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3연임 대관식’ 앞 올림픽 성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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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지난 2월 4일 개막했다.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20일까지 15개 종목에서 109개의 금메달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 이번 올림픽 개최로 중국 수도 베이징은 동·하계 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전 세계 유일의 도시가 됐다. 중국은 2020년 동계올림픽을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개최 이후 달라진 자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과시할 무대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번 동계올림픽 분위기는 중국의 부상을 만천하에 각인시킨 2008년 하계올림픽 개최 당시와는 사뭇 달랐다. 우선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상황이 올림픽 열기를 반감시켰다. 인권문제를 고리로 한 미국 등 일부 서방국가의 외교적 보이콧까지 더해져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시작 전부터 김이 빠졌다. 우크라이나의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등 국제정세도 올림픽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켰다.

중국 베이징 국가체육장에서 지난 2월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열리고 있다. / 이종섭 특파원

중국 베이징 국가체육장에서 지난 2월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열리고 있다. / 이종섭 특파원

2008년과 2022년 베이징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은 부상하는 중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린 계기였다. 14년이 흐른 지금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나 국력은 당시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커졌다. 경제 성장은 괄목할 만하다. 2008년 4.6조달러 규모였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18조달러로 4배 가까이 늘었다.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고, 2008년 미국의 30% 정도에 불과했던 GDP 규모는 80% 수준까지 높아졌다. 명실상부한 전 세계 주요 2개국(G2)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경제 성장은 군사, 우주 등 다방면에서 대국의 굴기로 이어졌다. 2008년 580억달러 수준이던 중국의 한해 국방예산이 지난해 2090억달러로 3배 이상 늘었다. 독자 건조한 항공모함을 취항했고, 현대전에서 ‘게임체인저’라고 부르는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서는 미국에 앞서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2019년 달 뒷면에 인류 최초로 무인 탐사선을 착륙시킨 데 이어 지난해에는 화성에 무인 탐사선을 보내고 독자적인 우주정거장 건설에도 나섰다. 5세대(5G) 이동통신과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중국의 굴기는 무섭게 뻗어나가고 있다.

이번 올림픽은 중국에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라 정치적 이벤트이기도 했다. 2008년 하계올림픽 당시 국가 부주석이었던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2년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당 총서기로 선출되며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다. 2017년 제19차 당대회에서 총서기에 재선출된 시 주석은 이듬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가주석직 3연임 제한 조항을 없애 장기집권의 기반을 마련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그의 3연임을 결정지을, 올가을 제20대 당대회를 앞두고 열리는 가장 큰 국가적 행사였다. 시 주석은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장기집권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자 발판으로 삼을 태세였다.

이런 의지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 국내외에 던지는 메시지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중국이 강조하고 있는 동계올림픽의 콘셉트 중 하나는 ‘저탄소 올림픽’이다. 시 주석은 2020년 유엔 총회에서 2030년 탄소 배출 정점을 달성하고 206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고 공언했다. 올림픽 개회식에서 한족과 55개 소수민족 등 각 민족 대표단이 국기인 오성홍기를 전달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도 시 주석이 집권 이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우며 민족 통합을 강조해온 것과 무관치 않다. 올림픽 성화의 마지막 봉송 주자로 신장 위구르족 출신 크로스컨트리 스키선수를 내세운 것은 소수민족 탄압 등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국제사회를 겨냥한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지난 2월 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최한 동계올림픽 환영 연회가 열리고 있다. / 중국정부망(중국 국무원 홈페이지)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지난 2월 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최한 동계올림픽 환영 연회가 열리고 있다. / 중국정부망(중국 국무원 홈페이지)

올림픽에 드리운 악재들

동계올림픽 분위기는 시 주석의 구상과 다소 엇나가는 모습이다. 2008년 하계올림픽 때도 중국의 티베트 시위 유혈 진압 등으로 비판적 여론이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참석하는 등 중국을 보는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이었다. 중국이 미국의 지위를 넘보는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시 주석 집권 이후 권위주의적 통치시스템을 강화하면서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미국이 신장 위구르족 인권문제 등을 이유로 선제적으로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며 중국의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여기에 일부 동맹국들이 가세하면서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개막 전부터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했다.

코로나19도 이번 올림픽에 드리운 악재다. 상당수 국가 정상과 대표단이 코로나19를 이유로 올림픽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내 관중의 경기 관람을 허용해 코로나19 방역 성공을 전 세계에 과시하려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개막을 앞두고 세계적으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고 중국 내에서도 산발적 감염이 계속되자 입장권 판매 계획을 철회하고 조직된 소규모 관중에게만 관람을 허용해 겨우 무관중 대회를 피했다. 선수단과 대회 관계자들에게는 관중을 비롯한 외부와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하며 정해진 동선 안에서만 이동이 가능한 ‘폐쇄루프’ 시스템을 적용했다. 코로나19 방역은 여전히 올림픽의 최대 난제였다. 각국 선수단과 대회 관계자들이 본격 입국을 시작한 지난 1월 23일 이후 공항 입국과 ‘폐쇄루프’ 내 검사 과정에서 400명 이상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중국의 국내 확산세는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광시(廣西)좡족자치구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는 등 불안한 상황을 이어갔다.

일촉즉발의 우크라이나 상황도 중국을 도와주지 않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지의 대규모 병력을 전진 배치하며 침공 우려를 키워갔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베이징올림픽이 끝나기 전 러시아가 군사적 침공을 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내일일 수도 있고 수주가 걸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 자체로 올림픽에 모여야 할 세계의 관심이 흩어졌다. 실제 올림픽 중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전 세계 평화와 화합의 장’이라는 올림픽의 취지는 더욱 무색해지는 상황이다. 시 주석은 이를 의식한 듯 지난 2월 5일 올림픽에 참석한 정상급 인사들을 초청해 연 환영 연회에서 “예로부터 올림픽은 인류 평화와 단결, 진보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며 “우리는 올림픽의 초심을 되새겨 세계 평화를 함께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난해 12월 유엔 총회에서 채택한 ‘올림픽 휴전 결의’를 가리켜 “이는 국제사회의 공통된 목소리”라고 역설했다.

<이종섭 베이징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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