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내 일로 내 돈 잘 벌면 그냥 세상이 재밌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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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와 함께 과거를 되감는 동안 격자무늬 불판에 올려놓은 장어가 싹 사라졌다. 후속으로 조개와 까만 새우를 시키고선 건배 한 번 주고받았다. 안주의 공백기 동안 아주 짧게 내 상황을 요약했다. 페이스북이랑 신문에 글 좀 쓰다 보니 유명해졌다. 지금 너랑 얘기하는 것도 칼럼에 낼 거다. 어떤 쪽이든 반응 자체는 꽤 좋을 거다. 동생은 무릎을 치며 웃었다. “옛날부터 구라빨 좀 세운다 싶드만. 글빨로 뜬 줄은 또 몰랐네. 낸주 책 내면 사인 해주이소. 비싸게 팔그로.” 비었던 불판이 다시 한 번 가득 찰 무렵, 술기운을 빌려 솔직하게 물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생각보다 건전하게 잘 살더라”

“내는 니가 조만간 맛 갈 줄 알았데이. 도박하고 다단계랑 사채 놀음할 줄 알았드만. 억수로 건전하게 잘 살데. 우째 그리 균형 감각이 좋노?”

동생은 공로를 아버지한테 돌렸다. 실업계고 출신인 동생은 졸업하자마자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일했다. 하수관 청소를 따라 나간 첫날. 열악한 환경과 극악의 노동 강도에 거하게 충격받았다. 이제껏 집 안에서 담배 피우고 술 마시며 잠만 자기 바빴던 아버지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이런 일을 30년 가까이 해온 것. 막노동으로 홀로 자식 둘에 할머니까지 감당해냈으니 올바른 가장 노릇할 여력이 남았을 리 있나. 그날부터 동생은 아버지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그가 어떻게 가정의 기둥으로서 온전히 살아왔는지 알게 됐다. 아버지는 ‘원칙’을 입에 달고 살았다. 원칙만 지키면 어떻게 살아도 타인에게 손가락질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동생이 어찌어찌 인맥을 통해 병역특례 업체에 취업한 날. 아버지는 딱 여섯가지 원칙만 지키며 살라고 했다. 그 원칙이 뭐였는고 하니 ‘일과 놀이를 철저히 분리한다’, ‘평소 근력 운동과 달리기를 병행한다’, ‘노는 날과 금액 한도를 정확하게 정한다’, ‘책임지지 못할 잠자리는 절대 갖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을 매일 누릴 수 없다는 걸 생각한다’, ‘잘하고 싶은 분야를 정해 계속 공부하고 발전시켜 나간다’ 등이었다. 동생은 어째 <12가지 인생의 법칙>의 저자인 조던 B. 피터슨을 떠올리게 하는 그 여섯가지 법칙을 철저히 지켰고, ‘카푸어’로 살면서도 자격증을 따고 약간이나마 저축도 했다.

트랙터 조립 회사에서 기능요원으로 복무하던 동생을 일찌감치 눈독 들인 사람이 있었다. 동생이 ‘차 상무’라고 부른 그는 말년이 걱정인 은퇴 직전의 86세대였다. 먹고살 정도는 저축했지만, 갑자기 딱 숨만 붙이고 살아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웬수 같은’ 아들놈이 헛바람 들어 사업하다가 날린 돈이 결정타였다. 임원 임기는 얼마 남지 않았고, 국민연금을 받으려면 3년쯤 더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궁지에 빠진 상무는 꾀를 냈다. 자사 제품이 주로 팔리는 지역은 고성과 사천이었다. 교통 환경이 나빠 농부들은 제품을 정비할 때마다 곡소리를 냈다. 본사 역시 애프터서비스(A/S)로 시비가 걸릴 때마다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마침 사천에 떨이로 나온 공장부지도 있겠다, 정비소를 차리기로 마음먹고 회장과 면담해 아예 트랙터 유지·보수 일을 전담하기로 했다. 손재주 좋은데다 성실했던 동생은 영입대상 1순위였다. 차 상무는 동생의 소집해제 1주일 전 제안 하나를 건넸다. 사업 세팅을 다 했는데, 간간이 자재를 실어 날라줄 테니 매달 얼마 정도만 자기에게 쥐여주면 유지·보수업체 사장을 시켜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동생은 솔깃한 제안을 받고 꼼꼼하게 검토한 후 승낙했다.

기술 장사가 다 그렇듯 초반엔 엄청나게 헤맸다. 구조를 아는 것과 고쳐서 다시 쓸 수 있게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매일 도면을 보며 씨름하길 2년. 기술을 손에 익힌 와중에도 1종 특수 면허를 따서 외주를 줬던 견인 작업도 본인이 직접 했다. 농촌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살던 파키스탄 외국인 1명도 발굴해 세척 공정에 투입했다. 사업 시작한 지 올해로 8년째 접어들었다. 1년에 얼마 정도 버느냐 물어보니 검지 하나만 딱 추켜세웠다. 1억원이란 뜻이었다. 입이 떡 벌어졌다.

“그리 잘 범시롱 뭐한다꼬 다마스 타고 나왔노?”

새우살을 쏙 뽑아먹은 동생은 술이 좀 들어간 듯 반말로 답했다.

동생의 꿈은 수천억대 자산가

“놀 만큼 놀아보이 알겠데. 그때는 고마 존경이 받고 싶었던 기라. 행님도 잘 알 거 아인가베. 4년제 나온 놈년들이 우리 못 배았다고 겁나 깔본다 아이가. 그게 싫어가 잘나가는 척하고 댕긴 기지. 근데 돈 버는 맛 알고 나니껜 다 소용 없드라. 글마들 다 빌빌댈 동안 내는 돈 잘 벌자네. 내 일로 내 돈 잘 벌면 그냥 세상이 재밌드라. 요즘 일감 떨어지면 그래 우울하데.”

10년의 세월은 카푸어를 워크홀릭으로 바꿔놓았다. 2차는 맞은편 수제맥주 집에서 마셨다.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다음 목표’로 넘어갔다. 먼저 조심스레 소리 죽여 운을 뗐다.

“오메, 큰일 할라 카시네. 지금부터 잘 보여야 하는 거 아인가?”

너스레를 떨며 동생이 자기 꿈을 밝혔다. 듣는 순간 너무 단순명료해서 웃다가 그만 맥주를 쏟아버렸다. 동생은 “수천억대 자산가가 되고 싶다”, “사업 규모를 더 키우고 투자 공부도 더해서 돈이 썩어 넘치도록 벌고 싶다”, “경남에서 이름난 부호가 돼서 날아다니던 철새들도 나 보면 내려와 인사하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런 다음 뭐할 거냐 물으니 “일단 쌓아놓고 고민해도 안 늦지 않수?”란 대답이 돌아왔다. 대번에 수긍했다. 각자 1000㏄를 마시고 대리운전을 불렀다. 헤어질 시간이었다. 맞은바라기의 마산만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가을바람이 취기를 몽땅 쾌감으로 바꿔주고 있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마냥 내일부터 모든 일이 잘 풀릴 듯한 기분이었다. 곧 기사분이 왔다. 조수석에 탄 동생이 창밖으로 손을 내밀고 흔들었다.

“하는 거 다 말아 잡수시면 연락하소. 용접사 하나 필요하거등.”

“아이쿠, 아우님. 신경 써주셔서 고맙소.”

동생은 예나 지금이나 속물이다. 동시에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세속에서 살아가는 재능과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겸비한 천재다. 성공하려는 욕망이 가득했고, 실제로 차근차근 이뤄가고 있다. 아마 수많은 기업인이 동생과 같은 과거를 보냈겠지. 그들의 대다수는 부의 정점에 오른 다음에도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폭주를 이어갔다. 노동자를 밟아 누르고, 중소기업이 피눈물을 쏟게 했으며, 정치인과 야합해 나라를 제 입맛에 맞게 건드렸다. 왜 그럴까 늘 생각했는데 오늘 그 답의 편린을 주운 느낌이었다. 그들은 원칙이 없었거나 권력을 얻으면서 다 잊어버렸다. 방향성 없는 권력은 블랙홀처럼 그저 팽창을 거듭하며 약자들을 집어삼켰다. 동생은 다르리라. 그들처럼 부자가 된다 한들 마음속에 원칙을 품고 계속 실행하는 한, 적어도 비열한 기업인이 되지는 않으리라. 속물이면 어떠하랴. 지역에, 국가에, 세상에 도움만 되면 그만이지.

<천현우 용접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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