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46초! 누리호, 도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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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기술 검증한 90% 성공 평가… 재사용 발사체 기술 확보 등 과제 남아

2021년 10월 21일, 누리호 발사를 보러 새벽 무렵 집을 나섰다. 날이 밝자 하늘을 먼저 봤다. 구름이 간간이 깔려 있지만 대체로 맑았다. 로켓 발사는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구름이 많을 경우 상승하는 로켓과 구름의 수증기 입자가 부딪히면서 정전기가 발생할 수 있고, 이는 자칫 폭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발사장이 있는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의 날씨를 경기도의 하늘을 보고 알 리 없건만 괜히 안심됐다.

국내 기술로 설계·제작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10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내 기술로 설계·제작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10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 연합뉴스

고흥에는 정오 무렵 도착했다. 이곳 날씨도 구름이 끼긴 했지만 맑았다. 남쪽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더워 반팔을 입어도 될 정도였다. 고흥 초입에서 어디서 발사 장면을 보면 좋을지 고르느라 잠깐 고민했다. 고흥 팔영대교를 지나면 나오는 적금리 휴게소, 고흥군 영남면 남열리에 있는 고흥우주발사전망대, 바로 인근의 남열해돋이해수욕장 등이 주요 후보지다. 적금리 휴게소는 각도상 누리호가 발사되는 제2발사장이 세곳 중 가장 잘 보인다. 단점은 거리가 멀다. 직선거리로 22㎞떨어져 있다. 산에 약간 가리긴 하지만 거리가 더 가까운 고흥우주발사전망대를 택했다. 제2발사장과 직선으로 약 17.4㎞ 떨어진 곳이다. 바닷가에서 놀면서 기다릴 수 있고, 공간도 넓어 덜 부대끼는 남열해돋이해수욕장으로 가도 좋을 듯했다.

필라멘트 같은 빛이 솟구치다

이날 우주발사대전망대에는 2000명 정도가 모였다. 주차장은 꽉 찼고, 전망대로 이어지는 좁은 도로 한쪽으로도 차들이 줄지어 섰다. 방송사 차량과 단체 견학을 온 학생을 태운 관광버스도 여럿 보였다. 전망대 데크에는 카메라가 삼각대 위에 줄줄이 서 있었다. 외나로도 방향으로는 이미 여럿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1열 관람’은 포기해야 했다. 바로 아래 보이는 해수욕장에도 사람이 제법 있지만 그래도 여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책을 보는 사람도, 햇빛이 강해 우산 그늘에서 휴대전화를 보는 사람도 많았다. 과학책이나 우주 관련 영상을 보는 아이도 여럿 보였다. TBS와 아사히TV 등 일본의 방송사도 취재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우리 기술로 만든 최초의 우주발사체 발사를 직접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흰 마스크에 검은색 매직으로 ‘성공 누리호’를 쓴 김성한씨(40) 가족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부산에서 아침 8시에 출발했다. 김성한씨는 “일곱 살 첫째 아이가 역사적인 순간을 꼭 봐야 한다고 해서 달려왔다. 발사를 기다리는 게 설레고, 꼭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천 시민인 정민경씨(45)는 초등학생·중학생 자녀 셋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차가 막힐까봐 새벽 2시에 출발했다는데 아이들은 피곤한 기색 없이 돗자리 위에 옹기종기 모여 학교 숙제를 하고 있었다. 정씨는 “역사적인 순간을 아이들과 함께 눈으로 목격하고 싶어서 왔다”며 “첫 시도에서 성공할 확률이 30% 정도밖엔 안 된다고 들었는데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상에선 바람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지만 상층의 날씨는 달랐다. 비행 초기에 센 바람이 불면 정확한 궤도로 비행하기 어려울 수 있어 발사 당일 여러차례 고공 대기환경을 점검하는데 이날 상층의 바람이 세 발사 시간이 오후 4시에서 5시로 연기됐다. 한시간 연기되자 조금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지루할 틈 없이 간식거리, 볼거리를 꼼꼼히 챙긴 이들이 부러웠다. 내년 5월 누리호 2차 발사 때 또 찾는다면 휴대용 의자와 보조배터리는 꼭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망원경도 가져왔는데 큰 쓸모는 없었다. 거리가 멀고 발사 후엔 순식간에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에 쫓아가기 어렵다.

발사시각에 가까워질수록 전망대 데크에 사람들이 불어났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이내 외나로도 끄트머리에 있는 발사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섬광이 솟아올랐다. 먼 거리에서 본 로켓은 작은 별처럼 빛났다. 로켓 아래로 내려오는 화염이 백열전구의 필라멘트처럼 보이기도 했다. 발사된 순간 전망대 여기저기서 박수와 함께 “와”, “오” 하는 함성이 터졌다. 발사 후 1분을 전후로 “우르르릉” 하는 소리가 전달됐다. 처음엔 작더니 천둥소리 같이 느껴질 정도로 커졌다. 빛보다 소리의 진동이 현장에 있음을 체감케 했다. 천천히 힘겹게 올라가던 로켓은 가속도가 붙더니 2분도 안 돼 눈으로 좇기 어려울 정도로 작아졌다.

성공했다고 박수치며 내려갔는데…

로켓을 눈으로 본 시간이 짧았던 만큼 자리를 뜨기 아쉬웠다. 사람들은 전망대 대형 모니터 앞에 모여 성공을 자축하며, 방송을 지켜봤다. 곳곳에서 ‘대한민국 만세’라는 말이 나왔다. 대형 우주개발 사업의 성공이 국가적 자존감에 큰 영향을 준다는 걸 새삼 느꼈다. 수학여행을 온 이민우군(장성 중앙초등학교 6학년·12)은 “대한민국도 이렇게 큰 로켓을 발사할 수 있다는 게 대단하고, 자랑스럽다”면서 “우주항공 쪽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 군포에서 온 한 시민은 “처음 봤는데 신기하다. 위성이 궤도에 안착하면 최종 성공이라고 하는데 일단 터지지 않고 무사히 발사된 것만 해도 정말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좋아해 내년 5월 2차 발사 때도 올 생각이라고 전했다.

항공우주연구원에서 일하는 아들을 응원하러온 아버지도 있었다. 동티모르에서 도로건설 공사를 감리하는 컨설턴트로 일하는 안형구씨(63)는 누리호 발사를 보러 1년 10개월 만에 휴가를 내 한국을 찾았다. 딸과 사위, 손녀 등 온 가족과 함께 이곳에 온 안씨는 아들이 항우연에서 발사추적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권유로 항공대에 가고, 공군장교를 거쳐 항우연에 취업까지 한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감격스러운 듯 눈물도 보였다. 그는 “(방금 방송에서) 과기부 차관이 공식적으로 성공 여부를 밝혀줄 줄 알았는데 데이터를 확인해야 한다고 해서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단 발사체가 목표 고도까지 올라간 만큼 성공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이날 곧 발표됐듯이 누리호는 3단 로켓엔진이 예정보다 46초 일찍 꺼지면서 위성 모사체를 궤도에 올려놓는 데는 실패했다. 위성 모사체는 지구 궤도를 돌기 위한 초속 7.5㎞의 속도를 얻지 못해 호주 인근 해상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발사체 운용 능력 등 핵심기술을 검증하면서 90% 이상의 성과를 얻었다. 미완의 성공이지만 9부 능선은 넘은 셈이다. 항우연은 누리호 발사 데이터를 확보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해 내년 5월 2차 발사에 나설 계획이다.

누리호 발사를 보러 온 시민들이 10월 21일 전남 고흥군 우주발사전망대에 모여 있다. / 주영재 기자

누리호 발사를 보러 온 시민들이 10월 21일 전남 고흥군 우주발사전망대에 모여 있다. / 주영재 기자

2030년 달 착륙선 등 우주 도전 계속

발사체 기술은 어느 국가도 알려주지 않는 전략 기술이다. 우주발사체를 자력으로 확보하기 위해 도전과 극복의 험난한 시간을 거쳐야 했다. 한국형발사체 사업 초기에는 액체로켓을 시험할 수 있는 설비가 없어 러시아의 손을 빌렸다. 한영민 항우연 책임연구원(발사체엔진개발부장)은 “설비 구축이 우선돼야 엔진 개발이 가능해 모든 역량을 설비 구축에 집중한 결과 2014년부터 엔진 구성품 시험에 착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누리호의 심장인 75t급 액체엔진 개발과정에서 연소불안정 해결은 가장 큰 난제였다. 연소불안정은 연료 공급이 일시적으로 끊기는 등의 이유로 로켓 엔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상이다. 연소불안정은 중대형 액체엔진 개발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문제로 우주 선진국도 해결 방법을 정립하지 못해 설계변경과 검증 시험을 반복하며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영민 연구원은 “우리 역시 12차례의 설계변경과 20여차례의 시험을 거쳐야 했는데 다행히 이 과정을 상당히 빠르게 극복하면서 일정 지연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75t 엔진 4개를 묶어 단일한 엔진처럼 작동하게 하는 클러스터링 기술이나 가볍고도 견고한 추진제 탱크를 만드는 일도 어려운 과제였다. 이 모든 기술적 난제를 스스로 극복해내면서 발사체 기술의 성숙도를 한층 높일 수 있었다.

누리호는 1차 시험발사로 발사체 검증을 한차례 마쳤다. 비록 마지막 한단계에서 부족함이 있었지만 우주발사체 설계, 제작, 조립, 시험, 발사에 이르는 전 과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성과를 거뒀다. 내년 5월 200㎏의 성능검증위성과 1.3t의 위성모사체를 쏘아 올리는 2차 발사 이후에도 4차례의 발사가 계획돼 있다. 누리호 후속사업인 ‘한국형발사체 고도화 사업’이다. 우리나라가 개발한 위성을 누리호로 발사하면서 우주발사체의 신뢰성을 높이는 과정이다.

한국은 핵심기술인 75t 액체엔진 개발에 성공하면서 우주 개척 시대에 한발 가까이 다가섰다. 독자적인 우주 운송 수단을 확보하면 우주 선진국과의 협업도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우주개발의 기본이 되는 제3차 우주개발진흥기본계획을 보면 한국형발사체를 기반으로 발사서비스 생태계 육성을 추진한다. 소형발사체와 정지궤도위성 발사체 개발로 발사 영역도 확장할 계획이다. 정지궤도 발사체의 경우 2030년대에 개발하는 것으로 계획돼 있다. 누리호의 성능을 개량해 2030년 달 탐사용 발사체로 사용하는 방안도 예비타당성 조사를 앞두고 있다.

남은 주요 과제의 하나로 재사용 발사체 기술 확보가 있다. 뉴스페이스 시대를 여는 선진 우주 기업과 경쟁하려면 발사 비용을 낮추는 재사용 기술이 필요하다. 엔진의 추력을 조절하는 ‘딥 스로틀링(Deep Throttling)’과 재점화 기술이 핵심이다. 재사용 발사체에 사용할 다단 연소사이클 엔진 및 엔진 재점화 기술의 개발은 현재 진행되고 있다. 한영민 연구원은 “재사용 발사체의 핵심기술 로드맵을 정립 중”이라면서 “재사용 발사체 핵심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기술시연체 관련 연구개발을 내년부터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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