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가 좋으면 나머진 짜가라도 믿어주거등”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월 250만원을 벌면서 리스한 포르쉐를 타고 다니는 청년 남성을 어찌 생각하는가? ‘젊을 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분은 별로 없을 듯하다. 유튜브나 황색지에선 이들을 초빙한다는 명목으로 데려와 조롱거리로 전시해놓는다. 결혼과 가정을 중요시하는 어른들은 혼인 적령기 전 자본 축적을 이유 삼아 혀를 찰 터이고. 인생에서 최고로 중요한 시기를 경쟁으로 보내는 대다수 동갑내기 청년들도 한심하다며 고개 저을 터이다. 나 역시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동생을 만나기 전까진….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전기학원에서 시작한 만남

용접을 잠깐 관두기로 했다. 그 말인즉, 퇴사하기로 했다. 당시 주 50시간 현장 노동에 칼럼 2건과 연재 원고 최소 1건, 여기에 출판까지. 도저히 다 감내할 수가 없었다. 노조 출신 사장님은 내가 출연한 방송과 칼럼을 모두 챙겨보는 분이다. 사직서를 들고 가자 사장님은 되레 기뻐하며 “더 잘하는 일,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오라”며 등을 떠밀었다. 퇴사 당일 바로 전기학원에서 만났던 동생과 약속을 잡았다. 두 번째 인터뷰였다. 내 최대 관심사는 ‘후배가 과연 무슨 차를 타고 올까’였다. 본인의 드림카가 람보르기니라고 입이 닳도록 얘기하던 동생이었다. 마침 안정적인 사업을 하고 있어 벌이도 괜찮다니 하다못해 ‘벤츠 S클래스’나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정도는 모시고 올 줄 알았다.

어시장 맞은편의 장어 골목과 유람선이 오가는 선착장엔 인파로 북적였다. 각자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속 주인공이 되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은 ‘위드 코로나’의 희망으로 가득하던 당시 여느 풍경과 다를 바 없었다. 가로등이 하나둘 눈 뜨기 시작할 시각, 삼거리의 한 장어구이집 앞에서 동생의 차를 확인한 순간 무릎을 쳤다. 자영업자들의 영원한 동지, 다마스였다. 차에서 내린 동생은 여전히 껄렁껄렁한 말투로 “여이, 행님아. 요즘 방송 자주 나오시드만?” 하고 인사를 건넸다. “아우님이야말로 사장님이 되셨잖은가.” 능글능글하게 응수하고선 2층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찌깨다시’가 깔리자마자 한잔 주고받은 우린 똑같은 물음을 던졌다. “대체 어쩌다가 그리되셨소.” 숯에 불이 붙기도 전이었다. 10년간 서로 느슨하게만 알아왔기에 둘의 변화를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리가 처음 만난 장소는 경남 창원시 합성동의 전기자격증 학원이었다. 원장은 한전에 다니면서 기술사 제외 전기 관련 자격증을 다 딴 능력자였다. 학원 평판도 좋았고 실제 수업도 열정 넘치게 했다. 10년은 쓴 듯한 낡은 강의 노트 하나를 손에 든 채 “이 문제 100% 나와, 100%. 별 하나에 10승! 빨간 줄 2개!”를 외치던 원장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학원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낡디낡은 상가는 먼지 안식처요, 거미들 사냥터였다. 강의실엔 칼에 긁히거나 볼펜 낙서가 남아 있는 책상과 리벳이 달랑대는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저녁반은 모두 직장인들이다 보니 좁고 퀴퀴한 곳에 피로의 아지랑이가 넘실댔다. 강의 중간 쉬는 시간에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부 먹고사는 이야기였다. 대체로 “요즘 땜장이 해가 살 만한교?”, “말도 마소. 재우(겨우) 입에 풀칠하니께.”, “이명박이 분명 친서민 정책한다 그러지 않았슈?”, “그쟈, 진짜 서민 아구창을 쳤지.” 같은 대화 흐름이었다.

중년만 가득한 학원엔 특이한 수강생이 있었다. 요란한 모히칸 헤어를 한 동생이었는데 평일엔 추리닝 차림이다가 금요일만 되면 잔뜩 명품을 걸친 차림에 포르쉐를 타고 왔다. 겉보매와 달리 지각 한 번 안 하는 모범생이었다. 나와 똑같은 카시오 공학용 계산기를 사용한 터라 사용법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제법 친해졌다.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친구였다. 동생은 나름 잘 나가는 중소기업 공장에서 병역특례로 일했다. 월급 250만원과 500% 상여금을 몽땅 차 리스 비용과 유지비, 클럽에 가서 노는 용도로 썼다. 노는 날은 딱 하루, 금요일 저녁인데 그때만큼은 눈치 안 보고 마음껏 놀았다. 어째, 신데렐라가 떠오른다. 중소기업 직장인이 감내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은 아니었다. 처음엔 그 동생을 좋게 보지 않았다. 아니 몇술 더 떠 한심하게 보았다. 그저 허파가 열기구마냥 부풀어 생각 없이 논다고 생각했다.

학원에서 동생과 같은 회사 다니는 대리님을 알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셋은 수업 전 분식집에 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대리님 입에서 동생 칭찬이 나왔다. “이 친구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주말 특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승진하려고 자격증 공부까지 하고 있다”, “윗사람들한테 싹싹하고 후배들도 다 좋아한다” 등. 비행기 태우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달 탐사 로켓에 실어주는 수준이었다. 그때마다 동생은 일부러 후루룩대며 라면을 빨아들이곤 했다.

이 친구는 뭔가 다르다

어느 날 동생의 차를 얻어 탈 기회가 있었다. 시침이 9시에 도착하자마자 후다닥 내려와 차 시트를 깔고 앉았다. 처음으로 타보는 수입차 느낌은 마냥 생경했다. 상상 이상으로 불편한 좌석, 요란하지 않고 낮게 울리는 배기음, 열린 천장을 타고 들어와 바로 몸통에 꽂히는 바람, 빨간불 받고 잠깐 멈췄다가 녹색불이 켜지자 순식간에 치솟는 속도계, 이제껏 곁불 쬐듯 얻어 타본 차들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고속도로를 내달리는 동안 한껏 들뜬 동생에게 슬쩍 물었다.

“비싼 차를 왜 이리 무리해서 타는 거야?”

동생은 낄낄 웃더니 특유의 반말 섞인 존대로 말했다.

“행님, 차만 비싼 게 더 싸게 먹힙니더. 차가 좋으면 나머진 ‘짜가’라도 다 믿어주거등. 내 시계, 가방, 지갑, 구두, 벨트, 싹 다 ‘짭퉁’이라예. 메이드 인 차이나! 일마들 정가 주면 억 넘어갈껄? 내는요, 지금은 짭퉁 인생이지마는 언젠간 진퉁 롤렉스 찰 낍니더. 중고 포르쉐 말고 람보르기니 쌔삥으로 뽑을 거고요.”

“그라믄 지금부터 애끼야(아껴야) 되는 거 아이가?”

“아이지, 아이지. 지금처럼 이삼백 벌어봐야 그런 것들은 평생 몬 사지. 지금은 동기부여만 하는 기라예. 행님은 우예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는 이리 노는 기 너무 재밌그등. 두고 보이소. 겁나 성공해가꼬 매주 이거보다 더 멋지게 놀끼라.”

그제야 동생이 왜 그토록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됐다. 화려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나름 멋진 삶의 방식 아닌가. 신나게 놀고 헤어지는 길에 동생에게 거마비 몇푼을 쥐여 줬다. 재미있는 경험 시켜줘 고맙다는 인사에 동생은 씩 웃어보였다. 그 웃음은 ‘짭퉁’이 아니라 ‘진퉁’이었다.

<천현우 용접노동자>

천현우의 쇳밥이웃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