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없거나 의도가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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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찾은 건 지난 2월 10일이었다. 그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면담하며 “여성가족부 없으면 저희가 죽는다”고 말한 데 초점을 맞춰 기사를 작성했다. 사실 다른 데 더 신경이 쏠려 있었다. ‘할머니’가 적절한 호칭일까 싶었다. ‘위안부’라는 수식도 합당할까 생각이 들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2월 10일 국회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면담 전 악수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2월 10일 국회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면담 전 악수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할머니’라는 호칭이 식당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을 부르는 ‘이모’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여서다. 그가 ‘할머니’ 호칭을 원치 않을 수도 있다. 특히 기사에선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을 ‘씨’라고 부르라고 배웠다. 가장 가치중립적으로 어떤 인물을 표현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도 의존명사 ‘씨’를 “사람의 성이나 이름에 붙여 그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하여 부르거나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씨’를 고집하자니 그것도 마음에 걸린다. 일상적으로 ‘씨’는 나이나 지위가 발화자와 동등하거나 낮은 사람을 부를 때 쓰곤 하지 않나. 언어 관습이다. ‘경향신문 기사 표기 원칙’을 찾아봤다. “나이에 따라 적절한 호칭을 쓴다”며 만 70세 이상 인물은 ‘할아버지/할머니’라는 예시를 들고 있었다. 이번 기사에서 호칭으로 ‘할머니’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다.

‘위안부’ 호칭은 어떨까. 시민사회단체는 한때 ‘종군위안부’ 단어에 맞서 ‘성노예’라는 명칭을 고민했다. 이전까지 사용한 ‘종군위안부’가 듣는 이들로 하여금 피해자를 자발적으로 따라간 존재로 알게 모르게 인식하게끔 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2020년 기자회견에서 성노예 명칭에 거부감을 표현했다. 당사자가 “그 더러운 성노예 소리를 왜 하느냐”고 반발하는데 시민단체가 그 용어를 고집하는 건 무리였다.

경향신문은 ‘위안부’ 또는 ‘위안부 피해자’란 단어를 기사에 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정의한 정부의 피해자 지원 법률을 따른 것으로 짐작한다. 일제가 ‘위안부’라는 용어를 부러 만들며 여성을 성적으로 동원한 당대 상황을 잘 보여준다는 강점도 있다. 필자가 작은따옴표를 붙여 ‘위안부’라고 적은 배경이다. 이 용어의 특수성을 드러내고 싶었다. 남들은 어떤 단어를 썼는지 포털사이트를 살펴봤다. 검색 결과는 아찔했다. 일부 매체는 심지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호소인”이라고 쓰고 있었다.

“어떤 사안을 어떤 단어로 표현하려면 늘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말은 존재를 정확히 드러내기도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키기도 한다.” 학부 때 청강한 한 사회학 수업에서 들은 말이다.

당시 선생님은 베트남전, 이라크전, 한국전쟁 당시 노근리 등에서 미군이 벌인 학살을 예시로 들며 물었다. 민간인 학살인가, 부수적 피해인가. 후자는 죄 없는 시민들의 죽음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미군의 꼼수다. ‘피해 호소인’이란 말은 어떨까. 정치권에서 그 단어가 처음 등장한 건 2020년 7월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 직후 여당에서 나왔다. 고민이 없었던 걸까, 의도를 가지고 그랬던 걸까.

<조문희 정치부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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