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서 재래닭 키우고 ‘월 300’ 소득 실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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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란율 떨어지지만 품질로 커버… 생균제 사용해 ‘닭똥’ 냄새도 줄여

계사를 헤집고 다니던 재래닭이 움직임을 멈췄다. 건너편 산등성이로 해가 저문 오후 5시 50분. 재래닭이 하나둘 횃대로 올라갔다. 횃대는 새나 닭이 올라앉게 가로질러 놓은 긴 막대다. 순식간에 계사 한가운데에 설치된 횃대가 재래닭으로 꽉 들어찼다. 닭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계사가 고요해졌다.

경북 영양의 농가에서 재래닭이 계사 밖으로 나와 움직이고 있다. / 이몽희 대표 제공.

경북 영양의 농가에서 재래닭이 계사 밖으로 나와 움직이고 있다. / 이몽희 대표 제공.

“보초 서는 닭들 보이죠? 저기 눈 반짝이는 닭. 독수리라도 날아가면 자기들끼리 신호를 줘요.” 이몽희 닭실재래닭연구소 대표(59)가 폐쇄회로(CC)TV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부터 자면 해 뜰 때까지 자는 거죠. 겨울철에는 13시간 정도 자려나요?” 동물복지농장은 규정상 닭이 6시간 이상 잠을 자야 한다. 이곳의 재래닭은 규정보다 5시간 더 자는 셈이다.

전국의 산란계는 2021년 3분기 기준으로 7072만2059마리. 모든 닭이 13시간씩 숙면을 취하는 건 아니다. 닭이 알을 더 많이 낳게 하려면 잠을 덜 재워야 한다. 밤에도 계사에 불을 켜놓으면 산란율은 올라간다. 알을 낳는 닭의 산란율은 보통 90% 수준이다. 이곳의 연평균 산란율은 35%에 그친다. 하루에 다른 농장에서 닭 10마리가 9개의 알을 낳을 때, 3.5개의 알만 낳는다는 의미다. 겨울에는 산란율이 13%까지 떨어진다. “지금까지는 본래 닭의 능력에서 벗어나 과다하게 낳아왔던 거죠. 특히 재래닭은 원래 알을 많이 낳지 않아요.” 이몽희 대표가 말했다.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닭실재래닭연구소가 있는 경북 영양의 한 재래닭 농장을 찾았다. 경북 안동역에서 내려 차로 1시간 30분을 더 가야 했다. 이몽희 대표가 “다 왔네요”라고 했지만 닭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위로 뻗어서 아랫마을에는 전혀 안 들려요.” 흔히 축산 농가 인근에서 나는 ‘닭똥’ 냄새도 풍기지 않았다. 측백나무로 둘러싸인 언덕길을 지나서야 계사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닭의 본능에 최적화

계사는 시내와 10㎞ 넘게 떨어진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계사 주변에 다가갔는데도 여전히 냄새는 없었다. 1동부터 차례로 계사의 문을 열고 들어가고 나서야 ‘닭똥’ 냄새가 살짝 풍겼다. 방향제를 뿌리는 건 아니다. “계사 바닥에 생균제를 첨가해요. 재래닭이 먹는 물에도 생균제를 넣고요.” 이몽희 대표가 말했다. 생균제는 가축의 장내에 유용한 균으로 유산균, 고초균 등을 이용한다. 생균제는 가축의 장내 소화를 증대시키고 분뇨의 분해를 돕는다. “생균제가 가축의 장에서도 유기물을 빨리 분해하니 자연스럽게 냄새도 잡히죠.”

산 중턱을 개간해놓고 쓰이지 않던 공간에 재래닭 계사를 들였다. 현재 사육 규모는 8000마리다. 재래닭과 토종닭을 함께 키운다. 재래닭은 근대 이전부터 키우던 닭이다. 영남대와 경북축산기술연구소는 1990년대 초반 재래종 닭 복원에 성공했다. 아직까지 재래닭은 희귀하다. 재래닭을 키우는 농가는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다. 축산 전문가들 사이 “재래닭은 국내 닭 중 0.1% 미만으로 추정한다”(백승봉 청송영양축산농협 전무). 이몽희 대표는 “지금 당장은 경제적 가치가 없더라도 재래닭 종을 보존해 후세에도 전달해야 해요. 미래에는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될지 알 수 없거든요”라고 말했다.

경북 영양에서 재래닭 농가를 운영하는 이몽희 닭실재래닭연구소 대표가 농장 도면을 들고 사업 모델을 설명하고 있다. / 김원진 기자

경북 영양에서 재래닭 농가를 운영하는 이몽희 닭실재래닭연구소 대표가 농장 도면을 들고 사업 모델을 설명하고 있다. / 김원진 기자

조류인 재래닭의 특성을 생각해 공간을 넓게 확보했다. 계사와 그 주변은 재래닭이 날아다닐 수 있을 만큼 넓다. 27만1074㎡(약 8만2000평) 땅에 설치된 계사는 8개. “일반 산란계라면 60만마리까지 키울 수 있는 공간이에요.” 이몽희 대표가 말했다. 계사 옆에 재래닭이 거닐 수 있는 공간을 계사와 똑같은 크기(238㎡·72평)로 만들었다. 날이 풀리면 재래닭이 햇빛 아래서 뛰노는 곳이다. 바닥도 자연에 가깝게 만들었다. 바닥에 까는 톱밥과 호밀 깔짚은 무농약, 무항생제, 무중금속 검사를 통과한 제품으로만 쓴다.

“동물복지농장인데 그 이상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해요.” 이몽희 대표가 말했다. “동물이 행복하려면 종의 원래 습성에 맞게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동물복지’ 하면 떠올리는 통념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겨울이라고 인위적으로 계사 온도를 높이지 않는다. ‘무개방형’ 계사인데 추위에 폐사하는 재래닭은 드물다. 면역이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리에서 도태된 재래닭은 따로 보살피지 않는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강제 환우(털갈이)’도 하지 않는다. “동물 세계의 섭리를 최대한 존중하려고 해요. 닭의 본성을 지켜주는 게 저는 동물복지라고 봐요.”

깐깐하게 관리한 만큼 각종 인증을 받았다. 수상경력도 쌓았다. 동물복지농장 인증과 해썹(HACCP) 인증을 받았고, 지난 2년간 여러 상을 받았다. 농림축산식품부, 농협중앙회, 환경부가 주관한 대회에서 청정축산 환경대상 우수상 등을 받았다. 농식품부가 발간한 <2020 축산환경개선 우수농장 사례집>에도 실렸다.

경북 영양 재래닭 농가의 계사 안. 닭이 널찍한 공간에서 지내고 있다.

경북 영양 재래닭 농가의 계사 안. 닭이 널찍한 공간에서 지내고 있다.

“미래 농가의 수익모델”

작업실에서는 포장으로 분주했다. 계란은 10개들이로 판다. 일반 산란계 계란보다 색이 엷었는데 연분홍빛이 돌았다. 눈대중으로 봐도 시중 계란보다 크기가 작아보였다. 그만큼 무게도 덜 나간다. 평균 체중은 1.41㎏. 적은 체중만큼 탄소 배출량도 적다. 이몽희 대표는 “재래닭이 낳은 계란의 맛이 더 뛰어나다는 건 입증이 안 되지만, 상대적으로 수분이 적어 농도가 짙어요”라고 말했다. 재래닭이 낳은 알은 전량 비영리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에 납품한다. 10개씩 포장돼 일주일에 두 번 출하한다. 한살림에서는 더 많은 물량을 요구하지만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일반 산란계의 계란 하나는 평균 마진이 10원 정도다. 최근에는 수급 불안으로 계란 1개당 마진이 100원 수준으로 치솟았다. “지금은 특수한 경우죠. 보통 농가에서는 출하할 때 110~120원 정도로 가격을 책정하고, 10원 정도를 남겨요.” 이몽희 대표가 말했다. 마진은 200원이다. 낮은 생산성을 고품질로 커버하는 셈이다. 마진은 수급과 관계없이 일정하다. “동물복지형 계란을 찾는 소비자 수요가 점점 늘고 있거든요.”

이몽희 대표는 자연에서 키운 재래닭을 ‘차세대 농가수입원’으로 본다. 현재 대형 농가 위주로 농업이 재편성되면서 진입장벽이 높아진 상태다. 시장 다양성 차원에서 소규모 틈새시장을 개척해 안정적인 농가 소득원을 확보하자는 기획이다. 특화된 축산 수익모델로 지자체의 경제 자립도를 키우려는 생각도 깔려 있다.

셈법은 복잡하지 않다. 계사 하나에 연 매출을 최소 7000만원으로 잡았을 때, 이중 노동 소득을 50%로 계산한다. 연 3500만원이면 월 소득은 300만원이다. 이른바 ‘월 300’ 모델이다. 하루 5~6시간 노동으로 60세 이후에도 농민 한명의 월 소득 300만원을 보장하겠다는 의미다. 농업의 대형화가 주류인 시대지만, 자본이 적게 들어간 적은 농지에서 저강도 노동력으로도 “경쟁력 있는 재래닭 사업 모델은 가능하다”고 이몽희 대표는 주장한다. “현재 농업은 수십억원은 들여야 출발이 가능할 만큼 장벽이 높아졌어요. 이 안에서 또 다른 작은 시장도 필요하죠.”

그렇다고 ‘월 300’ 모델이 주류가 될 순 없다고 생각한다. 좁은 국토 상황에서 고가의 계란만 생산되는 현실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취지다. “예전에 언젠가 농식품부에서 동물복지농장을 전체의 30%로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그게 가능한 이야기인가요?” 이몽희 대표가 말했다. “저희가 제시하는 건 하나의 모델일 뿐이에요. 현재 축산업을 뒤엎겠다는 발상은 아니고요. 단백질 섭취가 중요한 시대에서 이제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시대잖아요. 그 시대에 맞는 사업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겁니다.”

경북 영양 재래닭 농가의 재래닭이 낳은 알 / 김원진 기자

경북 영양 재래닭 농가의 재래닭이 낳은 알 / 김원진 기자

남아 있는 난관
겉으론 번듯해 보이지만 재래닭 농가에 우여곡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몽희 대표는 2017년 8월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원래 재래닭 농장 터를 잡았던 곳은 경북 영천이었다. 그곳에서도 재래닭 8000마리를 키웠다. 사업이 안정을 찾아가던 때였다. 닭과 계란에서 맹독성 농약 성분인 DDT(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가 검출됐다. 이몽희 대표는 “단 한 번도 살충제와 농약을 쓰지 않았죠”라고 했다. 원래 과수원 부지였는데, 당시 사용했던 DDT가 남아 재래닭에게 흡수된 것으로 추정했다. 재래닭 8000마리가 살처분됐다. “깨끗하게 승복하고 책임지고 나왔습니다. 폐기물 처리까지 수천만원 들여 정리했어요.”

새로 터 잡을 곳을 알아보다 눈에 띈 게 영양이었다. ‘월 300’ 모델을 영양군에 들고 갔더니 군에서도 반겼다. 함께 헬기를 타고 부지를 알아볼 정도였다. 신규 축사가 들어설 때 가장 큰 이슈는 환경오염이다. 영양의 ‘가축사육 제한에 관한 조례’ 기준을 모두 충족했지만, 일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우여곡절 끝에 계사가 들어선 뒤에도 검증은 이어졌다. 계사 주변 4곳에서 수질검사를 했는데 물은 오염되지 않았다. “환경오염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건 분뇨인데, 저희는 퇴비로 쓰려고 다 모아둡니다. 동물복지라는 게 궁극적으로는 인간한테도 득이 돼야 하거든요.” 이몽희 대표가 말했다.

여전히 주민들의 불신은 남아 있다. 소규모 환경영향평가 또한 2년 가까이 진행이 더딘 상황이다. 부지는 확보했지만 재래닭 연구시설 건립이 늦어지고 있는 이유다. 이몽희 대표는 “조금 답답하지만 그래도 계속 가보려 합니다. 인간과 자연 그리고 가축이 함께 상생하는 축산환경을 추구해야죠. 앞으로는 주변을 공원화하고 걷는 길을 만들어 자연을 시민에게 돌려드릴 겁니다”라고 말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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