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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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알리. 그는 ‘위대한 복서’로 불립니다. 그의 인생을 조명한 영화도 숱하게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전적이 복서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61번 싸워 56번(37KO)을 이겼습니다만, 진 것도 5번이나 됩니다. 기록으로 보자면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가 앞섭니다. 그는 50번(27KO) 싸워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습니다. 5체급이나 석권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 앞에는 ‘전설적인(Legendary)’은 붙어도 ‘위대한(The greatest)’은 붙지 않습니다.

[편집실에서]위대한 기업

메이웨더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알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알리가 ‘위대한’이란 칭호를 받게 된 것은 링 안뿐 아니라 링 밖의 업적도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는 챔피언 타이틀 박탈을 감수하면서까지 인종 차별, 전쟁과 싸웠습니다. 파킨슨병에 시달리던 그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개막식에서 손을 떨며 성화에 불을 붙이던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11월 11일. 한 야구선수의 사망 10주기를 기리는 다큐멘터리 영화 한편이 개봉됩니다. <1984 최동원>입니다. 부산 사직야구장 한켠에는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매년 최고의 투수에게는 그의 이름으로 된 상이 수여됩니다. 103승에 2.4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통산 전적만으로는 그를 ‘최고 야구선수’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를 ‘위대한 야구인’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최동원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홀로 4승을 거두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동료선수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선수협의회를 결성하려다가 고향팀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어깨가 망가지고, 야인으로 떠돌게 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팀을 위해, 약자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라운드 안팎의 행보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 법원에서 프로포폴을 불법 투약한 혐의로 70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국정농단에 연루돼 실형을 받았다 가석방된 게 얼마 전입니다. 삼성전자는 매출액만 266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입니다. 시가총액은 코스피 전체의 20%에 이릅니다. 삼성은 ‘초일류기업’이 분명하지만 이래서는 위대한 기업으로 불리기가 어렵습니다.

비단 삼성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재계는 짧은 기간, 기적과 같은 성장을 일구고도 상응하는 존경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기업 정서를 통탄하지만 이는 자초한 측면이 큽니다. 최근 들어 기업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적인 흐름에 동참하는 것이겠지만 차제에 단순한 경영전략이 아닌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우리도 위대한 기업 하나쯤 가져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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