정서,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안보 도발,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한 실제 세대별 투표율 등이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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