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방식 아닌 ‘새 문화정책’으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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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변화에 맞춰 문화정책에도 혁신 필요

20대 대선이 어느새 두달 남짓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대선후보들은 분야별 주요 공약 발표를 통해 향후 5년을 이끌 국가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지만, 유독 문화 분야에 대한 정책 방향이나 공약은 현재까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전의 대선을 돌이켜 보더라도 문화정책은 항상 부차적인 과제나 문화예술 분야에 한정되는 영역으로 다뤄졌고, 대중의 관심 또한 크게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번 선거도 이런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기후·동물문제에 예술적 차원으로 접근하는 창작집단 ‘이야기와 동물과 시’ 활동가들이 2020년 8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기후·동물문제에 예술적 차원으로 접근하는 창작집단 ‘이야기와 동물과 시’ 활동가들이 2020년 8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보면 문화정책의 변화와 혁신의 필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불안사회의 대두, 전 지구적 당면 과제인 기후위기 문제, 문화적 삶에 대한 욕구 증대와 전환적 삶에 대한 사회적 요구 등은 문화정책이 더 이상 이전 방식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사회변화의 흐름과 함께 진화해가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문화정책이 문화예술 분야의 정책이 아닌 삶의 원리이자 운영방식으로서 확대되고 재편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전환적 사고와 정책적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대해 차기 정부가 이러한 사회변화에 걸맞은 전환적 문화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몇가지 지점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일상 변화시킬 문화정책 활성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디지털, 비대면 시대가 앞당겨지면서 사람들의 대면 활동이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으로 전환되는 사례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온라인을 통한 유통 및 소비가 활발해지면서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유튜브로 대표되는 영상 플랫폼 등이 기존의 영화, 방송, 문화행사, 공연, 전시, 문화교육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한 메타버스, AR·VR, NFT와 같은 새로운 기술을 문화예술에 접목하려는 시도 또한 활발히 진행되며 이러한 변화의 속도는 좀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디지털·온라인 문화예술 분야의 성장은 향후 변화할 우리 사회의 중요한 키워드가 되겠지만, 이것이 전통적 오프라인 문화예술 영역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방식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대면이 가지는 한계들, 예를 들면 문화예술 활동의 현장성이 가지는 감각과 질감, 사람들의 만남을 통해 만들어지는 관계성이 가지는 효과는 오프라인 예술활동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오프라인 예술활동은 지역과 마을 단위를 기반으로 한 생활문화와 일상문화의 영역에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국민의 여가생활에 대한 관심 증가, 단순 향유를 넘어 스스로 기획하고 창작하는 문화예술 활동으로의 전환, 지역의 생활문화 네트워크와 문화시민 주체의 성장으로 생활문화와 일상문화는 향후 문화정책의 핵심이 될 것이다.

지역 특수성에 맞게 정책방향 설계 국민의 다양한 문화적 삶과 지역문화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지역문화의 중요성은 이미 이전 정부에서도 여러 차례 강조된 바 있다. 지역의 문화적 환경이나 조건의 차이는 더 이상 중앙정부가 관리·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도 과거의 경험을 통해 드러난 사실이다. 결국 지역의 특수성과 실정에 맞게 지역 행정과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분석하고 정책방향을 설계해 나가는 방식은 지방정부의 자주성과 독자성을 향상하고 정책적 창의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큰 효과를 보여줄 것이다.

지역의 현장에서는 지역주민을 포함한 예술가, 기획자, 지역활동가들이 문화협치의 과정을 통해 지역문화의 중요한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또한 문화도시 사업의 확대를 통해 다양한 지역에서는 이러한 협치에 기반을 둔 문화적 실험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중앙정부 중심의 하향식 지원정책을 극복하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서울의 25개 자치구에서 각각 지역 고유의 동네문화를 발굴하고, 지역 내 문화자원을 발견하고 연결하는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인 ‘N개의 서울’ 프로젝트는 이러한 실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변화하는 정책 제시 2017 세계도시문화포럼에서 문화기획자 루시 라담은 “기후변화는 인류의 필요에 의해 야기된 결과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문화적 변화가 필요하다”며 기후위기 시대에 문화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경제나 산업 영역에 비해 즉각적이지 않기 때문에 기후위기와 문화정책의 연관성은 그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문화적인 삶의 전환과 일상의 실천에 대한 고민은 이제는 피해갈 수 없는 과제가 됐다. 환경을 주제로 다루는 예술활동의 활성화와 친환경적인 문화예술 제작·유통 과정으로 전환, 환경적 관점에서의 문화정책 방향 설정 등을 통한 기후위기 시대에 맞춰가는 정책적 프레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예술인 사회안전망의 필요성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는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많은 문화예술 행사가 취소되고 문화시설이 폐쇄되는 과정을 통해 예술인들은 최소한의 활동 기반마저 잃어버렸다. 이러한 문화예술인의 위기는 코로나19로 인해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뿐 예술계의 고질적 병폐와 문화예술인 정책의 부재로 인한 결과로 보는 것이 옳다. 결국 코로나19 위기상황이라는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정책과 관성화된 문화행정이 이 문제의 핵심이며, 이를 위해 사실상 부재해왔던 문화예술인 정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예술 위기관리시스템의 구축과 대응매뉴얼, 가이드라인 제시를 통한 문화정책의 변화는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예술인과 문화예술계를 위해 반드시 우선돼야 한다. 또한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과 예술인고용보험 제도 도입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는 예술인 안전망 정책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전환적 문화정책의 수립을 위해 코로나19와 기후위기로 인해 우리는 과거와 같은 방식이 아닌 새로운 문화적 삶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혐오문화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 젠더 갈등과 세대 갈등으로 인해 사회적 위기와 갈등은 그 끝을 모르고 달려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화정책은 문화적 삶과 문화적 가치를 일상에 담아내는 역할로서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차기 정부의 문화정책은 분야로서의 문화가 아닌 국가의 운영철학으로써 접근이 필요하며, 이는 변화하는 사회에 대응하고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기 위한 과정이 될 것이다.

<박선영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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