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기’는 끝났다? 미 연준 테이퍼링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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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미칠 영향 제한적일 듯… 전문가들 “금리인상 기조 대비해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자산매입 축소(테이퍼링)를 공식화하면서,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지속됐던 미국의 양적 완화가 서서히 종료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연준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시중에 풀던 막대한 돈의 양을 줄이기 시작한다는 의미다. 연준의 발표대로라면 내년 상반기에는 자산매입 축소가 종료되고, 하반기에는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 논의에 나설 것으로 보여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11월 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있는 TV 스크린에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테이퍼링을 발표하는 모습이 방송되고 있다. / 뉴욕 | AP연합뉴스

11월 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있는 TV 스크린에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테이퍼링을 발표하는 모습이 방송되고 있다. / 뉴욕 | AP연합뉴스

연준의 이번 테이퍼링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 수준’이란 것이 대체적 평가지만, 한국이 이미 금리인상 사이클에 접어든데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자산가격이 급등하고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난 점은 충격을 키울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또 공급 병목으로 인한 인플레이션(물가오름세)이 예상보다 장기화할 경우 연준의 대응시계 역시 빨라질 가능성이 열려 있는 점도 지속적으로 살펴야 할 변수다.

한달에 150억달러씩, 테이퍼링 공식화

연준은 지난 11월 3일(현지시간) 이틀간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성명에서 “지난해 12월 이후 연준의 목표를 향한 경제의 상당한 진전을 고려할 때 월간 순자산 매입을 국채 100억달러, 주택저당증권(MBS) 50억달러씩 줄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간 시장에서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던 테이퍼링을 공식화한 것이다.

테이퍼링(tapering)은 ‘점점 가늘어지다’는 뜻으로, 연준이 자산매입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해나가는 조치를 가리킨다.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연준은 기준금리를 ‘제로금리’ 수준인 연 0.00~0.25% 수준으로 낮추고, 경기 회복 지원을 위해 매달 미 국채 800억달러와 MBS 400억달러 등 1200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매입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왔다. 중앙은행이 채권 같은 금융자산을 직접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왔는데, 이제는 이 같은 비상수단을 거두고 ‘비정상의 정상화’에 돌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미국 경제가 코로나19 이후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물가오름세가 심상치 않게 지속된 것이 테이퍼링을 결정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2분기 뒷걸음질쳤던 미 경제는 이후 5개 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으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미국 등 선진국은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 이후에도 신흥국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면서 안정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 사이 물가는 빠르게 뛰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공급이 차질을 빚는 반면, 수요가 빠르게 살아났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 10월 전년 동월보다 6.2% 올라 31년 만에 가장 크게 올랐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던 연준은 최근 들어 공급망 차질에서 비롯된 전방위적인 물가 급등세가 ‘예상보다 더 길고 강할 것’이라며 궤도 수정에 나선 상태다.

2013년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취했던 완화적 조치를 거두어들이기 위해 테이퍼링 가능성을 시사하자 국제금융시장이 크게 출렁였다. 이른바 ‘긴축발작(테이퍼 탠트럼)’이었다. 국내시장에서 급격히 자본이 빠져나갔고, 주식과 채권가격은 떨어졌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이 같은 급작스러운 충격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2013년의 충격을 교훈삼아 사전에 충분히 신호를 보낸 덕에 시장 반응도 크지 않았다. 오히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테이퍼링 결정은 금리정책에 대한 직접적인 신호로 의도된 것이 아니다”라며 “현재는 금리를 인상하기에는 시기상조이며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 것이 시장을 안도시키면서 위험자산 선호현상이 지속됐다. 정부 역시 “이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가 국제금융시장에서 큰 무리 없이 소화되며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전망”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테이퍼링에 따른 금융시장의 충격보다는 앞으로 본격화할 금리인상 기조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급증, 자산시장 과열 등의 금융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8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고, 오는 11월 25일 열릴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 추가 인상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여기에 테이퍼링이 실시되면 국내 시장금리의 인상할 압력도 강해질 것으로 보여 취약계층의 빚 부담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민간부채가 크게 늘어난 국가에 속한다. 올해 2분기 기준 민간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218.2% 수준이다. 민간이 지고 있는 빚의 규모가 나라경제 규모의 2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가계부채가 1805조9000억원, 기업부채가 2219조6000억원이다. 각각 전년 같은 기간보다 11.6%, 8.1% 증가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민간부채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자산가격 상승도 높아 잠재적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국내 경제여건은 양호한 편이지만 가계와 기업의 부채 수준이 높아 테이퍼링에 따른 영향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금리인상 기조가 빠르게 진행될 경우 상환 부담이 커질 수 있고, 경제 전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 ‘내년 연말’ 금리인상 가능성

시장의 관심은 연준이 언제 금리인상에 착수할지에 더 쏠려 있다. 금리인상은 연준의 본격적인 ‘돈줄 죄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연준은 아직까지 금리인상에는 선을 긋고 있지만, 여지를 남겨뒀다. 시장에서는 테이퍼링 속도가 더 빨라지거나 물가 대응을 위해 금리인상을 서두를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FOMC는 11월 성명서에서 인플레이션이 “일시적 요인을 반영해 올랐다”는 기존의 표현을 “일시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요인을 반영해 올랐다”는 문구로 변경했고, “팬데믹과 경제 재개방으로 인한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이 일부 섹터의 상당한 물가 압력에 기여했다”는 문구도 추가했다. 테이퍼링의 속도와 관련해서도 “순자산 매입의 속도를 매월 유사한 규모로 줄여나가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하지만, 경제 전망의 변화가 있다면 속도를 조정할 준비가 돼 있다”는 표현으로 속도에 대한 완충 장치를 마련했다.

일단 금리인상 시점은 내년 말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연준 내 고위 인사들도 내년 말 물가와 고용 면에서 금리인상 조건을 충족할 것이라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현재의 물가 압력이 공급 측 문제로 야기된 부분이 크다는 점에서 내년 상반기 점차 완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물가가 예상경로 안에서 움직인다면 연준의 금리인상 시점은 2022년 말~2023년 초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높게 지속될 경우 테이퍼링 속도가 빨라질 수 있으며, 단기간 늘어난 양적 완화 규모로 인해 그 영향이 커질 수 있다”며 “금융당국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윤주 경제부 기자 run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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