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선거, 코로나가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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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에서 2022년은 ‘선거의 해’가 될 전망이다. 14개국 이상의 국가가 대선과 총선 등 굵직한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일정대로라면 한달에 한 번 지구촌 곳곳에서 변화의 소식이 들려올 수 있다. 각국에선 벌써부터 선거 승패를 좌우할 변수를 분석하고, 선거결과 벌어질 수 있는 정치적 변화를 예측하는 작업으로 분주하다.

2022년 프랑스 대통령선거에 도전하는 에리크 제무르 르콩케트 후보가 1월 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새해 비전 발표 모임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 EPA 연합뉴스

2022년 프랑스 대통령선거에 도전하는 에리크 제무르 르콩케트 후보가 1월 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새해 비전 발표 모임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 EPA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들 국가의 선거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3년차에 진행되는 만큼 대대적인 정권교체를 부를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팬데믹에 따른 민생 피해가 가중되며 중남미를 비롯한 다수 국가에서 기존 정권이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한때 방역 성공을 자축한 정부들도 오미크론 변이가 고개를 들며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코로나19는 선거 막판까지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며 정세 변화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코로나19가 만든 정치 지형

올해 선거를 맞는 대다수 국가는 팬데믹이 만든 정치 지형에서 선거전을 시작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 피해가 큰 중남미 국가들에선 기존의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려 정권교체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오는 2월 대선과 총선이 열리는 코스타리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관광업에 타격을 입었고, 카를로스 알바라도 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크게 흔들렸다. 이에 27명에 달하는 정당 후보들이 우후죽순 대선에 도전장을 냈다.

각각 5월과 10월 대선을 치르는 콜롬비아와 브라질도 상황은 비슷하다. 팬데믹에 따른 경제난으로 이반 두케 콜롬비아 대통령의 비호감도가 77%로 치솟았고,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한때 탄핵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우파가 장악해온 이들 국가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중남미의 온건 사회주의 물결 ‘핑크 타이드’가 한층 완연해질 전망이다. 일각에선 팬데믹이 복지 확대를 강조하는 온건 사회주의 세력의 부상을 이끈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반면 성공적인 코로나19 대응으로 ‘눈도장’을 제대로 찍은 정부들도 있다. 이탈리아의 마리오 드라기 총리는 팬데믹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유력 대권주자로 부상했다. 이달 열리는 대선을 앞두고 총리에 남을지 대통령에 오를지 고민하는 중이다. 드라기를 지지하는 이들은 그가 대통령이 되면 국제적 신뢰 확보나 정치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반면 대통령직이 상징직인 성격상 총리에 남는 것이 국가에 더 도움이 될 것이란 시각도 있다.

‘방역 성공’ 효과는 한때

최근 발생한 오미크론 변이는 방역 성공을 자신하던 정부들도 선거 승리를 자신할 수 없게 했다. 오는 4월 대선을 앞둔 프랑스에선 지난해 12월 29일부터 하루 확진자 수가 20만명을 넘어서면서 재선을 노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고민거리가 됐다.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지지한다는 국민이 지난해 8월 50%를 넘으며 정점을 찍었으나, 지난달부터는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마크롱의 경쟁자인 우파 후보들은 코로나19 재확산을 전후해 지지율을 다지고 있다. 특히 공화당(LR) 대선후보인 발레리 페크레스 일드프랑스 주지사의 상승세가 무섭다. 지난해 12월 7일 발표된 여론조사는 페크레스가 마크롱을 2차 투표에서 제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페크레스뿐만 아니라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후보와 에리크 제무르 르콩케트(Reconquete) 후보도 여론조사에서 마크롱을 바짝 뒤쫓고 있다.

경쟁자들의 추격이 심해진 만큼 방역 대응을 놓고 마크롱의 고심은 커졌다. 규제 수위를 지나치게 올리면 정치적 여파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오미크론 확산 속에도 특별한 폐쇄 조치 없이 신중한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현지매체 더로컬 프랑스는 “선거가 없었다면 마크롱이 과학적 조언을 받아들여 더 강한 규제를 했을 것”이라며 “이번 대응이 오판에 따른 것이라면 3월 중순쯤 프랑스 의료 체계에 위기가 닥쳐 오히려 선거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이탈리아 유권지들이 1월 4일(현지시간)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모습을 담은 포스터를 들고 그의 성추문을 비판하고 있다. / EPA 연합뉴스

이탈리아 유권지들이 1월 4일(현지시간)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모습을 담은 포스터를 들고 그의 성추문을 비판하고 있다. / EPA 연합뉴스

오는 5월 연방 총선을 앞둔 호주도 프랑스만큼이나 오미크론 여파를 주시하고 있다. 스콧 모리슨 총리는 지난해 중순 성공적인 팬데믹 대응으로 정부 지지율을 20%대에서 50%대까지 끌어올렸으나, 최근 오미크론 심화로 여론 악화에 직면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호주의 확진자 수는 지난 4일 기준으로 4만7000여명을 기록해 역대 최대 수준으로 치솟았다. 언론은 연일 “정부 방역의 신뢰가 추락하고 있다”며 비판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주목되는 미국 중간선거

11월로 예정된 미국 중간선거는 올해 선거의 하이라이트다. 민주당이 패할 경우, 조 바이든 행정부는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하며 조기 레임덕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미중관계에도 적잖은 여파를 미칠 전망이다. 현재까지는 코로나19 사태가 바이든 행정부의 발목을 붙잡는 모양새다. 미국은 최근 오미크론 확산으로 연일 확진자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방역 지침의 혼선 등 정부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여기에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까지 겹치며 민심 이반이 심화됐다. 취임 초인 지난해 1월 55%에 달했던 지지율은 10%포인트 이상 하락하며 40%대로 내려왔다.

다만 11월까지 남은 기간이 많고, 코로나19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점에서 섣부른 전망은 금물이란 지적도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전망대로 올해 안에 팬데믹이 진정되면 정부가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다음달 초가 되면 코로나19가 사실상 독감처럼 약해지는 상황이 올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미 중간선거까지 이어지는 올해의 선거 랠리가 끝나면 각국의 정책 방향은 물론, 국제정세도 큰 변화를 맞는다. 전문가들은 각국의 정권교체가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질서 개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중국은 중남미의 핑크타이드가 강화되면 자신들과의 우호관계가 확대될 것이라며 벌써부터 기대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과거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린 중남미에서 자국의 영향력이 한층 강해질 것이란 기대다. 지난해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호주의 선거결과도 관심 대상이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최근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호주는 다가오는 선거에서 어느 정당이 이기든 중국과의 관계를 보다 합리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용하 국제부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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