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현동-‘아, 세월이여’ 삶의 주름살이 있는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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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3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곳에 연신내역이 있다. 연신내는 연서천(延曙川)의 옛 지명인데, 행정구역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인근 주민들은 대충 어디가 연신내를 일컫는지 알고 있다. 연신내역을 나와 통일로를 기준으로 동쪽에는 불광동, 남동쪽으로 대조동과 역촌동, 서쪽으로 갈현동이 있다. 북한산을 곁에 두고 있어 굽이굽이 언덕과 고개가 많은데, 칡고개와 박석고개로 이어지는 곳이 갈현동이다.

연신내와 갈현동 일대는 오래된 마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연신내와 갈현동 일대는 오래된 마을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갈현동은 앵봉산 자락 비탈을 따라 꼬불꼬불 복잡한 골목길을 만들고 있다. 역 가까이는 대개 2000년대 이후 새로 지은 말끔한 공동주택들이 보이고, 산비탈로 다가가면 아직도 1970년대 블록집들이 줄지어 있다. 연신내에서 출발한 마을버스는 이 일대 골목을 이리저리 누비다가 앵봉산 중턱쯤에서 마지막 손님을 내려놓는다.

오래된 연립주택이 숲을 이룬 사이로 한뼘 작은 마당을 갖춘 단층집들이 보이고 뜰 대부분에는 감나무가 서 있다. 갈현동의 감들은 대체로 길쭉한 대봉 품종인데 나무마다 가지가 처질 만큼 감이 달려 있다. 산과 가까운 덕인 듯 가을은 평지보다 더 깊게 지나가고 있어 벌써 노랗고 붉게 익은 감들이 낡은 집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다.

단장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 연립주택 외벽은 칠이 벗겨진 채 군데군데 회색 시멘트 속살을 드러냈고, ‘개미연립’이란 이름마저 반쯤은 흐려졌다. 연립주택 마당에 주민 서넛이 앉아 백년초 가시를 다듬어 절구에 찧고 있다. 효소를 담그기 위해 손질 중이라는데 집 고치는 이야기가 한참이다. 연립주택 아래 단층 블록집은 담장을 허물고 전체 보수가 진행되고 있다. 이 동네에서만 40년을 살았다는 노인은 “여긴 집을 고치려면 새로 짓는 수준으로 손을 봐야 해서 어지간하면 엄두를 못 낸다. 저 집은 팔려서 손보고 있다. 우리야 대충 살다 가면 그만이다”고 했다. 말은 덤덤히 했지만 쓸쓸함이 묻은 것은 가을 탓이다.

재개발도 갭투자도 “글쎄올시다”

골목 곳곳 전봇대엔 부동산이 붙여놓은 매물 호가 표시가 있다. ‘28평 연립 9000만원’ 요즘의 부동산 시세를 생각하면 저런 집은 어떤 곳일까 궁금해진다. 아마도 미끼로 붙여놓은 가격이겠지만, 산 아래 갈현동 골목의 오래된 주택과 연립들은 가격이 바닥이라고 한다. 골목 입구 부동산 업자는 “여긴 주차하기가 어려워 젊은 사람들은 잘 안 오려고 한다. 노인들은 마을버스 타고 버스정류소나 지하철역까지 나다니지만, 골목길도 가파르고 멀어 그다지 인기가 없다”라고 한다. 그나마 재개발을 기대하고 있는데 언제 될지는 하늘만 안다고 이야기한다. 역에서 멀어 갭투자를 하는 이들도 별로 없다는 설명이다.

마을로 올라가는 어귀에 있던 갈현시장은 오래전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에 주상복합건물이 올라갔고, 1층에 마트가 생겨 시장을 대신하고 있다. 마트 옆 과일가게 주인은 “여기 순댓국집이 있었는데, 서울 시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맛있었다. 그 집이 사라진 게 제일 아쉽다”라고 한다. 누군가는 사라진 전통시장보다 국밥집이 더 아쉽다.

앵봉산 아랫마을을 지도로 보면 나름 집들이 규칙적으로 질서를 갖춰 들어선 것 같았으나, 실제로 골목을 걸어보면 걷잡을 수 없이 헤매게 된다. 골목 입구에는 ‘돌아가는 길 없음’ 또는 ‘화물차 못 다님’ 같은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어쩌다 보면 막다른 골목과 만나게 되고, 길은 주택가를 끼고 빙 돌아와 제자리로 되돌아올 때도 있다.

갈현동 골목의 주인은 아직도 건강한 노년층이다.

갈현동 골목의 주인은 아직도 건강한 노년층이다.

어느 골목 어귀에 이발소와 미용실이 함께 붙어 있다. 이발소 주인은 “여기 왔을 때가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30년은 더 된 것 같다. 미용실은 중간에 주인이 더러 바뀌었는데 나는 오가도 못 한다”라고 한탄한다. 이발소가 자기 집이라 그럭저럭 밥만 먹고살면 되니 다행이란다. 이 골목은 코로나19 팬데믹 불황보다 오랜 정체와 제자리에서 낡아가는 우울함이 더 크게 쌓여 있다. 긴 세월 변하지 않은 흔적은 큰길로 나와서야 사라진다.

박석고개 직전 종합병원이 있던 자리는 장례식장으로 바뀌었다. 그 뒤편 남쪽으로 난 길이 갈현로인데 이곳은 또 다른 분위기가 있다. 주변에 초·중·고등학교가 여럿 있는 덕분에 길 양편으로 온통 태권도학원과 보습학원, 음악학원과 미술학원, 학업별 학원들, 스터디카페에 심지어 줄넘기 교육원도 있다. 학교가 있어 요즘 보기 드문 동네서점도 제법 규모가 크다. 자식의 미래에 대한 부모의 기대 덕에 학원은 번창하고 있다.

갈현동은 앵봉산 아래 비탈에 의지해 있다.

갈현동은 앵봉산 아래 비탈에 의지해 있다.

먹자골목 점령한 등산복 부대

갈현로 남쪽과 동쪽이 흔히 말하는 연신내 상가지대인데, 이곳 골목은 화려하지는 않아도 다양하고 활발하다. 큰길 주변은 대부분 3·4층의 건물이 올라가 상가로 쓰이고 있고, 뒷길 쪽은 다가구 주택이 들어서 있다. 업종은 겹치는 일 없이 다양한데 가게마다 골목골목 자기 영역을 차지하며 손님을 맞고 있다.

갈현동 골목길들이 연신내쯤 가면 서울 서북부에서 가장 번화한 골목이 나온다. 어디에나 있는 로데오거리 먹자골목인데, 연신내는 본디부터 유흥가로 이름을 날리던 곳이다. 예전 방위병 제도가 있을 때 경기도 송추 인근 군부대에서 근무하던 방위병들이 퇴근 무렵 집결하는 곳이 주로 연신내였다. 자연스레 그들을 상대하던 유흥업소들이 밀집해 있었으나 지금은 자취가 사라져 버렸다. 대신 젊은이를 상대하는 술집과 갖가지 식당들이 들어섰다.

갈현동은 여러 학교와 학원들이 몰려 있다.

갈현동은 여러 학교와 학원들이 몰려 있다.

유흥가에 불어닥친 팬데믹 사태의 여파는 이곳이라고 피해가지 못해 곳곳에 문을 닫은 가게들이 보였고, ‘권리금 없음’을 강조한 매장도 여럿 있다. 얼마나 더 불황의 시간을 견뎌야 할지 문을 연 가게들도 대책이 없어보인다. 맥줏집 주인에게 상황을 묻자 텅 빈 가게를 가리키며 “영업장 폐쇄 명령에다가 영업시간 제한에 손님들의 불안 심리까지 겹쳐 도저히 답이 없다. 지금까지는 버텼는데 권리금은 엄두도 못 내고 건물 보증금은 이미 밀린 집세에 다 사라질 지경이다”라고 답한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자 골목 안 식당과 주점을 기웃거리는 무리가 눈에 띈다. 배낭에 등산복을 차려입은 중장년 남녀들이 서넛씩 골목을 누비고 있다. 북한산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 뒤풀이하는 이들이다. 요즘 연신내 먹자골목에서 가장 반가운 손님은 바로 이들이란다. 밥과 안주에 술까지 곁들이는데다 인원도 여럿이라 씀씀이가 크다고 한다. 이들은 대개 연신내에서 술과 요기를 하고 지하철을 타고 자기가 온 곳으로 흩어져 돌아간다.

연서시장은 상점 보다 푸드코트가 주역이 됐다.

연서시장은 상점 보다 푸드코트가 주역이 됐다.

연신내 먹자골목에서 통일로를 건너면 이 근방에서 가장 오래된 연서시장이 있다. 시장은 멀쩡히 살아 있으나 예전처럼 없는 것 없이 갖춘 장터의 기능보다 술과 안주를 파는 먹거리 코너가 더 붐빈다. 여기도 여지없이 등산복 부대가 점령해 산낙지며 문어숙회, 또는 해물파전을 곁들여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남녀가 합석한 자리는 동성의 일행이 있는 곳보다 더 목청이 높고 시끄럽다. 행주로 테이블을 닦던 주모는 “부부가 등산 갔다 들르는 경우는 열에 하나나 있을까. 남남끼리 산에서 눈 맞고 손잡고 그러는 게 사는 재미 아니겠나?” 하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이미 머리가 세어버린 백발의 장년들은 요즘 살기가 어렵다느니, 재미가 없다느니 푸념을 하고 일행은 모두 “맞아, 맞아” 하며 맞장구를 친다. 그래도 산이라도 타며 소일거리를 하는 것은 아직 건강하고 여유가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연서시장 주변은 온통 쇼핑센터와 상점가로 번화한데 세월의 골은 이곳도 비껴가지 않고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상인들 말은 사람은 많으나 매상은 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구파발 넘어 들어선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으로 몰리고 연신내 주변 상권은 급격히 시들어버렸다. 시장은 아니지만 전철역 출입구 인근과 횡단보도 근처에는 갖가지 푸성귀며 반찬거리를 길바닥에 놓고 파는 노점도 줄지어 있다. 귀갓길에 문득 생각나 감자 한바구니나 파 한단 사가는 곳일 텐데 행인들은 그다지 눈길조차 주지 않고 바쁘게 걷고 있다.

“작은 밑천으로 살아보려는 사람들”

연신내 일대에는 큰길 뒤편 골목에 주상복합건물이나 오피스텔 건축이 유행했다. 지하철역이 있어 교통에 유리하고 학교가 많아 교육환경도 나쁘지 않다. 게다가 북한산이 지척이니 자연환경과 경관도 좋은 편이다. 아파트가 들어설 만한 곳은 진작 단지들이 들어섰고, 박석고개 넘어 구파발과 진관동 일대에 뉴타운이 들어서면서 서울 서북부의 주택 사정을 크게 바꿔놓았다. 마치 연신내와 갈현동만을 빼놓고 세상은 새로워진 듯하다. 연신내 토박이들의 불만은 “가뜩이나 밀리는 통일로가 이제는 하루종일 기어다니는 길이 됐다”는 것이다. 지하철이 있지만 시내로 접근하는 주도로는 통일로가 유일한데 길은 그대로이고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차량 통행량은 통제불능으로 늘었다. 환경에 비해 서울 서북권의 인기가 크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어보인다.

오후 무렵 연신내 일대는 북한산 등산객들의 무대가 된다.

오후 무렵 연신내 일대는 북한산 등산객들의 무대가 된다.

연신내 일대에는 학교가 많다. 골목 안 요지에는 여지없이 교회가 몸집 크게 터를 잡고 있다. 산 아래에는 절도 나름 흩어져 있고, 성당이며 무당집도 눈에 띈다. 학원이며 체육관도 다른 곳보다 밀도 높게 자리 잡고 있다. 그 사이를 걷다 보면 우리 시대 서민들의 화두가 무엇인가를 엿볼 수 있다. 재개발과 부동산, 교육과 종교의 존재가 크게 눈에 띈다. 집값이 올라 노동으로 얻지 못할 부를 꿈꾸며, 자식이 나보다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교육을 위해 돈을 쏟아붓는다. 신과 부처를 찾아 마음속 아픔을 달래려는 바람도 있을 것이다. 연신내와 갈현동 골목길에는 무심히 걸어도 눈에 띌 만큼 이 불안한 시대의 모습이 겹쳐 있다.

갈현동 비탈길에서 만난 노인은 이 동네에 어떤 사람들이 사느냐고 묻자 “그냥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오갈 데 없이 세월을 보낸 나 같은 늙은이들이나, 아니면 작은 밑천으로 세상에서 한번 살아보려고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답했다. 의외의 대답이었으나, 골목을 둘러보니 수긍이 간다. 누구나 가족을 지킬 담장이라도 쌓고 지낼 곳이 있기를 바랄 것인데, 갈현동은 그래도 작은 밑천으로 터전 삼을 수 있는 이 도시의 몇 남지 않은 곳이라 생각한다. 이 골목에서 익어가는 대봉감처럼 모두가 곱고 풍요롭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갈현동 골목은 함께 늙어버려 얼굴만 봐도 속내를 알 수 있는 오래된 벗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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