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탈축산 문 열릴까?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2006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온실가스 총배출량 중 축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8%에 달한다. 산업 분야보다 많고, 모든 차량과 선박, 비행기가 뿜어내는 양보다 많다. 2013년 FAO의 또 다른 보고서에 따르면 축산 분야 온실가스 배출의 41%는 소고기 업계, 20%는 유제품 업계가 차지한다. 돼지고기 업계는 9%, 닭고기와 달걀 업계는 약 8%로 조사됐다.

탄소흡수원으로 기능했던 아마존은 대규모 산림벌채로 탄소 배출원으로 바뀌고 있다. 아마존의 열대우림은 극우 성향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취임한 2019년 이후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다. / AFP연합뉴스

탄소흡수원으로 기능했던 아마존은 대규모 산림벌채로 탄소 배출원으로 바뀌고 있다. 아마존의 열대우림은 극우 성향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취임한 2019년 이후 훼손이 가속화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축산 온실가스의 상당량은 메탄이다. 소는 4개의 위를 거쳐 음식을 발효시키는 소화 과정에서 메탄을 만들어낸다. 옥스퍼드대학 식품기후연구 네트워크에 따르면 약 500㎏인 소 한마리가 매년 만드는 메탄의 양은 약 100㎏이다. 대기 중 메탄의 지구온난화 효과는 이산화탄소의 20배에 달한다. 승용차에서 휘발유 1ℓ를 연소할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약 2.1㎏이니, 소 한마리가 한해 휘발유 약 940ℓ를 태우는 것과 같은 온실효과를 발생시키는 셈이다. 자동차 평균 연비를 15㎞/ℓ로 치면 1만4100㎞를 달릴 때와 같다. 2018년 기준 지구상에 약 15억마리, 국내에 약 350만마리의 소가 있다.

공장식 축산은 ‘가성비’도 떨어진다. 450g의 고기를 생산하는 데 소의 경우 사료 2.7㎏이 들고, 돼지고기는 약 1.6㎏, 닭고기는 900g의 사료가 필요하다. 연간 곡물 생산량은 약 26억t에 이르는데 그중 상당량이 사료로 쓰인다. 가축 사료인 옥수수와 콩을 재배하기 위해, 가축을 키울 땅을 얻기 위해 아마존 등 열대우림이 불타고 있다. 2002년 이후 19년간 사라진 열대우림의 면적은 프랑스 국토보다 넓다. 그래서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가 고기 한점을 먹는 순간, 우리는 아마존에 불씨를 던지는 것과 같다.”(조길예 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대표) 2000억t의 탄소를 저장한 아마존은 이제 탄소를 흡수하는 대신 내뿜기 시작했다.

공공기관 채식 선택권 확대 등 공약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평균 육류 소비량은 2000년 31.9㎏에서 2019년 54.6㎏으로 증가했다. 1인당 쌀 소비량은 꾸준히 줄어 2019년 57.7㎏이다. 월평균 육류 소비 지출액을 따지면 가구주 연령이 30~50대인 가구의 경우 3만9054원에서 5만8830만원의 분포를 보인다. 반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020년 쌀을 포함한 곡류의 가구당 월평균 지출액은 2만2000원에 불과하다. 무게나 월평균 지출액을 따지면 고기가 주식이 된 시대라는 말도 나온다.

기후위기 시대,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축산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면 육류의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힘을 얻고 있다. 전통 축산업에 균열을 내려는 도전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식물 단백질을 이용한 ‘대체육’이 마트 판매대에 올라오고, 아직 우주에 간 인류의 숫자보다 적은 사람이 맛봤다는 ‘세포배양육’도 가격을 크게 낮춰 시장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기후변화와 함께 동물권 문제는 육식을 줄여야 한다는 강력한 근거가 되고 있다. 정치권에서의 논의도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기본소득당은 선거와 관련 없이 동물권위원회가 있고, 정의당도 동물복지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이번 대선 국면만 놓고 보면 더불어민주당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진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해 8월 경선 후보 시절 대선 유력 주자로서는 처음으로 비건 문화 확산과 채식 선택권을 공약했다. 대선후보로 선출된 후에는 직접 선대위 동물복지위원회의 이름을 동물권위원회로 바꾸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동물권은 모든 동물을 물건이나 상품, 재산으로 보기 전에 내재적인 가치를 지닌 생명으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선대위 동물권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은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지구 생태계 구성원인 동물을 인간을 위한 자원이나 대상물로만 여겼다. 동물권은 동물에게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자는 말이 아니라 생태계 내의 다양한 동물의 지위에 맞는 권리를 인정하고 그에 따른 복지와 지원을 제공하자는 개념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 아직 일반화되어 있지 않은 개념을 이 후보가 먼저 제안해 개인적으로 기쁘고, 향후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9일 서울 종로구 사회과학서점 풀무질에서 열린 ‘이재명과 함께하는 MZ세대 비건 간담회’에서는 선대위 관계자와 MZ세대 비건 청년이 만나 비건 음식을 시식하고, 비건 문화 확산을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국내 모든 공공기관 급식에 채식 선택권을 보장하자는 제안, 기업 구내식당의 채식 급식 확대, 비건 인증 시스템 마련, 비건 스타트업 육성 및 지원, ‘채식의 날’ 제정 등이 제안됐다.

간담회에 참석한 대학생 정이어린씨(중앙대 비건 동아리 준비기획단 대표)는 좀더 급진적인 주장을 폈다. 정씨는 “동물을 음식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비유가 아니라 정말 사회 전체가 하나의 무덤으로 보인다”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동물의 권리나 생명권은 다 무시해도 괜찮다는 축산업의 논리가 이런 사회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탈석탄 계획을 짜듯 탈축산업의 로드맵을 짜고 종사자의 업종 전환 등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올해 탈축산 문 열릴까?

기술적 감축에만 의지하는 정부

하지만 정씨의 바람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축산 분야의 대응책으로 축산분뇨의 퇴비화, 에너지 자원화나 저메탄 사료 보급, 가축당 사육면적 규제 등 기술적인 조치만 제시하고 있다. 가축 사육두수 감축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오히려 한육우나 육계는 사육두수가 증가하고 있다. 가축분뇨량은 2016년 4699만t에서 2019년 5184만t으로 늘었다. 거리 규제나 면적 규제로 축사를 짓기 어려워지자 일부 양돈 농가는 축사를 2~3층으로 올려 아파트 형태로 만들고 있다.

한국은 미국, 유럽연합(EU), 캐나다, 베트남, 아르헨티나 등 50여개 국가와 함께 지난해 11월 2일 공식출범한 국제메탄서약에 참여하고 있다. 국제메탄서약은 2030년까지 전 세계 메탄 배출량을 2018년 대비 최소 30% 감축하기 위한 국제연대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1일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발표하며 국내 메탄 배출량을 2018년 2800만t에서 2030년 1970만t으로 30%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농축산 업계에서만 250만t을 감축해야 한다. 국내 메탄 배출의 21.1%는 소 등 가축의 장내 발효와 축산분뇨에서 나온다. 지금처럼 사육두수 증가 추세가 계속되는 한 NDC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렵다.

박일진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 축산분과장은 정부가 기술적 감축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우농가를 경영하는 박일진 분과장은 사육두수를 줄이지 않고는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박 분과장은 “모든 주체가 기득권을 계속 누리려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면서 “2030년 감축 목표도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축산업을 확대하자는 주장에 어떤 국민, 세계인도 동의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 출범할 새 정부의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방향의 정립이다”면서 “규모를 계속 확대할지 아니면 규모 확대를 멈추고, 적정 규모로 사육두수를 관리할지 먼저 방향을 정한 후 그 방향에 기초해 축산농가 지원을 논의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감축을 전제로 축산분뇨의 경축순환 방식의 처리나 동물복지 지원책, 축사 시설 개선 지원책을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점을 기후위기 극복에 둬야지 산업 육성에 두면서 기후위기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논하는 건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축산 농가의 반발로 정부는 사육총량제라는 말 대신 적정사육두수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런 순화된 표현에도 축산 농가의 반감은 크다. 배양육이나 식물성 단백질을 이용한 대체육에 대한 반감도 여전하다. 채식 확대 등 육류 소비를 줄이는 식습관 변화를 통한 온실가스 감축 방안에도 부정적이다. 농특위는 사육두수 감축을 전제로 적정사육두수를 관리하고 농가 경영의 안정에 집중하자는 안을 냈다.

박일진 분과장은 “면적 제한으론 (해결이) 안 되니 사육총량제로 적정사육두수 관리제도를 도입하자는 게 농특위의 입장이다”면서 “적정사육두수의 적정 기준을 두고도 육류 소비량이냐, 자급량이냐 혹은 농경지에 들어갈 분뇨량을 기준으로 하냐는 말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농경지 대비 축분 발생량이 많으니 농경지 규모 정도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육두수 감축으로 사회적 합의 나서야

농특위 분과위원으로 참여하는 최동근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 사무총장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사육두수 감축이라는 근본 방법을 제외하고 축산분뇨 자원화 정도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설득의 과정을 강조했다. 최 사무총장은 “정부가 탄소중립이나 식생활과 영양소의 관점에서 축산업이 담당할 역할을 정확히 정한 후 농민을 설득해야 한다”면서 “일부의 의견만 받아 정책을 만들 게 아니라 탄소중립의 의미를 농민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이 후원을 받아 인천의 한 목장에서 구조한 홀스타인 소 6마리가 축산동물의 피난처(생추어리)가 마련되기 전 거주할 임시막사에 머물고 있다. / 동물해방물결 홈페이지

지난해 8월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이 후원을 받아 인천의 한 목장에서 구조한 홀스타인 소 6마리가 축산동물의 피난처(생추어리)가 마련되기 전 거주할 임시막사에 머물고 있다. / 동물해방물결 홈페이지

최 사무총장은 온실가스 배출이 많을 수밖에 없는 수입 사료 곡물의 의존도를 줄이고 밀집사육 대신 동물복지 사육을 택하고, 분뇨를 지역자원으로 순환하는 경축순환에 나서는 농가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내년 예산은 17조원에 가까운데 친환경 축산에 쓰이는 예산은 미미하다. 분뇨를 비료화해 살포하는 데 드는 예산이 92억원, 가축분뇨를 이용한 자연순환농업 활성화 예산이 146억원, 산지 생태축산 농장 조성에 43억원, 친환경 축산 직불제에 16억원 정도의 수준이다. 최 사무총장은 “유기축산에 나서도록 정부가 인센티브를 제공해줘야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하다”면서 “산지를 활용해 3ha 이상의 초지를 조성해 방목 사육할 경우 토지 조성비를 지원해주는데 이것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FAO의 자료에 따르면, 축산 분야 탄소 배출량은 전체의 18%에 달하지만, 국내 조사에선 1.3%에 불과한 것으로 나온다. 국내의 경우 사료를 90% 넘게 수입하고, 육류 수입량은 전체의 34% 수준이다. 한마디로 탄소 배출을 ‘외주화’하면서 수치가 낮아진 것이다. 우희종 교수는 “국내 현실에서 축산 관리 통제로 얻을 수 있는 탄소 배출 감소가 산업적 측면에서 어느 정도 효과적일지 명확히 하는 상황 파악이 먼저 필요해보인다”고 말했다. 이견을 보이는 축산 분야 탄소 배출 실태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합의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축종별로 의견이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한우농가의 경우 축사 규모를 줄이는 대신 소득을 보전하는 방안을 제시할 경우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도 있지만 돼지나 닭을 키우는 쪽에선 규모 축소 자체에 부정적이다. 농가 중심인 한우와 달리 닭은 90% 이상, 돼지도 50% 이상 기업에 넘어가 사료 생산과 고기의 생산·가공·유통까지 일원화됐기 때문이다. 박 분과장은 “농가 입장에선 (가격 폭락의 위험성 때문에) 사육두수가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반면 기업은 사료 회사도 갖고 있고, 가공·유통회사도 계열화해서 생산에서 손해를 봐도 가공과 유통에서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분과장은 한우 중심으로 먼저 탄소중립 실현에 나서자고 제안했다. 박 분과장은 “농특위의 제안에 호응해 이재명 캠프에서 지속가능한 한우전환법을 중심으로 축산 분야의 탄소중립 실현에 나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있지만 아직 공개적으로 말을 못 하는 상황이다”면서 “이해관계와 지배구조가 다른데 한 번에 합의하자는 건 하지 말자는 것과 같다. 전체 축산업을 동시에 이 방향으로 끌고 가긴 어렵기 때문에 우선 동의한 한우 쪽에서 시범적으로 해보고 이후 방향이 맞다면 다른 축종도 그때 함께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간 탄소 감축이나 동물복지와 관련해 축산업의 생산 부문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소비 측면의 접근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동물복지로 생산한 육류와 달걀의 가격 부담을 낮춰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일진 분과장은 “10년 넘게 동물복지를 말했지만 현장에서 일반화되지 않은 건 소비단계의 문제를 풀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유럽과 미국의 경우 케이지에서 사육한 생산물을 공급받지 않는다는 법규를 제정하는 등 소비단계에서 강제방안을 도입해 효과를 봤는데 우리도 이런 쪽에서 접근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비건 진영은 기후재앙을 막으려면 육류 소비를 줄이는 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소농이나 가족농이 생산해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속가능한 먹거리 조달도 강조한다. 조길예 기후행동비건네트워크 대표는 “(사료와 육류 수입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외주화하는 대표적인 영역이 축산업이다”면서 “영국은 2025년까지 산림을 개간해 생산한 사료의 수입을 금지하는 정책을 추진하는데 우리도 이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채식 위주 식생활로 쉽고 편하게 전환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조성하는 데도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면서 “정부의 예산이 들어가는 학교와 교도소, 양로원 등의 공공시설부터 채식 급식 확대 등의 변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