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이들의 행동 속 역사는 살아난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강원도 강릉에서 북위 38도선을 타고 지도 위 동쪽으로 향하다 보면 일본 본토와 떨어져 있는 섬 하나가 나옵니다. 그곳이 바로 사도(佐渡)섬입니다.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려고 시도 중인 사도광산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강압적으로 노역에 시달린 이들에게는 한이 서린 곳이기도 합니다. 전근대 금을 캐내던 때엔 일본 에도막부의 자금줄이었고, 제국주의 시대 일본이 전쟁을 벌일 땐 다양한 광물도 함께 조달하던 곳이었습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이곳이 한국과 일본의 역사전쟁 장소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의 역사는 지운 채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를 바랍니다. 한국 정부는 이런 일본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려고 합니다. 유네스코라는 무대가 각국 고유의 이해관계와는 한발짝 거리를 두고 판을 벌이는 곳이니만큼 한편으로 세계인의 시선에서 이 사도광산이라는 유산을 한번 바라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게 보면 사도광산을 근대 광업이 발전하기 전부터 토착적인 수공업이 꽃핀 산업유산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다른 한편으로 보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를 상대로 침략에 나선 전범국가 일본과 전범기업 미쓰비시가 노동자들을 억압해 가며 군수용 물자 생산을 독려한 어두운 역사의 현장이고요.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면 후보지의 역사에서 나타난 다양한 면을 함께 조명하라고 합니다. 빛과 그늘을 함께 드러내라는 주문이지요. 19세기의 골드러시는 미국뿐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의 곳곳에서 금을 좇는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이주해 고유한 문화의 정착촌까지 만든 현상이었습니다. 반면 일본 토착 광업을 대표하는 사도광산은 막부의 권력자들이 멀게는 규슈섬에 있는 나가사키에서 집 없고 가난한 자국민을 억지로 끌고 가 금을 캐도록 만든 강제동원의 현장이었습니다. 조선을 강제로 병합한 일제강점기에는 그보다 더 먼 함경도 출신 노동자들까지 사도광산에서 혹독한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세계유산이 인류 모두가 지켜야 할 유산임을 고려하면 힘을 가진 국가와 자본이 백성의 노동력과 목숨을 쥐어짜내며 부가가치를 창출했던 사도광산은 아무리 봐도 부적절합니다. 일본 정부는 이미 ‘군함도’로 널리 알려진 하시마섬의 어두운 역사를 함께 보여주기로 약속했으나 이행에 소홀했던 전력이 있습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이들의 행동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고 믿습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취재 후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