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베트남의 삼성’ 빈그룹의 부동산 성공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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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전까지 한국에서는 베트남 투자가 열풍처럼 번졌고, 너도나도 베트남으로 달려갔다. ‘포스트 차이나’라며 한국의 대기업들이 앞다퉈 베트남에 진출했고, 해외 직접투자 누적투자액 1위 자리도 한국이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베트남의 성장 가능성은 높아 보였고, 실제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해왔다. 이처럼 우리와 경제적으로 밀접한 베트남이지만 어떤 기업을 알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빈그룹(VinGroup)을 떠올릴 것이다. 빈그룹은 부동산에서 유통, 미디어, 자동차까지 다양한 업종에 계열사를 두고 있는 베트남 최대 기업집단으로 한국 언론에서 ‘베트남의 삼성’이라는 비유를 많이 쓰고 있다.

빈패스트가 만든 SUV 자동차 LUX SA 2.0 / 고영경 제공

빈패스트가 만든 SUV 자동차 LUX SA 2.0 / 고영경 제공

빈그룹이 유명하게 된 계기는 규모가 크고 베트남 경제를 이끄는 대표선수이면서 창업부터 성장까지의 스토리가 성공신화 서사를 잘 갖추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빈그룹의 창업자는 팜 느엇 브엉(Pham Nhat Vuong)이다. 사업은 베트남이 아니라 특이하게도 우크라이나의 라면회사에서 시작했다.

팜은 베트남전쟁이 벌어지던 1968년 하노이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청년시절을 보냈지만 수학에 재능이 있던 팜 회장은 장학금을 받고 러시아(당시에는 소련)로 유학을 떠났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경제는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혼란을 겪고 있었다. 팜은 그곳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 1993년 작은 식당을 열었고, 현지 주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팜은 테크노컴(Technocom)이라는 식품업체를 설립해 미비나(Mivina)라는 이름의 라면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경제난에 빠진 우크라이나에서 저렴하게 한끼 식사가 되는 신상품 라면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며 소위 대박을 쳤다.

우크라이나의 라면회사에서 출발

팜은 조국 베트남으로 눈길을 돌리고 2000년 고향으로 돌아온다. 곧바로 혼 트로 관광무역회사(현재 사명 빈펄·VinPearl JSC) 설립을 시작으로 리테일 분야의 빈컴과 빈펄 랜드 놀이공원 등을 설립하며 빠르게 기업 규모와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2007년 빈컴은 호찌민 주식시장에 상장됐고, 이후 의료(Vinmec)와 교육사업(Vinschool)에도 잇달아 진출했다.

2014년에는 빈홈스와 빈마트로 주택사업과 소매업에도 발을 내디뎠다. 베트남 경제가 성장하면서 중산층이 늘어났고, 부동산과 주택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빈그룹은 지역 및 도시개발을 진행하면서 아파트를 짓고, 자체 브랜드인 빈마트와 쇼핑몰, 학교, 병원 등 생활 기반 시설과 서비스 풀 패키지를 자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대형그룹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 사이 테크노컴을 글로벌 식품기업 네슬레에 2009년 1억5000만달러에 매각했다.

팜 회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부동산과 유통보다 기술 기반 비즈니스로 성장하기를 원했다. 2015년 첨단농업을 선보이는 빈에코와 전자제품 판매업체 빈프로를 론칭했다. 그리고 2017년 마침내 자동차와 오토바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빈파와 빈스마트를 설립해 제약 분야와 스마트기기 분야까지 진출했으며 연구개발을 전업으로 하는 빈테크를 출범시켰다. 하노이나 호찌민과 같은 대도시나 박닌성이나 하이퐁과 같은 산업단지, 푸꾸옥과 같은 휴양지 등 베트남 어디를 가던 빈그룹 브랜드를 거치지 않고 지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빈그룹의 계열사 구조 / 고영경 제공

빈그룹의 계열사 구조 / 고영경 제공

빈그룹이 야심 차게 내놓은 빈패스트는 2020년 4분기 매출이 크게 증가해 연간 차량 3만1500대, 그리고 4만5400대의 전기 오토바이 판매고를 기록했다. 빈패스트는 프리미엄 세단과 SUV, 전기 오토바이 부문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빈패스트의 성과는 빈그룹 전체 성과 향상에 기여했다. 2020년 12월 기준으로 빈그룹은 114개의 계열사 및 자회사(해외법인 포함)를 거느리고 있으며 총매출은 137조동(VND), 우리 돈으로 약 7조원이 넘는다. 5년 전인 2016년과 비교해 매출은 2배 이상 증가했고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34.3% 성장했다.

다만 지속적인 투자와 관광 등 섹터의 부진으로 2020년 이익이 2019년 대비 43.1%나 감소했다. 그러나 빈그룹은 설립 이래 두 자릿수 성장률을 꾸준히 유지해오고 있으며 팬데믹 이전까지 영업이익률이나 ROE(자기자본이익률) 등 수익성 지표가 향상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매년 6% 이상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는 베트남시장에서 중산층의 증가와 도시화에 맞는 사업 부문을 적극적으로 공략한 전략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빈패스트 자동차 미국 진출 공식화

빈그룹이 무게중심을 부동산과 유통업에서 첨단산업으로 옮기고 있지만 사업구조 전환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3만대 정도 생산으로 자동차산업이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는 어렵다. 자체 기술 수준도 계속 의문점으로 남아 있다. 스마트폰과 TV 사업은 출시 3년 만인 2021년 5월 생산중단을 선언했다. 빅데이터와 AI 사업은 아직 초기 단계이다. 빈그룹의 매출과 이익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여전히 빈홈즈로 대표되는 부동산개발이다. 지난해 글로벌 사모펀드 KKR과 싱가포르 투자기관 테마섹의 컨소시엄이 빈홈즈의 지분 6%를 6억5500만달러에 인수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베트남시장의 성장성과 부동산 분야의 성장을 확신하면서도, 빈패스트나 빈그룹이 아니라 빈홈즈의 지분을 인수한 것은 리스크와 수익성을 고려한 선택이다. 한국의 SK그룹과 한화가 빈그룹에 투자한 것과는 사뭇 다른 결정이다.

2019년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경제 관련 수행원들이 하이퐁을 다녀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이퐁은 LG와 포스코 등 여러 한국기업의 생산공장과 함께 빈패스트 자동차 공장과 빈에코 농장이 있는 지역이다. 북한 측은 빈패스트의 자동차와 오토바이 생산라인을 집중적으로 시찰했다고 한다. 그만큼 베트남 성장의 상징적 존재가 된 빈그룹이 이제 자국 시장을 넘어 미국 진출을 공식화했다. 빈패스트 자동차를 2022년부터 미국시장에서 판매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베트남의 자존심이 빈패스트의 자동차를 타고 질주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 식당에서 출발해 베트남 부동산 재벌로 성공신화를 쓴 빈그룹 팜 회장이 빈패스트를 첨단산업의 대표주자로 키워내는 역량을 다시 한 번 발휘할 수 있을까. 외부의 시선은 회의적이지만 예상을 깨는 반전 드라마가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다.

<고영경 선웨이 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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