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본동-방값 싸고 먹거리·즐길거리 가득한 ‘청춘들의 명당’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서울 잠실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신천이다. 지금은 잠실새내역으로 이름이 바뀐 지하철 2호선 신천역을 중심으로 먹고 마시고 즐길거리가 있는 골목이 신천 일대에 있다. 신천이란 이름엔 곡절이 있다. 잠실이 섬이던 시절 잠실 위쪽 한강의 이름이 신천이었다. 뽕밭에 누에 키우는 일이 주업이었다는 잠실이 육지로 변할 때 섬의 북쪽 마을이던 신천부락이 사라지면서 그곳 마을 사람들이 이주해온 지역이 지금의 신천 일대라고 한다. 예전 잠실 대부분이 모래밭이라던가 한뼘 농사짓던 토지였던 시절의 일이다. 여름철 한강이 종종 범람할 때가 되면 농토와 주택까지 물에 잠겨 간혹 헬기로 구조되는 장면도 가끔 뉴스로 볼 수 있었다. 신천은 땅이름이 사람을 따라 옮아온 예인데, 지금 옛 시절의 신천 사람 중 남은 이는 몇 되지 않는다고 한다.

잠실 신천 일대는 중산층과 서민들이 살기에 편한 곳이다.

잠실 신천 일대는 중산층과 서민들이 살기에 편한 곳이다.

서민의 백화점 ‘새마을시장’

잠실새내역, 옛 신천역이 있는 곳은 법정동명으로 잠실본동이고 정작 신천동은 송파대로를 건너 잠실6동과 4동의 법정명이다. 우리는 강이 사라지고 이름이 혼재된 시대를 살고 있다. 고층 아파트 일색인 잠실 일대에서 신천 쪽 골목은 빌라들이 굳건히 영토를 지키고 있다. 당분간은 이 지역 일대가 아파트촌으로 바뀔 일은 없다고 한다. 신천 쪽 빌라촌은 대부분 건축 연한이 오래되지 않아 깨끗하고 편리해보인다. 골목도 잘 정비가 돼 깔끔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신천 쪽 분위기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곳은 전통시장인 새마을시장이다. 이 새마을시장이란 이름 또한 신천 사람들이 이주해올 때 생긴 시장의 이름이라고 한다. 아마도 잠실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는 곳일 것이다. 오래된 이력대로 시장에선 없는 것 없이 판다. 반찬거리부터 군것질거리와 옷까지 서민의 백화점이랄 만큼 다양하게 상품을 갖추고 있다. 시장에서도 가장 많은 이들이 붐비는 곳은 어물전이다. 간고등어부터 가리비에 남해에서 올라온 생굴과 석화, 수족관에는 살이 통통한 방어도 살아 헤엄치고 있다. 어물전 주인에게 뭐가 인기가 있냐고 묻자 “요즘이 굴이 싱싱한 철이라 굴을 많이 찾는다. 김장에도 넣고 굴젓도 담고 생으로 먹느라고 많이 나간다”고 한다.

골목 건너편으로 고층 아파트단지와 거대한 롯데타워가 보인다.

골목 건너편으로 고층 아파트단지와 거대한 롯데타워가 보인다.

바로 옆 채소가게에선 무를 고르던 손님과 주인이 오래 아는 사이인 듯 일상의 대화를 한다. “요즘은 반찬은 뭘 해먹고 살아”, “국거리가 마땅찮아 동치미하고 생선이나 굽고, 김을 많이 먹는다”, “김값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 대화는 정겨웠으나 뭇값을 두고 벌이는 신경전엔 팽팽한 긴장이 돈다. 시장 안 간간이 보이는 옷가게들도 사람이 붐빈다. 주인 말로는 김장철이라 겉에 걸쳐 입는 조끼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알록달록한 몸뻬바지와 내복도 잘 나간다고. 반찬가게 주인은 코로나19 사태로 찾아오는 손님은 줄고 대신 배달이 많아졌다고 한다. 시장을 찾는 이들이 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다는데, 그래도 하나가 줄면 하나가 늘어서 그런대로 평균은 채워지니 다행이라는 이야기다.

시장 안에는 소문난 가게도 여럿 있다. 예전 방식의 통닭을 파는 가게에는 집으로 가져갈 통닭을 기다리는 손님들로 붐빈다. 살짝 과장을 보태 중국까지 소문났다는 만둣가게에서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던 이는 이 집 ‘새우만두’가 일품이라고 귀띔한다. 전집에서 무게를 달아 전을 사가는 이들도 있고, 귤 한봉지를 사가는 젊은이도 볼 수 있다. 부자가 시장을 구경하던 중 아들이 “회가 먹고 싶다”고 하자 냉큼 횟집으로 이끄는 아버지도 있다. 전통시장이 갖는 여유 있고 풍요로운 모습이다.

학교와 편의시설이 좋아 아이들과 가족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학교와 편의시설이 좋아 아이들과 가족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주거비 상대적으로 낮아 인기

신천은 강남과 잠실 쪽에서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편이다. 때문에 신혼부부도 많이 보이고 강남으로 일 다니는 젊은이들도 많이 산다고 한다. 집값이 어느 정도 차이가 나냐는 물음에 부동산 주인은 “월세로 따지면 대략 3분의 1은 싸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교통과 활동 편의는 강남권과 밀집해 있으나 주거비가 상대적으로 낮아 인기가 있다는 것이다.

골목 대부분은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빌라촌이다.

골목 대부분은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빌라촌이다.

신천 쪽에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이유로 바로 앞 잠실야구장을 꼽는 사람도 있다. 야구경기 끝나고 길 건너면 바로 신천 먹자골목이다. 역 쪽으로는 골목골목이 온통 식당과 포장마차 등이 형성돼 있다. “경기 뒤풀이 장소로 인기가 높다. 그러다 보니 젊은 입맛에 맞춘 상권으로 정비된 것이 지금 모습”이라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팬데믹 여파로 야구경기도 대부분 무관중으로 치렀던 탓에 신천 쪽 먹자골목은 큰 타격을 입었다. 회복이 돼 간다고는 하지만 그 속도는 더디고 언제쯤 정상이 될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한다. 신천 쪽 식당은 대체로 고기 전문집들이 많다. 돼지고기,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에 생선회까지 주로 육식파들이 식당 골목의 주인공들이다. 젊은 입맛을 겨냥한 탓에 가격은 낮고 맛은 달고 자극적인 쪽으로 치우쳤다는 염려도 있지만, 요즘 유행하는 식단을 살펴보려면 단연 신천 쪽 먹자골목을 추천한다.

오래된 가게가 리모델링한 카페로 다시 태어났다.

오래된 가게가 리모델링한 카페로 다시 태어났다.

시장 옆으로 중국식품점이 보였다. 조선족 동포라는 주인에게 이 동네에 중국인들이 많이 사느냐고 묻자 “대부분 일 다니느라고 평소에는 잘 안 보이지만, 골목 곳곳에 여럿 산다”라고 한다. 주로 강남 쪽으로 일 다니는 이들이 많고 요즘엔 일자리가 넘쳐도 중국 쪽에서 새로 들어오는 이들은 거의 없고 예전부터 지내는 이들이라고 한다. 신천 쪽을 잘 찾아보면 아직도 방값 싼 집들이 여럿 있어 중국인들이 조금씩 늘었다가 지금은 주춤하다고. 식품점에서 파는 물건은 가격이 저렴한 미국쌀부터 만주산 기장, 베이징제 백주, 윈난성의 차, 하얼빈과 산둥의 맥주, 신장에서 난 대추까지 그야말로 대륙적인 작은 장터였다.

골목은 상가보다는 주택가 위주라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상점을 볼 수 없다. 잠실 개발 초기에 지은 듯 2층 단독주택이 몇채 남아 있을 뿐 대부분은 20년 안팎 된 듯한 빌라들로 빼곡하다. 요즘 취향 따라 주차시설을 잘 갖추고 외관과 편의시설을 잘 차린 집들이 대부분이다. 철저한 도시계획의 산물로 신천의 골목길은 자로 잰 듯 반듯하다. 집들은 골목과 골목 사이에 서로 동쪽과 서쪽을 보면서 2채가 줄을 이어 배열돼 있다. 이런 골목은 석촌호수로 남쪽 탄천까지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석촌호수까지 펼쳐져 있다. 아마도 빌라들이 가득 찬 단위 지역으로는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서 가장 넓은 구역일 것이다. 골목 끝쪽 멀리 새로 지은 롯데타워의 위용이 마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사우론 탑처럼 보이는 점을 제외하고는 평범한 주택가 골목이다.

새마을시장의 명소에는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

새마을시장의 명소에는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

“교통 편리하고 인심도 좋아요”

집 앞에서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 이에게 물어보니 통장이란다. 그에게 골목 사정이 어떠냐 물었다. “여기는 주변에 좋은 학교가 있고, 지하철 2호선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한강과 탄천이 가까우니 환경도 좋고 놀이동산에 백화점까지 지척이다. 동네 사람들도 나름 인심이 좋다”고 자랑을 한다. 한적한 골목길엔 아이 둘을 앞세운 엄마의 목청 높은 목소리가 들리고, 느릿느릿 자전거 타는 노인도 보인다. 쓰레기가 함부로 버려진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통장의 주장대로 이 골목 안 형편은 살기 좋아보인다.

골목을 살짝 벗어나 상가가 있는 골목 쪽으로 생선을 구워 파는 이동식 가게가 “오늘 바로 잡아 바로 구워 드리는 맛있는 생선”을 외치고 있다. 여느 동네에서 볼 수 있는 미용실과 카페, 아이들 보습학원도 보인다. 초등학교 앞에는 수십년은 된 간판을 달고 문을 연 오래된 완구점 겸 문구점도 볼 수 있다. 대체로 유행인 듯 서울 시내 골목길을 온통 점령한 아이스크림 전문점도 있다. 평범한 상가지만 대체로 정돈된 분위기가 이 골목의 특색이다.

새마을시장은 잠실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새마을시장은 잠실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잠실은 대체로 초기의 도시계획이 살아남아 있다. 저층 아파트가 고층으로 변한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달라진 골격은 없어보인다. 상업지대와 주택가가 적당히 혼재해 있고, 각종 편의시설이 적절하게 자리 잡고 있다. 개발이 시행됐던 1970년대 초반과 지금의 환경이 상당히 변했으나 도시계획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도 평범치 않은 일이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환경 개선과 개발에 큰 투자가 있었던 것도 지금과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됐다. 특히 잠실새내역 주변의 주택환경은 집들만 빌라가 주가 된 공동주택들로 변했을 뿐 가로의 모습은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어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잠실의 아파트값은 한없이 올랐다. 저층 아파트의 재개발을 소재로 수직상승을 부추긴 점도 없지 않지만, 그만큼 주거환경이 잘 돼 있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낮은 층수의 빌라촌이 잠실 일대의 거대한 영역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서민과 중산층의 터전이 사라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다.

신천이란 강이름은 사라졌다. 그 주변에 깃들어 살던 이주민들이 모여 살던 곳도 지금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상업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잠실이란 이름을 내세워야 한다는 이들 덕분에 지하철 신천역도 잠실새내역으로 바뀌었다. 이름이 변하는 것이야 흔한 세상의 일상이나, 그 이름에 기억된 집단의 역사까지 지워지는 일은 슬픈 일이다.

잠실새내역, 신천 또는 잠실본동 일대 골목은 평안하다. 주변에 학교며 공원이 적당히 있고, 시장 가까워 살기 편한 마을이다. 그런 모습으로 이 골목 또한 오래도록 버티고 있기를 바란다. 이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쉴 만한 곳이라면 풍수가가 주장하는 명당일 텐데, 걷다 보면 이 골목이야말로 명당 중의 명당이 아닐까 싶다. 골목 사람들 모두 명당에서 크게 복을 받았으면 좋겠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골목 내시경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