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세권’에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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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맛없기가 더 어려운 음식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겨울에 먹는 붕어빵이다. 노릇하게 구워 윤기마저 감도는 유선형 자태. 적당히 바삭하면서도 뜨끈한 붕어빵을 한입 무는 순간 부드러운 반죽이 고소한 훈김을 풍긴다. 토실토실 살찐 붕어 뱃속엔 달큰한 팥앙금이 가득하다. 가히 겨울 간식의 왕이라 할 만하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가 있다면 겨울 시즌은 붕어빵의 독무대일 터이다.

냉동 붕어빵을 조리하는 모습 / 조해람 기자

냉동 붕어빵을 조리하는 모습 / 조해람 기자

어릴 적 곳곳에 붕어빵 노점이 있었다. 요즘은 도무지 찾기가 어렵다. 지금 사는 곳도 ‘붕세권’이 아니다 보니 주변에 붕어빵 가게가 없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치는 이 계절, 붕어빵을 직접 만들기로 했다. 심심할 때 하나씩 해먹을 요량으로 냉동 붕어빵을 주문했다. 프라이팬에 구워도, 전자레인지에 돌려도 역시 아쉽다. 우선 크기가 ‘원조 붕어빵’보다 훨씬 작다. 무엇보다 무쇠틀을 돌려가며 강한 불에 구워낸 그 맛을 도저히 흉내낼 수가 없다. 골목마다 서 있던 붕어빵 포장마차의 정겨운 냄새가 더 그리워진다.

‘멸종 위기’를 맞은 건 붕어빵만이 아니다. 붕어빵만큼 좋아하던 풀빵 노점도, 군밤이나 군고구마, 호떡 노점도 이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시 통계를 보니 지난해 9월 노점 수가 5873개로 2016년 7718개보다 1845개(23.9%) 줄었다. 폐업신고를 하지 않은 가게까지 고려하면 더 많은 노점이 사라졌으리라.

노점이 사라진 이유가 궁금했다. “훌쩍 뛴 원자잿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장사를 접거나 지방자치단체의 단속에 자리를 떠났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기사 몇편을 더 읽고 댓글도 구경한다. 댓글창에 일렁이는 싸늘한 감정을 느꼈다.

‘어쩌면 우리도 노점의 멸종에 한몫 거들고 있는 건 아닐까.’

다들 붕어빵을 그리워하고 뜨끈한 군고구마의 정감을 기억한다. 허름하고 오래된 것들이 새로운 유행과 만나 탄생한 ‘뉴트로’ 감성을 “힙하다”며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노점은 ‘세금도 안 내는 도둑’이라고 부른다. 포장마차를 하루빨리 내몰아야 하는 흉물로 보는 시각도 엄연히 존재한다. 지난해 노점상의 월평균 운영소득은 131만2000원이었다. 이들의 54.9%는 100만원 밑으로 벌었다(한국도시연구소·‘노점운영가구 설문조사분석 결과와 시사점’). 그럼에도 “노점 할머니들 다 벤츠 끌고 다닌다더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우리의 ‘엄·근·진(엄격·근엄·진지)’은 왜 이토록 선택적일까. 붕어빵은 맛있지만, 붕어빵을 굽는 이의 생존은 또 다른 문제인 걸까.

탈세의 온상이라는 세상의 오해와 달리, 정작 노점상인들은 “우리도 세금 내며 장사하고 싶다”며 최근 입법청원을 냈다. 노점상을 사회경제적 주체로 인정하고 생존권적 기본권을 보장해 달라는 외침이다. 이들의 주장을 담은 ‘노점상 생계보호 특별법’은 지난해 12월 21일 청원 이후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극적으로 5만명의 동의를 얻어 지난 1월 20일 국회로 넘어갔다. 내쫓기고 비난받아온 노점상의 모진 날들이 이번에는 드디어 빛을 볼 수 있을까.

집에 오는 길에 따뜻한 붕어빵 한봉지를 좀더 쉽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나도 붕세권에 한번 살아보고 싶다.

<조해람 사회부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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