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그들만의 1차원적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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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과학기사는 대부분 외국 언론을 베낀 것이다. 외국에서 반짝 뜬 기사를 적당히 버무려 기사로 내는 관행 덕분에 국내 과학기자 대부분은 기사의 바탕이 된 논문을 아예 읽지 않는다. 과학기자 중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나온 과학논문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어차피 한국에서 과학기사란 신문의 분량을 맞추는 양념 정도다. 한국에서 과학저널리즘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언론사는 거의 없다.

“한국 치킨은 맛없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음식평론가 황교익씨 / 연합뉴스

“한국 치킨은 맛없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음식평론가 황교익씨 / 연합뉴스

황교익의 맛없는 한국닭 논란

음식평론가 황교익씨의 맛없는 한국닭 논란도 그런 맥락 속에 놓여 있다. 얼마 전 한 미디어에서 황교익씨 발언의 근거가 된 논문 데이터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국립축산과학원이 2011년 발간한 ‘육계의 사육 일령에 따른 닭고기의 이·화학적 특성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이다. 연구의 목적은 분명하다. ‘사육 일령에 따른 닭고기 품질 등을 조사해 대형 닭고기 생산에 대한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2000년대 후반 닭가슴살 다이어트 열풍에 맞춰, 부분육 수입이 늘자 정부는 이중 일부를 국내산으로 대체하려 했고, 이 논문은 그 정책을 위한 연구였다.

황교익씨가 인용한 근거는 논문이 아니라 이 논문을 근거로 농진청이 2016년 발행한 농업경영자료다. 황교익씨의 ‘갈라파고스가 된 치킨 공화국’이라는 글에는 이 자료의 47페이지가 그대로 인용돼 있다. 하지만 농진청의 이 자료는 논문의 내용을 가공해 전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데이터의 해석이 자의적이다. 예를 들어 대형닭의 지방이 일반닭보다 3.8배 높은 건 사실이다. 지방은 고기맛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고기맛은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그중 하나가 핵산물질이다. 농진청은 “감칠맛 나는 핵산물질 이노산(inosan) 함량이 일반닭에 비해 대형닭이 많음”이라는 식으로, 핵산물질과 대형육 맛의 관계를 수치도 없이 모호하게 표현했다. 황교익씨도 이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하지만 논문에서 핵산물질 함량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이 자료는 자의적인 해석의 연속이다. 저자는 쓴맛을 내는 성분을 기술하면서 “쓴맛을 내는 무기물성분인 P(인)가 일반닭은 2.412ppm이고 대형닭은 2.251ppm”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원본 논문의 연구진이 조사한 무기물은 칼슘, 인, 칼륨, 마그네슘, 철, 구리로 이중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대형닭에서 함유량이 줄어든 무기물은 인과 철뿐이었다. 구리는 유의미하게 증가했고, 칼슘도 함유량 절대값은 증가했다. 무기물 중 쓴맛을 내는 성분으로 유명한 물질은 인이 아니라 마그네슘과 칼슘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두 물질은 일반닭과 대형닭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또한 연구진은 핵산물질 중 쓴맛을 낸다고 알려진 하이폭산틴이 대형닭에서 오히려 증가한다는 사실도 경영자료에서 제외했다.

황교익씨는 칼럼의 마지막을 이렇게 채웠다. “그러니 대형 육계는 영계가 아니므로 맛이 없을 것이라는 말은 반관습적이며 비과학적이다.” 미안하지만 과학은 대형닭의 맛에 대해 아직 아무런 결론도 말해주지 않았다. 음식평론가는 아니지만, 생물학자의 부족한 지식으로도, 우리가 느끼는 맛의 상당 부분은 주관적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우리의 감각은 환경을 있는 그대로 복사해 두뇌에 전달하지 않는다. 그것이 신경과학이 맛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교훈이다.

한국사회가 아이를 낳아 키우기 힘든 사회임을 강조하기 위해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금 애를 낳는 사람은 바보”라고 지적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 박민규 기자

한국사회가 아이를 낳아 키우기 힘든 사회임을 강조하기 위해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금 애를 낳는 사람은 바보”라고 지적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 박민규 기자

최재천 교수의 아이큐 두 자리 논란

과학적 데이터를 읽을 줄도 모르는 황교익씨에 비한다면, 최재천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이미 유명한 과학자이자 지식인으로 자신의 과학적 발언에 더 큰 책임을 질 위치의 인물이다. 한국사회에 진화생물학의 가치를 알린 학자로서 그의 활동을 존중한다. 또한 과학자가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과학자로서 해결책과 대안을 제시하는 활동 또한 ‘과학의 자리’를 고민하고 ‘과학적 사회’를 꿈꾸는 과학자로서 얼마든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과 사회가 상호작용해온 역사에 대한 공부와 성찰이 우선되지 않은 채 과학자가 대중을 향해 직접 발언하는 방식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지금 애를 낳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머리가 얼마나 나쁘면, IQ가 두 자리가 안 되니 애를 낳는 거겠죠? 애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아무리 계산해봐도 결코 현명한 일이 아닙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진화생물학자가 출산의 문제에 대해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IQ가 두 자리라는 표현이 거슬리지만, 정부정책에 대한 분노 때문에 거친 표현이 나왔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그가 지난 수십년간 사회생물학 혹은 진화생물학자로서 사회의 대안이라며 제시해온 전략, 즉 자연으로부터 어떤 가치를 가져다 인간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는 ‘자연주의적 오류’의 늪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주변에 먹을 것이 없고, 주변에 숨을 곳이 없는데 그런 상황에서 새끼를 낳아 주체를 못 하는 동물은 진화과정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출산의 문제를 동물의 생존전략으로 환원하는 방식으로, 도대체 어떤 정책을 만들 수 있을까. 나아가, 그의 비유 속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한국인 부부는 ‘트리슈르’라는 나무 두더지류와 같은 수준으로 추락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출산에 대한 생각은 1차원적이다. 그는 진화생물학자로 연구논문을 쓰며 동물에게 사용하던 언어를,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인간에 들이댄다. 수십년 전 우생학자들이 그랬고, 그 전엔 사회진화론자들이 다윈의 이론으로 제국주의를 변호했다.

최재천 교수가 방송에서 한 말을, 과연 논문으로 써서 발표할 수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그는 저 발언을 유튜브에서 했다. 학자로서의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대중과학자들이 선호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그가 저 발언에 대해 사회생물학자로서 얼마나 책임질 수 있느냐다. 학자가 자신의 작업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일은 고귀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작업이 동료 학자나 전문가들에게 받아들여질 수조차 없는 유치한 형태의 ‘자연주의적 오류’에 불과하다면, 그런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발언이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면, 학자는 대중적 발언에 신중해야 한다. 내가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 연구를 인간 남성의 성생활 교과서로 사용하지 않듯이,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진화생물학의 연구대상을 인간사회의 복잡한 문제로 옮기는 일은, 좀더 신중해야 한다. 다윈은 신중했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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