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소수 대란은 공급망 ‘백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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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안보 차원 수입품목 공급망 다변화·사이버테러 대비해야

요소수 공급 부족 사태가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다. 기존에 확보했던 중국 수입 물량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호주와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등 세계 각지에서 요소수와 요소를 긁어모은 덕이다. 11월 16일 기준 5대 주요 요소수 업체의 생산량은 96만ℓ를 기록해 하루평균 사용량인 60만ℓ를 넘었다. 2만원대 중반을 넘던 요소수 가격은 1만원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정부가 하루 2번씩 공개하는 중점유통 주유소 차량용 요소수 재고 현황을 보면 18일 12시 기준으로 주유소 125곳 중 16곳이 재고 200ℓ 미만을 보이고 있다. 수개월 분량을 확보해 숨통은 트였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

11월 17일 경기 의왕시의 한 주유소에서 직원이 화물차에 요소수를 주입하고 있다. / 연합뉴스

11월 17일 경기 의왕시의 한 주유소에서 직원이 화물차에 요소수를 주입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은 투자할 때만 고려할 게 아니다. 공급망을 특정 국가와 지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도 피해야 한다. 사소하게 여긴 품목이라도 부족해지면 공급망 전체를 뒤흔들고, 생산과 소비, 물가에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다. 요소수 대란은 좋게 본다면 이런 위험성을 깨닫고, 대비에 나설 동기를 준 ‘백신’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경제안보 관점에서 공급망 다변화와 함께 기후변화, 사이버테러 등 앞으로 지속적으로 공급망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요인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급망의 나비효과 보여준 요소수 사태

글로벌 공급망은 지난해 이후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재편, 코로나19로 인한 생산과 물류의 지체 현상, 각국을 휩쓴 산불·홍수 등 재난재해로 지속적인 교란을 받았다. 요소수 사태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봄 호주가 중국을 겨냥해 코로나19의 발원지를 조사해야 한다고 말하자 중국은 호주산 소고기, 와인, 보리에 고율 관세를 매기는 보복조치를 취했다. 그해 10월에는 호주산 석탄 수입을 중단했다. 중국은 인도네시아 석탄으로 대체하는 전략을 세웠지만 기대한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탄소중립 정책의 영향으로 석탄 채굴이 줄면서 전력난을 겪었다.

공급망을 무기화한 중국이 자기 발등을 찍었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세계는 돌고 돈다. 중국의 공장이 가동을 멈추자 중국이 공급하는 원자재와 중간재, 최종재의 가격이 올랐다. 글로벌 물가상승 요인이 된 것이다. 게다가 석탄 재고 감소와 전력난으로 요소 생산이 줄자 지난 10월 15일 요소 등 비료 품목의 수출제한에 나섰다.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11년 전 요소 생산을 중단하고 중국에 의존한 우리가 피해를 보게 됐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공급망은 생각보다 깊숙하게 서로간에 영향을 주고받아 한두단계까지는 내다볼 수 있지만 그 이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을 얼마나 우리가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면서 “이번 (요소수) 사태는 누군가 경제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공급망을 무기화한다든지 공급망에 혼란을 주는 건 그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공급망 의존도 현황
-산업연구원 “중국 의존도 50% 이상 1088개, 70% 이상 653개”
-무역협회 “올해 1∼9월 수입품목 1만2586개 중 단일국 수입 의존도 80% 이상 3941개”


한국무역협회 자료에 따르면 올해 1~9월 수입품목 1만2586개 중 단일국 수입 의존도가 80% 이상인 품목은 3분의 1인 3941개다. 요소수의 원료가 되는 산업용 요소의 경우 한국이 올해(1~9월 누적 기준) 수입한 물량의 97.6%가 중국산이다. 산업연구원이 18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대중국 수입의존도가 50% 이상인 ‘관심 품목’은 요소, 실리콘, 리튬, 마그네슘을 포함해 1088개이다. 전체 중국 수입품목의 5분의 1 수준이다. 리튬과 마그네슘은 우리의 주력 산업인 화학과 이차전지, 반도체 등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유사시 이들 품목의 공급이 끊길 경우 피해가 커질 수 있다. 공급망은 서로 얽히고설켜 있어 한국의 공장이 멈추면 우리 중간재를 수입하는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타격을 입게 된다. 연원호 연구위원은 “국가 경제의 상호 의존도를 말할 때 일방향으로만 이야기하지만 사실 의존도는 상호적”이라고 말했다.

요소수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질 수 있다는 점에서 꼼꼼하게 공급망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로 불거진 338개 소부장 품목뿐만 아니라 특정국가 의존도가 높은 원료까지 글로벌 공급망 관리시스템을 점검하기로 했다.

원자재·물류 등이 단기적 교란 요인

공급망 교란에는 원자재 가격 상승도 큰 영향을 준다. 유럽은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하면서 전력난을 겪었다. 탄소중립 정책으로 석탄발전이 빠른 속도로 감소하자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수급 불균형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으로 천연가스 발전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에너지 저장장치가 확대된다면 개선될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이런 수급 불균형이 원자재·에너지 가격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공급망 무기화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최근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선에서 난민 수용 문제로 분쟁을 겪자 벨라루스가 러시아에서 오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잠그겠다고 위협하고, 독일이 노드스트림2의 승인 절차를 중단하면서 천연가스 가격은 다시 급등세를 보였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위드 코로나로 이행하면서 수요가 늘고 있지만 생산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 것도 공급망 교란으로 나타난다. 특히 백신 접종률이 낮은 동남아 국가들이 올해 여름 코로나19 재확산에 봉쇄로 대응하면서 부품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차량용 반도체, 와이어링 하네스 등 일부 품목 부족이 공급망 전체를 뒤흔들면서 GM, 포드의 경우 올해 3분기 자동차 생산량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3.1%, 27.6% 감소했다. 국내 완성차 5개사의 자동차 생산량도 2008년 이후 13년 만에 최저수준을 보였다.

미국 서부항만을 중심으로 한 물류난도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와 롱비치 항만 앞바다에는 지난 12일 기준 83척의 화물선이 떠 있다. 입항까지 평균 16.9일을 기다려야 하는데 역대 최장 기록이다. 두 항구는 미국 수입품의 3분의 1을 처리하는 핵심 거점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두 항구를 완전 가동하라고 지시해 하역된 컨테이너가 3~9일 사이에 항구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경우 벌금까지 부과하지만 단기간에 해결되긴 어려워 보인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과 물류 병목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이다. 정작 큰 우려는 구조적인 변화에 있다. 지정학적 갈등이 첫손에 꼽힌다. 무역과 안보가 결부되면서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요국들은 경제안보정책을 명시적으로 도입하는 동시에 산업과 통상, 기술 정책을 연계하고 있다. 경제 정책의 초점이 산업통상정책으로 옮겨갔다는 의미이다. 최근 청와대 경제수석에 산업통상, 에너지 전문가인 박원주 전 특허청장이 임명된 것도 이 분야에 정부의 역량과 의지를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요소수 사태로 산업적 마인드가 불충분했던 것 아닌가라는 문제의식이 있다고 본다”면서 “안정적인 글로벌 공급망 구축이나 산업 부분에서 생길 수 있는 돌발 사태에 잘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려는 인사”라고 평가했다.

비용 최적화 관점에서 구축되던 공급망은 안정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통상정책실장은 “생산비가 저렴한 곳으로 가는 공급망 구조는 여전히 유효한 부분이 있지만 그보다는 충격이 왔을 때도 지속가능하고 복원력으로 금세 회복할 수 있는 공급망을 만드는 게 세계적 흐름이 되고 있다”며 “시장가치를 공유하지 않거나 외교관계가 좋지 않은 국가와 공급망을 갖는 건 상당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는 점에서 동맹국과 우방국에서 수입 대체선을 찾는 방향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기업이 신남방(동남아) 혹은 신북방(중앙아) 진출에 공을 들이는 것도 공급망 재편과 무관치 않다.

요소수 대란은 공급망 ‘백신’이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유의해야

연원호 연구위원은 “주요국의 흐름을 보면 크게 두가지, 산업정책과 신뢰할 수 있는 국가 간의 협력을 중시하고 있다”면서 “다만 중국과의 완전한 단절은 미국도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분야의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는 일이 중요하지, 그 외의 영역에서는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와 지역에 공급망을 두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 맞다는 뜻이다.

경제안보 차원에서 우방국이라 해도 지나치게 의존도가 높을 경우 ‘단일장애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어느 한 나라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품목이 있는데 자연재해 등으로 공급이 중단될 경우 큰 충격이 올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지난 6월 미국이 공개한 ‘100일 공급망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보다 대만 리스크를 더 크게 거론했다. 연 연구위원은 “중국의 추격은 위협적이지만 공급망 측면에서는 10㎚ 미만의 첨단 반도체를 대만에 과하게 의존하는 게 더 큰 리스크 요인이라고 봤다”면서 “TSMC 공장을 미국 내에 유치하는 것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유사사태가 벌어져 반도체 조달이 안 될 경우를 대비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기후변화와 사이버테러의 증가와 같이 장기적인 공급망 재편 혹은 교란 요인에도 대비해야 한다. 우선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해 공급망의 탈탄소를 추진하면서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곳으로 공급망을 옮길 수 있다. 김수동 실장은 “유럽은 탄소국경조정세를 만들어 2026년부터 특정 국가에서 탄소세를 내지 않는 물품이 수입될 경우 자체적으로 세금을 물릴 계획이다”면서 “이 세금을 안 내려면 화석연료를 쓰지 않는 쪽으로 공급처를 바꿀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에도 유의해야 한다. 연 연구위원은 “지진은 변화가 없는데 홍수와 같은 이상기후 관련 재해는 상당히 증가하고 있다. 올해 중국과 유럽에서 홍수로 철도망이 마비됐는데 이런 자연재해가 공급망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공급망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테러는 미국에서 올해 1분기 전년 대비 42% 증가했다. 올해 초 미국 콜로라도주의 송유관 운영회사 해킹사건으로 석유 공급망이 마비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연 연구위원은 “최근 공급망 교란의 가장 큰 원인의 하나로 사이버해킹 문제가 있는데 데이터상으로 2019년 이후 폭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면서 “공급망 교란은 지속적으로 유의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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