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PK 보수 복원 이뤄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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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 ‘정권교체론’ 높아… 지역 연고성, 정치적 카리스마 약하단 평가도

2016년 12월 9일. 국정농단 사태는 국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이어졌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26년 동안 유지됐던 보수지형이 대격변기에 빠져드는 초유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5년 뒤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중형을 끌어낸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출신이 제1야당의 정권 탈환 선봉에 서게 되는 아이러니다. 윤석열 후보는 보수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윤 후보를 선택한 보수세력의 눈길은 부산·울산·경남(부울경·PK)으로 향한다. 대구·경북(TK)과 함께 보수를 지탱해온 양대 축. 하지만 국정농단 사태 이후 ‘스윙보터’화가 진행 중인 곳이다. ‘윤석열’에 투영된 보수의 꿈이 일장춘몽일지, 현실이 될지는 PK의 선택에 달렸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7월 27일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을 방문해 랍스터를 들어 올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7월 27일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을 방문해 랍스터를 들어 올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흔히 PK로 통칭되는 부울경 지역은 과거 ‘야(野)도’의 중심으로 인식됐다. 두 번의 독재정권이 PK의 저항으로 무너졌다. 경남 마산의 3·15의거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고, 이승만 정권의 종언을 고했다. 1979년 부마 민주항쟁은 박정희 유신체제가 막을 내리는 단초가 됐다. ‘김영삼(YS)’이라는 독보적인 야권 지도자도 보유했다.

‘87년 체제’ 이후 3당 합당으로 ‘보수의 전성기’를 연 곳도 PK였다. 13대 대선 때 노태우 대통령은 부산 32.10%, 경남 41.17%를 득표했다. 3당 합당 이후 치러진 14대 대선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부산에서 73.34%, 경남에서 72.31%라는 ‘몰표’에 가까운 득표율을 올렸다.

국정농단으로 붕괴한 ‘보수 텃밭’

울산시가 1997년 경남도에서 광역시로 승격된 뒤 치러진 15대 대선부터 18대 대선까지 보수정당 후보들은 부울경에서 최소 55%에서 60%의 득표율을 보였다. 일찌감치 승부가 갈려 투표 열기가 낮았던 17대 대선 때도 이명박 대통령은 부산 57.90%, 울산 53.97%, 경남 55.02%를 득표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부울경이 ‘보수 텃밭’임을 각인한다. 18대 대선 당시 그는 부울경에서 60%가 넘는 득표율을 보였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PK 민심에 강력한 소구력을 발휘했다. 대선에 앞서 같은 해 열린 총선, 그가 순회하는 부울경 지역 후보는 5%포인트 이상의 지지율 상승효과가 있다는 것이 정설처럼 퍼졌다. 하지만 PK 보수의 운명은 ‘2막’을 연 박 전 대통령에 의해 극적으로 뒤바뀐다. 임기를 1년 앞두고 터진 국정농단 사태로 자멸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의 부울경 득표율은 30%대. 이전 대선에 비해 거의 반토막 수준으로 무너졌다. 이어진 2018년 전국 동시지방선거에서는 사실상 궤멸했다. 부울경 광역단체장을 모두 잃었고, 지역 지방의회에서 다수당의 위치도 빼앗겼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7월 2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김영삼 대통령 기념관을 방문해 김현철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와 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7월 2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김영삼 대통령 기념관을 방문해 김현철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와 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에 투영된 ‘보수의 꿈’

절치부심하던 PK 보수진영의 선택은 ‘윤석열’이었다. 그가 30년 가까이 누렸던 PK 보수세력의 영광을 재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능성은 반반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단 환경적 요인은 나쁘지 않다. PK에서 정권교체론은 일단 다른 지역보다 높게 나타난다. 리서치뷰 조사(지난 6~7일,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고)에서 부울경의 프레임 공감도는 ‘정권교체’가 63%로 ‘민주당 재집권’(28%)보다 배 이상 높았다. 전국적으로는 정권교체 56%, 민주당 재집권 33%였다.

‘조국 사태’가 오늘날 ‘정치인 윤석열’을 있게 한 것은 그가 PK 보수진영에 부각되는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윤 후보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밀어붙이며 여권과 충돌했다. 조 전 장관 후임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추·윤 갈등’은 현 정권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현 여권과의 분명한 대립각이 필요했던 보수진영은 환호했다. 이른바 ‘반문(반문재인)의 기수’면서 기성 정치권에 몸담지 않은 ‘거물급 신인’이 등장한 셈이다. 윤 후보도 반문 이미지를 십분 활용한다. 그는 지난 5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저의 경선 승리를 이 정권은 매우 두려워하고, 뼈아파할 것이다. 조국의 위선, 추미애의 오만을 무너뜨린 공정의 상징”이라고 주장했다. 또 “문재인 정권의 정당성을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아픔”이라고 자칭했다. 그가 과거 보수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PK 의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PK 보수 복원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하는 근거다.

하지만 회의론 역시 적지 않다. 그에게서 박 전 대통령이 갖춘 강력한 정치적 카리스마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가졌던 ‘성공신화’나 청계천 복원으로 대표되는 행정 성과 등 ‘스토리텔링’이 어렵다는 점도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지역적 연고성이 약한 것도 영남 출신이었던 두 전직 대통령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특히 과거와 같은 탄탄한 PK 기반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선을 치러야 하는 것도 윤 후보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역대 보수 대선후보들이 PK에서 과반의 득표를 할 수 있었던 데는 3당 합당으로 형성된 강한 보수 지형이 토대가 됐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PK의 보수 기반은 수차례 무너지거나 흔들리는 현상을 보였다. 회복의 가능성을 보인 것은 지난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 국민의힘 소속의 박형준 부산시장은 이 선거에서 62.67%의 득표율을 올렸다. 하지만 부동산 민심 이반이 강타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런 표심이 일회성일지, 연속성을 가질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많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호남 공략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도 PK에서 과거와 같은 득표력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012년 대선에 주목했다. 이 대표는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양자대결로 팽팽하게 붙었는데, 그때 박 전 대통령이 PK에서 올린 득표율이 60% 정도”라며 “윤 후보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당시 박 전 대통령이 가진 카리스마와 PK 동원력을 갖기는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갈수록 지역주의 투표 성향이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취약한 젊은세대나 호남지역으로 확대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우 국제신문 서울정치부장 yai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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