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주택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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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보금자리’라고 한다. 실제로 주거의 뜻으로 보면 사람이 주인이 되는 공간이고, 가족을 이루고 오래 살아가는 터전이다. 그런 집이 언제부터인가 재산목록이 되고 돈벌이 수단으로 변해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적응이 잘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현실은 가구당 평균 자산의 70% 이상이 주택에 몰려 있다. 그나마 이게 조금 내려온 수치다. 종전에는 80%가 넘었다.

일러스트 김상민기자

일러스트 김상민기자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집을 향한 애착과 사회적 열망이 높아진 결과다. 30대 후반 지나서야 집을 장만하던 우리 사회의 오랜 경향에 비춰볼 때 놀랄 만한 일이다. 2021년에 주택을 구입한 세대 중 2030세대 비중이 가장 높았다고 한다. 취업도 어렵고, 창업도 어려운 현실에서 이들이 이렇게 서둘러 집 장만에 나선 걸 보면 앞으로 가구당 총자산에서 집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누구나 살아야 하는 집으로 돈을 벌겠다고 너도나도 뛰어드는 사회적 현상을 바라보노라면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국정을 맡은 정치인들도 어느 진영을 막론하고 집값 안정을 주된 정책목표로 삼고 있다.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주택자산의 가치가 늘어나는 것을 본 상당수의 국민이 주택을 재테크로 인식한다. 주택에 매기는 세금에 더 거세게 저항하는 추세다.

집을 재테크로 인식하는 사람들

주택은 인간의 유구한 생활양식이다. 수렵채취 시대에서 농경사회로, 또 산업사회로 변화해오면서 주택은 점점 도시 안에 자리를 잡았다. 도시는 이제 하나의 거대한 지능운영 시스템이 됐다. 그 안에서 주택은 새로운 형식과 구조로 변혁을 거듭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더 안전하고 건강하고 문화적이며 과학적인 지식통제 기능이 커지는 도시의 구조 속에서 주택은 미래개념의 공간으로 나아간다.

서울을 중심으로 보면 광역고속 교통망 안으로 신규주택이 들어오고 있다.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 전시장 주변에서 서울 삼성 코엑스 전시장까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를 이용하면 30분 이내에 도착 가능하다. 미래의 주택은 역사(驛舍)를 중심으로 생활 거주 서식지를 형성해갈 것이다. 오래도록 빈터였던 일산 킨텍스 주변 부지에 압축된 도시생활 문화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는 초고층 주거타운을 건설하고 있다. 서울 강남에 살 것인가, 아니면 일산 킨텍스 인근에 거주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노선 이용자들 사이에선 이는 취향의 문제로 자리 잡을 것이다. 흔히 강남의 거주지 같은 곳을 ‘타운하우스’라고 부르고 킨텍스 거주지 같은 곳을 ‘컨트리하우스’라고 한다.

국민소득 3만5000달러 돌파를 앞두고 있다. 머지않아 국민소득이 4만~5만달러 정도가 되면 도심의 타운하우스와 교외의 컨트리하우스 두곳에 집을 다 장만하는 가구도 늘어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주택 소유자의 세제정책도 변하게 마련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즈음이면 사람들의 생각이 다양해진다는 점이다.

덴마크를 예로 들어보자. 국민소득 6만달러인 그들은 우리처럼 천편일률적으로 주택을 바라보지 않는다. 수도 코펜하겐처럼 국제적인 역할을 하는 곳의 집세는 비싸다. 외국인의 왕래가 잦아서다. 자연히 매매 가격도 높다. 자연환경을 보호하려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작은 도시에서 자기 방식으로 일하고 사는 사람들은 편리하고 쾌적한 집에서 산다. 그 집은 그리 크지 않고 비싸지도 않다. 우리로 치면 실내 공간이 20평 내외다. 굳이 집을 사지 않고 조합주택이나 공공주택을 임대하는 사람도 많다.

문제는 마음의 가치와 생각의 여유다. 소득이 올라가면 사회가 관대해지고 다양해진다. 우리가 그 초입에 있다. 갈등 국면이다. 우선 도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집 장만이 두드러져 대도시의 집값이 많이 들썩인다. 시간이 갈수록 자기가 일하고 거주하고 싶은 곳으로 보금자리를 찾아 떠날 것이다. 그 방향이 어디라고 콕 집어 말하기 어렵고, 일률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삶의 형태에 맞는 집 찾아나설 것

뉴욕 맨해튼에서 북쪽으로 30분 정도 기차를 타고 가면 스카스데일이라는 마을이 나온다. 숲속의 작은 이 마을은 집값이 퍽 비싸다. 학교도 있고 쇼핑도 가능해 생활이 편리하다. 맨해튼의 고임금자들이 많이 산다. 일터까지 기차로 30분이면 충분하다. 나머지 시간은 가족과 쾌적한 숲속 마을에서 지낸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런던의 베스널 그린 같은 곳에는 조금 오래된 작은 집들이 많다. 실내 공간이 협소하고 임대료도 대체로 비싸다. 런던이라는 도시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만족하며 산다. 선택의 문제다.

우리는 지금 공공 임대주택이나 민간의 임대용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선택이 다분히 제한적이란 얘기다. 도시주택 공급을 오래도록 시장에 맡겼기 때문이다. 나라가 가난한 탓에 공공으로 집을 지어줄 형편이 못 됐다. 민간 건축업계에 주택사업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 이런 구조를 변경하는 건 쉽지 않다. 공공보다 민간의 공급이 많은 나라여서 공간의 서비스 기대가 높다. 그만큼 건축비가 많이 든다. 이윤도 많이 남기려고 한다. 주택 공급을 늘리려면 부득이 민간업자들을 지원하고 규제를 완화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 10년 동안 서울은 이 문제가 원활치 않았다. 그 와중에 코로나19가 덮쳤다. 서울 집값이 폭등했다. 신규주택의 선호도까지 높아져 얼마 안 되는 새집들이 집값의 고공행진을 부추겼다.

앞으로 사람들은 점점 자기 삶의 형태와 방식에 맞는 집을 찾아갈 것이다. 다양성과 실용성을 추구할 것이다. 지금의 MZ세대가 앞장설 것으로 보인다. 달라지는 도시 전체는 주택의 중요한 인프라를 형성한다. 분당과 일산의 1기 신도시는 국민소득 1만달러 즈음에 만들었다. 동탄은 2만달러를 전후해 만든 신도시다. 광교는 3만달러에 진입하면서 등장했다. 4만달러 진입을 앞두고 1기 신도시들이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이전보다 도시 인프라가 크게 나아질 것이다. 가격상승 요인이다. 신규 효과일 뿐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집이나 돈이나 직업을 너무 획일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팽배하다. 소득이 높은 나라일수록 집은 마음의 자산이다. 마음이 크고 넓은 사람은 누옥도 고래등으로 여기며 산다. 정치의 계절이다. 너무 집으로 표를 사려고 하지는 마시라.

<엄길청 국제투자분석가·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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