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을 잡고 싶은 ‘퀄컴의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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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퀄컴의 주가는 30%가량 급등했다. 1년 내내 비실비실했던 주가를 회복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 부침의 이유는 애플에 있었다. 물론 스스로도 칩 부족 사태를 회피하며 좋은 실적을 낸 것이 주가 상승의 기폭제였지만, 애플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 불을 지폈다. 애플은 어느새 반도체의 성능 기준이 돼버렸다. 퀄컴은 안드로이드폰에 주로 탑재되는데, 최고급 기종도 최신 아이폰의 보통 모델보다 성능이 한참 떨어졌다. 그런데 앞으로는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 주가는 기대에 따라 움직인다.

퀄컴이 최근 발표한 스냅드래곤 8젠 1의 홍보 사진 / 퀄컴

퀄컴이 최근 발표한 스냅드래곤 8젠 1의 홍보 사진 / 퀄컴

2022년 최신 안드로이드 플래그십을 위한 스냅드래곤 칩이 최근 발표됐다. 확장 현실을 위한 USB-C, ‘올웨이스 온’ 카메라, 와이파이 6E, 블루투스 5.2 등이 풍성히 담겨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품 명명법도 리셋하며 와신상담의 다짐을 숨기지 않는다. 신작의 이름은 ‘스냅드래곤 8젠 1’. 젠(Gen) 1은 1세대(Generation)란 뜻이다. 스냅드래곤 888의 후속작으로 전작에 비해 30% 전력을 절약하면서도 20% 빠르다고 한다. 삼성의 4나노 공정 덕인가 싶은데, 삼성은 공정 효과는 16% 정도의 전력 감축이라고 하니, 그 이외에도 퀄컴 나름의 혁신이 있었나 보다.

지금까지의 퀄컴 작명법에는 패턴이 있었다. 제일 앞 수치가 클수록 하이엔드를 의미했는데, 일종의 BMW식 명명법이었다. 엔트리 레벨은 400대, 중급은 600이나 700이었다. 두 번째 글자는 세대를 의미했고 마지막 자리는 마이너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이 명명법이 꼬이면서 변화의 신호가 느껴지기는 했다. 스냅드래곤 865의 후속작은 875여야 하는데 갑자기 888로 명명된 것. 이해는 가는 일이었다. 스냅드래곤의 대다수 고객은 중국 기업이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상서로운 숫자인 럭키넘버 8의 스리콤보를 선물하기로 한 셈이다. 미중 무역전쟁 속에서 하나의 제스처였고 효과적이었다. 저렇게 혼동을 야기해도 되나 싶었는데, 세 글자 네이밍은 끝물임을 알았기에 마지막 파티였나 싶기도 하다. 이미 780, 695 등 쓸 이름의 재고가 고갈 직전이었다.

애플이 M시리즈니 A시리즈니 벤츠식 명명법을 택하고 뒤의 숫자로 세대를 나타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퀄컴도 기본적으로 이를 뒤따르게 됐다. 그나저나 젠 1이라니 무슨 USB-C 사양처럼 돼버렸지만, 스냅드래곤의 PC 및 크롬북용 칩에서는 이미 쓰이던 방식이다.

2023년 출시 예정인 PC용 칩 ‘8cx 젠 3’의 소식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8cx 젠 2’에 비해 최대 85% 더 나은 CPU 성능과 최대 60% 더 빠른 GPU 성능을 보장하고 경쟁사 인텔칩에 비해 와트당 60% 더 강해진 성능이라고 자랑한다. 미세공정화도 7나노에서 5나노로 진보했다. 이 새로운 칩을 탑재한 윈도11 암(ARM) 판(版)은 M1으로 한창 타오르고 있는 맥을 누를 수 있을까. 사실 본 게임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 퀄컴이 1조5000억원을 들여 올해 인수한 누비아(Nuvia)의 본격 설계작이 등장하기 전이라서다. 애플의 A시리즈 칩을 만든 이들이 나와 만든 곳이 누비아다. 퀄컴에는 다 계획이 있는 셈이다.

<김국현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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