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만든‘알리’라는 틀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싫어할 이유가 있을까. ‘빚투 시대’를 풍자한 이야기 구조와 그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인물들의 모습은 매회 공감과 탄식을 자아낸다. 한끗 차이로 생존과 죽음이 갈리는 캐릭터들은 시종 긴장과 이완을 안기며 오락적 쾌감을 더한다. 공개 26일 만에 1억가구 이상 시청해 넷플릭스 역대 최다 시청 기록을 자부했다는 점에선 은근한 ‘국뽕’까지 차오른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그러나 적어도 한 부분에서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오징어게임>의 주요 인물인 이주노동자인 ‘알리 압둘’ 캐릭터 이야기다. 알리 역을 연기한 배우 아누팜 트리파티는 최근 매체 인터뷰에서 “알리의 개성을 고민하며 최대한 덜 클리셰적으로 가려 했다”고 말했다. 아쉽게도 배우의 말과는 정반대로 알리 역은 그간 국내 대중문화가 가장 관습적으로 그려온 이주노동자 모습의 전형이었다.

알리가 애초에 게임판에 참가한 목적도 다른 한국인 참가자와 다르지 않은 ‘돈’이었다. 하지만 게임에 발을 담근 뒤 알리는 생존경쟁으로 인한 불안, 타자에 대한 불신, 상금에 대한 집착 등은 온데간데없고 강인한 체력과 이타적 마음씨만 남은 선한 인물로 그려진다. 과거 임금 체불에 오래 시달렸건만 트라우마나 교훈도 전혀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만나는 사람마다 ‘사장님’이란 호칭으로 계급적 선을 자발적으로 지키고, 누구든 경계심 없이 따르다가 비참한 결말을 맞는다. 인간성을 내세운 한국인 참가자 기훈(이정재 분)은 큰 보상을 받아 사필귀정을 구현하지만 알리의 퇴장은 기껏해야 동정 여론만 남긴다.

그간 국내 영화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주노동자를 욕망이나 이해관계, 개별적 정체성을 제거한 평면적 캐릭터로 다루는 일은 흔했다. 내국인의 목소리에는 찍소리도 못 내는 ‘선한’ 인격의 소유자 혹은 ‘하층민’이나 ‘동정의 대상’으로 이주노동자들은 집단 전체가 정형화했다. 이러한 낭만적 서술은 내국인과의 불평등한 관계나 부조리한 처우를 쉽게 희석하고 만다.

코로나19 이후 크게 재편된 인력 시장만 봐도 <오징어게임> 속 알리 묘사가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졌는지 알 수 있다. 최근 각국의 비행길이 막히고 신규 외국인 인력이 들어오지 못하면서 제조업과 농어업 등에서 인력난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크다. 시장에선 웃돈을 주고서라도 국내 체류 중이던 외국인을 구하려 애를 쓴다. 많은 외국인 노동자는 원하는 임금이나 근로 조건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며 시장 변화에 호응하고 있다.

모든 대중문화가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줄 의무나 윤리적 질문을 던질 필요는 없지만, 업계도 이런 고민을 피할 수만은 없게 됐다. 최근 미국 종합엔터테인먼트 그룹 디즈니 사례가 흥미롭다. 디즈니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론칭하면서 과거 자사가 제작한 작품을 놓고 숱한 회의를 거쳤다고 한다. 일부 작품들은 그간 인종주의, 성차별적 요소가 많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제 와서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빼기도, 그렇다고 예민해진 대중의 감수성을 무시하고 마냥 돈을 벌기도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결국 디즈니는 문제 영화를 공개하면서 영화 도입부에 경고 메시지를 삽입하는 타협안을 만들었다. 오리지널 버전 <덤보>(1941), <정글북>(1967) 등에 삽입된 경고 메시지는 이렇다. “이 작품은 사람이나 문화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내용이 담겼다. 정형화한 이런 묘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잘못됐다.”

<윤지원 경제부 기자 yjw@kyunghyang.com>

꼬다리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