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만큼은 ‘속이 꽉 찬’ 약속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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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그룹에서 이렇게까지 대립각이 선 경우는 오랜만이었습니다. 취재하다 보면 이념·지향에 따라 견해가 나뉘는 일은 흔히 접할 수 있습니다. 교육 의제를 놓고 진보냐 보수냐에 따라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란 문제에 달리 대답하는 것처럼요. 국민연금 전문가들은 전형적 진보·보수 구분선과는 또 다른 지형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국민연금 기금(재정)을 안정화해야 한다는 쪽과 재정 우려가 지나치니 일단 베풀어야 한다는 쪽이었습니다. 경제학·재정학 쪽은 전자, 사회복지학·행정학 쪽은 후자인가 싶었지만 아니었습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그보다는 기금 고갈 가능성 인정 여부에 따라 갈렸습니다. ‘대안을 둘러싼 각론 정도가 다르겠지’ 예상하고 취재를 시작한 터라 적잖이 놀랐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인 기금 고갈 가능성에서부터 이견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고갈 우려가 과하다는 쪽 주장을 들여다보니 당위와 기대가 혼재합니다. ‘고갈돼선 안 되니 고갈될 리 없다’ 같은 논리도 나오고요. 공포를 인정하지 않으려다 보니 바라지 않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더 나은 미래를 만들려는 양쪽의 지향점 자체는 같았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정치적 리더십입니다. 최종 결정의 순간에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일은 리더밖에 할 수 없습니다. 여러 해석과 주장 속에서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일반 시민의 혜안도 필요한 시점입니다. ‘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 나아가 ‘후세대의 문제’로까지 확장시켜 고민할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연금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쉽진 않겠지만 ‘다른 나라도 해낸 걸 우리라고 못 할 이유는 뭔가’ 싶습니다. 국민연금 개혁은 세상 어느 나라도 가보지 않은 길을 우리가 제일 먼저 가자는 게 아닙니다. 이미 다른 나라가 비슷한 고민을 하며 닦아놓은 길 위에 우리도 발을 들여놓자는 취지입니다.

기사를 마감하던 날 대선후보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윤석열·이재명·안철수·심상정 후보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연금개혁만큼은 하자”고 입을 모았습니다. 토론회 이후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을 포함한 개혁안을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이보다 앞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공적연금 통합을 이야기했고요. 기꺼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보려는 시도만큼은 인정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약이 ‘공약(空約)’이 된 세상이라지만, 이번만큼은 ‘속이 꽉 찬’ 약속이 되길 바랍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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