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국가자본을 국민과 공유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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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언급하는 ‘청자백자, 국민자본론’은 청년들에게 일정한 규모의 국가자본을 나눠주고, 100세를 준비하는 중장년 국민에게는 여러 혜택과 환경을 조성해 스스로 노후자산을 모으게 하는 정책을 말한다. ‘청년자본, 백세자산’을 요즘 유행어로 함축한 말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이른바 MZ세대라는 2030세대의 인생설계가 정말 막막하다. 이 세대의 부모들은 아직 자식 뒷바라지에 한창이다. 게다가 자신의 ‘100세 인생’도 준비해야 한다. 두 세대의 고민은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어느 지점에서 이들이 모두 난관을 만났는지는 아주 복합적이다. 이미 이 현상은 시작됐으며, 곳곳에서 피해자가 등장하고 있다. 그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우리는 또렷이 목격하고 있다.

이런 정황은 2016년 다보스포럼이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선언하면서 관련 학자들의 통찰로 서서히 감지됐다. 2020년에 예기치 않은 코로나19 공습으로 삽시간에 등장한 새로운 뉴노멀 바람으로 지구촌 전체가 빠른 속도로 공포에 빠져들고 있다.

지금이 논의할 적절한 타이밍

‘청자백자, 국민자본론’은 이보다 먼저 등장한 기본소득론의 당위론도 더불어 포함하고 있다. 사안의 시급성으로 보면, 국가가 재원을 만들고 나서 논의하자는 것이 아니라 ‘선(先)제도, 후(後)재원’이 불가피한 수순이자 우리 사회에 떨어진 ‘발등의 불’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도 프랑스 청년들에게 만 25세가 지나면 프랑스 성인 평균자산의 60%인 12만유로(1억6000만원 정도)를 기본자산으로 주자는 제안을 코로나19 와중에 한 바 있다. 프랑스에 비해 한국은 경제발전이 빨라 머지않아 우리 경제가 소득수준 측면에서 볼 때 프랑스와 거의 비슷한 경제규모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기본자산)를 논의할 타이밍이 됐다는 얘기다.

한국에선 ‘수익자 부담원칙’이 대전제였고, 개인의 경쟁과 효율을 시장경제의 핵심으로 이해하고 있는 국민에게 이런 주장은 급격하다는 인상을 줄 뿐만 아니라 분명 낯선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정치제도나 국가운영은 국민이 처한 생존의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맞는 시대담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마침 202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이런 논의를 시작할 최적의 시간이다.

농경사회는 자연환경이 경작자본으로 지역 환경에 따라 공평하게 나뉜다. 토지를 제외한 빛이나 공기나 물이나 바람이 장소에 따라 다르긴 해도 일정한 권역에서는 공정하게 나눠 사용한다. 산업사회에서도 인간의 지혜와 근면·성실과 노동력이 교육이나 장소나 가정에 따라 일정한 차이를 보이지만 대체로 접근성과 도전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상당히 공평하게 열려 있다.

다가오는 자율 데이터 운영과 지능생산 로봇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비대면 기술, 플랫폼기업, 원격연결 등의 시스템이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자율과 지속의 데이터 인식과 인공지능과 로봇의 작동기술로 무장한 채 더 빠르게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 책을 한자 한자 읽는 세대와 한단어 한단어 읽는 세대와 한페이지씩 한 번에 읽는 세대가 동시에 이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번 대선을 보라, 이미 세대갈등과 세대 규합이 종래의 진영논리나 이념 다툼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뚜렷하지 않은가. 무슨 돈으로 청년에게 자본을 주고, 중장년에게 노후자산 형성지원금을 줄 것인가. 당장 몇가지가 생각난다.

청년·중장년에게 다양한 혜택을

우선 청년자본금의 재원으로는 기업의 배당소득세 전환을 검토해 이를 국민배당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 우리는 배당을 법인세와 이중으로 과세를 하고 있어 전통적으로 기업들이 배당을 억제하고 사내에 이익을 유보하는 경향이 많다. 오히려 사내 유보가 많아지면 성장의 욕구가 낮아져 고용의 탄력성이 줄어들 수도 있다. 유보된 자기자본으로 미래기술 개발에 나서면 인간고용 배제의 미래생산 기술을 더 앞당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기업들이 첨단기술과 지능화 시설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는 현실을 감안해 인적 투입 감소가 불가피하지만, 생산성 개선이 기대되는 산업 부문이라면 기업투자의 비용상각 기간을 고속으로 단축하는 대통령령 등을 시행해 기업투자를 지원하는 동시에 고속상각세도 부과해 재원 마련에 나설 수 있겠다.

또 일정한 감세를 통해 가족기업의 조기 상속과 증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서 늘어난 증여와 상속세 일부를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군 인력도 모병제를 검토하는 지금, 국방비 일부를 군복무 중인 청년들이 전역 후 국내 안보기술이나 국방서비스 관련 업종을 창업할 때 지원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인원이 줄어드는 데 따라 발생하는 국립대학교나 사립대학교의 학생장학금 지원 재원 여분을 재학생이나 졸업생의 창업지원 자본금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중장년의 노후자산 확보 재원으로는 토지초과이득세나 새로 도입하는 주식의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등에서 조성한 재원을 노후재산형성 정부지원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중장년의 자산 격차를 키우는 주된 요인인 부동산 투자부문에서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의 인허가 정책을 현실적으로 완화해 그 혜택 증가에 따른 정부 개발이익 환수 증가분을 중장년의 노후자산 형성 재원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40세를 기준으로 여유가족은 그 전에 미리 증여나 상속을 가능하게 하고, 이를 계기로 증가한 재원으로 지원이 필요한 서민층이나 중장년 저소득층 가족을 도우면 어떨까. 과거 근로자의 자산증식을 도왔던 재형저축과 같은 제도를 마련해 이들의 재산형성과 자산축적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 마중물을 부어 국민연금의 자발적 가입을 유도하거나 정부 보유 우량주식이나 유휴 국유지의 공개매각 시 혜택을 주는 방안 등도 강구해볼 수도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진입으로 ‘국가 재창업’이라는 대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전의 개념과 가치관으로는 더 이상 모든 국민에게 공정한 기회와 미래사회의 희망을 안겨줄 수 없다. 노동과 기술과 지식의 개인 연마가 어려워지는 대다수 국민과 시대적 국민재산과 국가의 부를 슬기롭게 공유할 시기가 됐다는데, 모든 국민이 인식을 같이할 필요가 있다. 시장경제를 통한 혁신과 성장과 촉진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가운데 국가 공동의 부를 신성하게 공유하려는 국가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한국은 가장 민주적이며 산업기술이 우수한 나라다. 어느 선진국보다 먼저 혁신적인 국가자본의 공유시대를 열어나갈 잠재력이 있다. 이 정치의 계절에 지금 어느 진영의 정치가이든, 이 화급한 시대적 화두에 응답해 부디 그 실천에 앞장서주길 당부한다.

<엄길청 국제투자분석가·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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