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균형과 다양성 확보는 정치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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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기후위기 문제 논할 때 젠더 관점 포함돼야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간 지 2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동안 코로나19 이전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노력이 다방면으로 시도됐지만, 델타와 오미크론이라는 기존보다 더 빠른 전파력과 더 높은 위험성을 가진 새로운 변이가 계속 등장하면서 일상회복 또한 연기되고 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코로나19는 언젠가 종식되겠지만 문제는 이와 유사한 상황이 다시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메르스(2012·2015·2018), 신종인플루엔자(2009~2010), 사스(2012) 등과 같은 감염병 대유행을 겪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코로나19 종식도 중요하지만 이를 야기한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는 것까지 고려해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된 원인은 여러가지일 수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 생태계 파괴라고 할 수 있다. 즉 지구 온도의 상승과 이로 인한 생물 다양성의 감소가 인간과 비인간 모두를 바이러스에 취약한 상태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코로나19는 기후위기 문제이며, 기후정의 실현 차원에서 대안이 마련되고 실천돼야 한다.

위기의 성별화된 피해들

코로나19와 기후위기를 함께 논의해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두가지 위기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부정의(injustice)하기 때문이다. 특히 성별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코로나19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가 누리던 일상, 특히 돌봄이 당연한 것도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드러냈다. 아동뿐만 아니라 노부모, 장애인, 환자 등 수많은 돌봄이 여성들의 노동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으며, 국가가 돌봄을 포기하게 될 때 여성들이 더 많은 돌봄의 부담을 짊어지게 된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여성 노동자 3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56.2%가 돌봄의 증가를 경험했고, 35.6%가 독박돌봄을 한다고 답했다. 또한 응답 여성 10명 중 1명이 코로나19로 실직을 당했고, 절반 이상이 직장에서 불이익을 경험했으며, 36.5%가 소득의 감소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조사에 따르면, 2020년 여성 취업자 수는 13만7000명 감소해 남성 8만2000명보다 1.7배 더 많았으며, 여성 고용률은 2009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 남성 취업자 수는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2.4% 감소했다면, 여성은 남성의 두 배 이상인 5.4% 감소했다. 또한 코로나19로 가족 구성원이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증가하면서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등과 같은 폭력 또한 증가했다.

많은 기후학자가 기후위기의 피해가 차별적이며 불평등하게 나타난다고 강조한다. 북반구보다는 남반구 국가들이, 부국보다는 빈국들이, 부자보다는 빈자들이 기후위기의 피해를 더 많이 겪고 있으며 기후위기에 대응할 자원의 취약성으로 인해 피해가 더 커지는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악순환은 성차별과 성불평등을 심화시킨다며 기후위기 문제를 논할 때 젠더 관점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런던정경대가 2006년에 실시한 연구를 보면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경제·사회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면 재난상황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이 죽는다. 그리고 유엔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기후재난으로 인한 여성 사망률이 남성보다 14배 높으며, 기후난민의 80%가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여성의 의사결정 참여로 위기 극복

코로나19와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가 정치·경제·사회적 권력과 자원이 없는 집단에 집중되고 있다. 이로 인해 성차별과 성불평등 또한 심각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논의하는 테이블에 여성뿐만 아니라 기후위기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집단은 거의 보이지 않으며, 젠더 관점은 삭제돼 있다.

코로나19 대응을 총괄하고 있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매일 발생현황(사망·재원 위중증·신규 입원·확진)과 예방접종 현황을 발표하고 있는데 이 통계에는 성별통계가 없다. 성별에 따라 현상이나 증상에 차이가 나타날 수 있고, 따라서 성별통계가 기본적으로 마련되고 제공돼야 하지만 찾아볼 수 없다. 또한 환자 치료를 담당하는 대다수 인력이 여성 간호사이며, 이들이 현장에서 겪는 문제들(전문의료인력으로 평가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폭언과 성폭력과 같은 폭력에 노출되고 있고, 과도한 업무로 번아웃 상태에 빠져 있음)에 대해 정부 차원의 대책이 여전히 마련되지 않고 있다. 기후위기 대책을 마련하는 테이블인 2050 탄소중립위원회 또한 다르지 않다. 탄소중립위원회 위원회가 2021년 8월에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에는 성별에 대한 고려도 내용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유엔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중 하나가 성평등(gender equality)이고, 성평등의 하위 목표 중 하나가 의사결정에 있어 여성의 참여다. 성별균형(gender balance)과 다양성(diversity)이 보장되지 않는 의사결정조직의 인적 구성은 그 자체로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부정의한 결과를 산출한다. 내년 상반기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수장 그리고 지방의회의 구성원들이 바뀌게 된다. 새로 선출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수장들이 성별균형과 다양성을 고려해 모든 의사결정 테이블을 구성하고, 지방의회 또한 성별균형과 다양성에 기초해 구성된다면, 더 정의로운 위기 극복의 방안이 마련될 것이며, 한국 민주주의는 또 한걸음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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