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후보단일화 게임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21대 대선의 예선이 마무리됐다. 이제 대선은 이재명-국민의힘-심상정-안철수의 4자 구도로 정리됐다. 다자구도의 대선에서는 늘 나오는 얘기가 있다. 바로 후보단일화다.

1997년 11월 6일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위해 모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 김대중 전 대통령, 박태준 전 국무총리 (왼쪽부터)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7년 11월 6일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위해 모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 김대중 전 대통령, 박태준 전 국무총리 (왼쪽부터) /경향신문 자료사진

황두영의 책 <후보단일화 게임>은 후보단일화의 유형을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작은 경우의 대등한 후보단일화’와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큰 경우의 양보하는 후보단일화’로 구분한다. 이번 대선의 구도는 2강 2약이니,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진다면 양보하는 단일화가 될 것이다.

황두영에 따르면 대등한 후보단일화에서는 서로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일화 경선의 룰협상이 중요하고, 패배한 쪽에 대한 보상은 중요하지 않다. 양보하는 후보단일화에서는 보상협상이 중요하다. 전자의 사례가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 후자의 사례가 1997년 김대중-김종필 후보단일화다.

후보단일화 후 표심의 이동도 중요한 변수다. 두 후보 간의 이념적 거리가 멀고, 양보한 후보와 그 지지층의 결속이 단단하지 않은 경우에는 후보단일화의 시너지를 기대하기 어렵다.

심상정은 이재명과 단일화할 것인가. 심상정에게는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 2012년 대선 사퇴의 기억이 늘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그러나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는 국민참여당을 포함한 진보대통합 구상의 출발점이었고, 2012년 대선은 통합진보당 분당과 정의당 창당 직후 사실상 대선을 치를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의 사퇴였다. 이번 대선의 조건은 다르다.

정의당과 민주당이 연정, 혹은 지방선거에서 일정한 보상을 매개로 협상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 5년간 정의당이 주장한 진보정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주당은 정의당이 사활을 걸었던 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후 3개월 만에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어 선거제도 개혁을 깔아뭉갰다. 연정을 통해 정책을 관철할 수 있다거나 대선을 접으면 3개월 뒤 지방선거에서 보상받을 것이라는 정도의 신뢰가 정의당과 민주당 사이에는 없다. 양보하는 후보단일화의 성공사례인 DJP연대도 내각제 약속 파기와 자민련의 퇴장으로 끝났다. 심상정이 사퇴하면, 그 지지층은 이재명에게 갈 것인가. 이재명-심상정은 김대중-김종필이 아니다. 이재명 후보는 지방선거 후보를 조정할 만큼 당을 장악하고 있지 못하며, 심상정 후보도 일방적으로 본인의 진퇴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 당원의 압도적 지지를 받지 못했다. 한국사회의 정치적 균열은 과거 독재-민주의 어법을 벗어났고, 문재인 대통령 임기 초에 높은 대통령 지지율을 보였던 정의당 지지층도 이제는 정부여당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안철수는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과 후보단일화를 했다. 무산되긴 했지만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합당 논의도 있었고, 대선 전후로 합당을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국민의당에서 안철수의 지위는 절대적이다. 결국 안철수-국민의힘의 단일화는 안철수의 결단으로 가능하고, 변수는 안철수의 정치적 전망, 그리고 보상 협상의 문제다.

대통령제와 단순다수대표제 선거제도는 양당제를 강제한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제3세력이 등장한 것은 국민의 열망 때문이었다. 후보단일화는 제도와 열망의 절충으로 만들어진 현상이었다. 적어도 거대양당에서 최악의 후보들을 내놓은 이번 대선에서는 열망의 승리를 보고 싶다.

<이기중 서울 관악구 정의당 구의원>

이기중의 복잡미묘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