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이 없는 청년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스물여덟 혜림씨는 어릴 적 달리기를 잘했다. 중학생 때 다리를 다치는 일만 없었다면 지금쯤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3년 경남 창원의 직업계고를 졸업하고 들어간 대기업 하청공장이 그의 첫 직장이었다. 공장 내 텃세 같은 건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하루종일 서서 눈이 빠지도록 부품을 조립하는 일도 야간수당까지 더해 받는 300만원가량 월급을 생각하면 참을 수 있었다. 혜림씨는 1년 만에 공장을 나왔다. 그곳엔 미래가 없었다. 경력을 쌓는다고 직급이 높아져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더 좋은 일자리로 옮길 만한 기회도 마땅치 않았다. 오래 일할수록 화상을 입고 다치는 일만 늘었다.

중견기업 일자리 드림 페스티벌에 참가한 구직자가 핸드폰으로 채용공고를 촬영하고 있다. / 김정근 선임기자

중견기업 일자리 드림 페스티벌에 참가한 구직자가 핸드폰으로 채용공고를 촬영하고 있다. / 김정근 선임기자

혜림씨는 5년여 동안 제대로 된 일을 구하지 못했다. 급전이 필요할 때 쿠팡 물류센터를 찾거나 공장에서 월 단위로 근무하며 생활을 이어갔다. 지난해 혜림씨는 동네 어른의 추천으로 보험설계사 일에 도전했다.

“설계사 공부가 무척 재미있어요. 노력하면 보상도 따르고 성공할 수 있는 직업이래요. 이 일은 오래 해보고 싶어요.” 그 무렵 그가 했던 말이다.

창원에는 제조업 일자리가 널려 있지만 혜림씨처럼 ‘단기 알바’를 전전하는 청년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직업계고 졸업자 취업통계 조사결과’를 보면 직업계고를 졸업한 학생 취업률은 지난해 28.6%로 전년에 이어 30%에 못 미쳤다. 취업한 직업계고 학생들 약 40%는 1년도 안 돼 사업장을 떠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로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줄인 탓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열악한 일자리, 장래가 없는 단순 반복 노무, 학업과 업무 간 미스매치 등이 문제의 원인이다.

한국은 경쟁이 치열한 사회라고 쉽게들 말하지만 직업계고 학생들이 첫걸음을 내딛는 사회에는 경쟁이 없다. 대부분 일자리가 노력을 보상으로 이어주는 사다리 없이 ‘존버(계속 버틴다)’만 끊임없이 요구한다.

주요 대선후보들이 2030 유권자들에게 다가가려고 각종 청년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 1월 11일 교육비를 우선 지원하고 취업 후 일부 상환하는 ‘휴먼 캐피털’ 제도를 도입해 디지털 인재 100만명을 양성하겠다고 말했다. 동시에 555 성장 공약(코스피지수 5000 달성, 국민소득 5만달러, 종합국력 세계 5위)이라는 신경제 비전도 선포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일자리 격차,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산업전환기 일자리 부족 문제 등과 같은 복잡한 현실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다룰지는 모호하다. 구상이나 해법이 뾰족하지 않다는 얘기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정부주도 일자리가 아닌 민간주도 일자리, 기업투자 일자리, 디지털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어떻게’는 보이지 않는다. 청년을 위한 올바른 정책 대안을 제시하려면 비수도권, 비진학 청년들과 수도권, 고학력 청년을 구별해 접근해야 하는데 두 후보 모두 청년 전체를 뭉뚱그려 바라보고 있다.

혜림씨는 최근 통화에서 “보험설계사 직업을 그만뒀다”며 “다시 일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묻지 못했다. 유독 시릴 이 겨울이 속히 지나가게 해달라고 잠시 기도했다.

<윤지원 경제부 기자 yjw@kyunghyang.com>

꼬다리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