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법조인과 정치인은 상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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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법치주의는 근대 민주주의 국가 원칙 중 하나이고, 정책은 입법을 통해 구현된다. 법을 다루는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 많은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근대 민주주의의 기초가 된 사건으로 평가되는 프랑스 혁명을 이끈 로베스 피에르도 변호사 출신이었고, 미국 역대 대통령 45명 중에는 링컨부터 바이든까지 무려 26명이 법조인 출신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무현·문재인 두 대통령이 법조인 출신으로 대통령은 많이 배출하지 않았지만, 국회의원 중 상당수가 법조인 출신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법을 다루는 법조인이 법을 다루는 국회의원을 잘할 것 같지만, 한편으로 법조인과 정치인은 상극이기도 하다. 재판은 과거의 일을 다루고 정치는 미래의 일을 다룬다. 재판은 승소냐 패소냐가 명확히 갈리는 일이지만 정치는 타협을 근간으로 한다. 법은 명확성의 원칙을 따라야 하지만, 정치는 회색지대의 일을 다룬다.

‘정치의 사법화’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정치의 영역에서 경쟁과 타협, 여론의 심판에 따라야 할 일을 법정으로 가져가 결정하는 일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 ‘불법은 아니다’라는 말이다. 정치인은 때로 자신의 권한 밖의 일이나 도덕성의 문제, 기존 법 테두리 안에서의 편법과 특권에 대해서도 여론의 눈치를 보고 사과하지만, 법조인은 불법인지 아닌지를 따진다.

시사프로그램은 정치인이 되고 싶은 법조인들과 법조인이었던 정치인들이 넘쳐난다. 조국 사태 이후 정치평론은 형사법 절차에 대한 논쟁과 재판 평석이 됐고, 그후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 대장동 사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누가 유죄인가’를 가리는 싸움이 돼버렸다. 최근에는 이재명 후보의 아들과 윤석열 후보의 부인이 불법행위를 저지른 혐의가 대선판의 주요 이슈다.

역대 대선에서도 후보의 도덕성 문제가 이슈가 됐고, 상호 간 고소고발도 있었지만, 이렇게 모든 이슈가 법적 문제로 귀결되는 대선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대선 전에 재판을 통해 결론이 날 수 있는 문제는 하나도 없겠지만, 국민은 아마 대선 내내 상대를 수사하고 내 편을 변호하는 법조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선에서 진 쪽은 철저하게 수사받고, 이긴 쪽은 적어도 임기 중에는 의혹을 묻을 수 있을 것이다.

양 후보의 도덕성 문제는 사실 당내 경선 당시부터 제기됐다. 도덕성에 의심을 받는 후보들이 그럼에도 선출된 이유는 상대방을 가장 잘 공격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윤석열 후보는 말할 것도 없고, 이재명 후보도 적폐청산에 가장 큰 목소리를 낸 것으로 명성을 쌓았다. 결국 증오와 복수의 정치가 낳은 것이 지금 양당의 후보들이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이익을 최선으로 해야 한다. 때로는 말이 안 되는 소리도 하고, 거짓말까지는 아니더라도 불리한 진실에 대해선 침묵하며,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불법은 아니라는 자세로 임해 재판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정치인도 그래야 할까. 불법 여부를 따지기 전에 깔끔하게 사과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날마다 방송패널로 나와 자기 후보의 변호사 역할에 매진하는 정치인들을 보고 있기 괴롭다.

<이기중 서울 관악구 정의당 구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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