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탈레반

(5)테러하던 총, 테러를 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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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에이드가 모스크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이 모스크는 대규모 이슬람 신학교(마드레사)를 가지고 있어 탈레반에게 명망이 높다. 그날 폭발이 일어났을 당시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과도정부 대변인 어머니의 추도식이 진행되던 중이었다. 추도식이 진행되는 가운데 모스크 입구 쪽에서 폭발이 발생해 추도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카리 호스티 탈레반 과도정부 내무부 대변인은 “이번 공격은 급조 폭발물에 의한 것”이라며 “민간인 5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소 12명이 사망하고 32명이 부상했으며 부상자들 대부분이 심하게 다쳐 사망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로이터통신도 이번 폭발이 “미군 철수 이후 카불에서 발생한 가장 심각한 공격”이라고 전했다. 이 공격의 배후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탈레반의 숙적인 이슬람국가-호라산(이하 IS-K)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대원들이 지난 9월 3일(현지시간) 카불 시내에서 발생한 폭발물 테러 현장을 지키고 있다. / 카불 신화=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대원들이 지난 9월 3일(현지시간) 카불 시내에서 발생한 폭발물 테러 현장을 지키고 있다. / 카불 신화=연합뉴스

이 폭탄테러는 현 탈레반 과도정부의 핵심인사인 자비훌라 대변인의 가족을 노렸다는 점에서 탈레반이 대로했다. 탈레반은 사건 뒤 불과 몇시간 지나지 않아 카불 시내에서 대규모 IS 소탕작전을 벌였다. 이는 지난 8월 미군 철수 이후 처음 벌어진 탈레반의 대규모 군사작전이었다. 이 작전으로 카불 시내 곳곳의 건물이 무너지고 건물 벽에는 총탄 흔적이 가득했다. 그날 밤 탈레반 과도정부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IS-K의 카불 은신처를 습격했다고 밝혔다. 이어 모스크 폭탄사고의 당사자인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SNS를 통해 “성공적인 작전의 결과로 IS 은신처가 완전히 파괴됐다”며 승리를 자축했다.

‘상극’ IS-탈레반 “우리가 정통파” IS-K는 이슬람국가의 아프간 지부를 말한다. 이들의 근거지가 동부 호라산(Khorasan)이라 이를 따서 IS-K로 명명됐다. 이들은 IS가 시리아에서 부흥할 당시인 2014년부터 아프간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아프간 토종 무장조직인 탈레반과 상극 관계였다. IS-K는 탈레반보다 훨씬 엄격한 이슬람 율법 해석을 고수한다. 그래서 미국과 철군 평화협상에 임한 탈레반을 ‘배신자’로 규정하고 온건파라고 비난한다. 시리아에서는 이미 퇴각한 IS지만 아프간에 들어와서는 젊은 전사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IS는 아프간에서 최신 무장세력임을 표방하며 탈레반보다 경전을 더 원리적으로 해석하므로 자신들이 가장 정통임을 내세우고 있다. 현재 지하드(이슬람 종교를 위한 무장투쟁- 신을 위한 전쟁)를 표방하는 무장세력 중에 가장 폭력적이다.

아프가니스탄 ‘교사의 날’인 지난 9월 5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의 한 사립학교에서 교사 등 행사 참석자들이 팻말을 들고 여성의 권리와 교육 평등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카불 A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교사의 날’인 지난 9월 5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의 한 사립학교에서 교사 등 행사 참석자들이 팻말을 들고 여성의 권리와 교육 평등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카불 AP=연합뉴스

한국 시각에는 IS와 탈레반은 같은 이슬람 수니파에다 똑같이 급진 무장 조직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서로 자신들이 정통파 이슬람세력이라고 싸운다. 지난 8월 26일, 미군의 철군으로 한창 아수라장이 됐던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입구에서 폭탄테러를 일으켜 미군 13명과 탈레반 병사 수십명을 포함해 180여명의 사망자를 낸 주범이 바로 IS-K이다. 지금 카불과 아프간 곳곳의 중소 도시에 탈레반과 IS-K의 격전이 한창이다. 날마다 IS와의 전쟁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탈레반이 IS-K의 핵심 근거지인 낭가르하르주 주도 잘랄라바드시에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지난 9월 18일 잘랄라바드에서는 탈레반 차량을 공격한 폭탄테러가 일어나 3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쳤다. 그다음 날인 19일에는 버스정류장을 공격해 민간인 2명이 숨지고 탈레반 대원이 다쳤다. 이처럼 잘랄라바드시에서 연쇄 테러가 발생하자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탈레반 측의 고육책이 통행금지령이다. 현재 잘랄라바드에서 이동하는 모든 차량은 허가받은 서류를 제시해야 하고, 불가피하게 외출해야 하는 주민은 탈레반에 미리 통보해야 한다. 잘랄라바드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샤히드씨는 “탈레반이 찾아와 IS 대원처럼 보이는 사람은 신고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갔다. 현재 호텔에는 아무도 없다. 탈레반이 와서 문제를 만들지도 모르고 IS가 와서 폭탄테러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투숙객을 받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대테러’ 동반자 된 미국과 탈레반 IS의 폭탄테러가 계속되자 탈레반은 이른바 ‘테러단체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IS와 전투에 돌입했다. IS는 자신들이 18일과 19일 잘랄라바드 테러를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을 들은 탈레반 과도정부는 곧바로 잘랄라바드에서 ‘대테러작전’에 들어갔다. 과거 자살폭탄과 기습 테러를 일삼던 어제의 탈레반이 이제는 대테러작전을 수행하는 아이러니한 광경이다. 하지만 지난 9월 22일에도 총을 든 괴한들이 삼륜차를 타고 잘랄라바드시 검문소를 습격해 탈레반 대원 2명과 행인 1명을 살해했다. 또 25일에는 잘랄라바드 시내에서 탈레반 차량이 지나갈 때 폭발이 일어나 1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탈레반은 잘랄라바드를 샅샅이 수색하며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IS는 숨바꼭질하듯이 테러를 계속 일으키고 있다.

IS는 잘랄라바드뿐만 아니라 IS의 주요 활동 무대인 낭가르하르주 곳곳에서 급조 폭발물을 이용해 탈레반을 공격하고 있다. 현재 과도정부를 구성해 3차 내각까지 발표하며 정부 세우기에 급급한 탈레반이지만 IS-K라는 테러단체에 발목이 잡혀 ‘테러와의 전쟁’에 뛰어들었다. 미국은 탈레반을 지원하고 있다. 아프간 카불공항에서 IS-K가 자살 폭탄테러를 일으키자 다음날인 8월 27일, 미 중부사령부는 아프간 낭가르하르에서 IS-K 대원에 대해 무인 드론 공격을 가했다. 이 공습으로 공격을 받은 IS-K 대원 1명이 사망했다. IS 입장에서는 탈레반과 미국이 합동으로 자신들을 공격한 셈이 됐다. 탈레반과 미국은 아프간전쟁의 숙적이었다. 적의 적은 동지라고 이 과거를 뒤로 한 채 이들은 ‘대테러전쟁’의 동반자가 된 상황이다.

아프가니스탄 무장 조직 탈레반 대원들이 지난 9월 4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의 압둘 라흐만 모스크에서 소총을 앞에 두고 기도를 드리고 있다. / 카불 신화=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무장 조직 탈레반 대원들이 지난 9월 4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의 압둘 라흐만 모스크에서 소총을 앞에 두고 기도를 드리고 있다. / 카불 신화=연합뉴스

IS는 탈레반이 세속적이며 미국과 협조하는 서방의 앞잡이라고 비난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탈레반은 결코 세속적이지 않다. 탈레반 과도정부 내각에는 아직 여성인사가 전혀 없으며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 아프간의 최고 명문 대학인 카불대학교 총장도 탈레반 성직자로 바뀌었다. 음악가나 배우 등 예능인들에게는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심지어는 이발사들의 영업을 강제적으로 막아 탈레반식 턱수염을 기르도록 지시하고 있다. 이 정도만 돼도 탈레반은 충분히 극단적인 이슬람 조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IS-K는 이것도 세속적이라고 비난하고 있으니 그들은 더 극단적이라고 봐야 한다.

카불에 드리워진 가난의 그림자 탈레반과 IS-K의 갈등은 아프간 시민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1990년 소련군이 퇴각하고 1996년 탈레반이 정권을 잡기 전, 5년간 아프간은 내전의 소용돌이를 겪었다. 당시 내전은 아프간 국토 내 대부분 건물이 파괴됐다고 할 정도로 심각했다. 기자가 아프간 사람들에게 탈레반 시절의 내전에 대해 물어보면 “소련군이 나간 직후가 제일 심각했다”고 말한다. 지금 탈레반과 IS-K와의 전쟁이 과거 소련군이 퇴각한 이후와 비슷하다. 이번에 탈레반과 IS-K 간 벌어진 카불 전투는 적어도 5시간 이상 곳곳에서 이어졌다. 한 나라의 수도가 전투 현장이 됐음을 본 아프간 시민은 그 공포가 시작됐음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카불 시민 하미윤씨는 “총소리와 폭발음을 카불 전역에서 들을 수 있었다. 카불에서도 비교적 부유한 지역에 사는 내 집에도 총알이 날아와 2층 발코니가 총알 자국으로 초토화됐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지하실에 숨어 있었고, 우리는 이 공포의 시간이 막 시작됐음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미군이 철군하고 가장 걱정했던 탈레반의 보복보다 탈레반과 IS-K와의 전투로 벌어진 이 아수라장과 가난이 사실상 아프간 시민을 난민으로 내몰고 있다. 탈레반이 장악한 지 두달여 동안 아프간에는 극심한 생활고가 닥쳤다. 세계식량계획(WFP)은 현재 아프간 국민의 93%가 충분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으며 기아 위기에 직면했다고 발표했다. 탈레반이 재집권한 8월 15일부터 탈레반 재집권 후 아프간을 향한 대부분의 원조가 중단됐다. 지난달 미국과 독일 등 국제사회가 아프간에 10억달러(약 1조1800억원)를 지원하기로 약속했지만, 탈레반 과도정부가 국제사회의 기준만큼의 내각을 형성하지 못하자 이것도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미국 등에 예치된 90억달러(약 10조6400억원) 규모의 아프간 중앙은행 외환보유고는 이미 동결된 상태다. 쉽게 말해 국제원조는 입금 전이고 탈레반 과도정부는 빈털터리다.

사이먼 개스 아프가니스탄 과도기 담당 영국 총리 특보 일행(왼쪽)이 지난 9월 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대통령궁에서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 부총리(가운데)를 만나고 있다. / 카불 AP=연합뉴스

사이먼 개스 아프가니스탄 과도기 담당 영국 총리 특보 일행(왼쪽)이 지난 9월 5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대통령궁에서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 부총리(가운데)를 만나고 있다. / 카불 AP=연합뉴스

탈레반이 기댈 곳은 국제사회뿐 탈레반 점령 이후 수도 카불만 하더라도 굶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사람들은 집안 가재도구 등 돈 되는 물건을 죄다 들고나와 카불 시내에 난데없이 중고마켓이 여기저기 생겼다. 카불 시민인 오마르씨는 “9월에 월급을 받은 아프간 시민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 식량을 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현금화할 수밖에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려는 사람보다는 파는 사람들이 더 많아 정작 손에 쥐는 현금은 너무 적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에 빵 하나 사는 것도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아프간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전기’다. 겨울을 앞두고 수도 카불 등 전국이 블랙아웃에 빠질 것이라는 공포가 지배하고 있다. 아프간은 전기를 중앙아시아 국가에서 수입한다. 그런데 탈레반 정부는 전기료를 낼 돈이 없다. 아프간에 있는 발전기들도 작동이 안 된다. 발전기를 돌리는 연료는 이란에서 싸게 수입하는 저질의 기름이었는데 이게 문제가 돼 발전기들이 멈추거나 고장나 버렸다. 과거 미군이 주둔할 때처럼 고급 연료를 쓰거나 고장 나면 바로 신형 발전기로 교체할 수 없다.

탈레반은 이 전력난을 타개할 능력이 전혀 없다. 국내에서 시민에게 전기요금을 받는 것조차 쉽지 않다. 당장 빵 하나 사기 힘든 시민에게 전기요금을 더 내라고 한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지난 8월 15일 이후 탈레반이 한달간 시민에게 징수한 전기요금은 890만달러(약 105억원)로 이전보다 74% 줄었다. 그나마 10월에는 여기에도 미치지 못한다. 탈레반 과도정부가 기댈 곳은 국제사회 기부자들밖에 없다. 이들이 아프간의 전기요금 연체금이나 국민의 전기요금을 갚아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탈레반 과도정부가 빨리 합법정부로 인정받으려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합법정부가 돼야 원조를 받을 수 있고, 경제난을 타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탈레반의 발목을 IS-K가 각종 테러로 잡고 있다. 탈레반으로서는 합법정부가 되기 위한 첫 번째 단계가 바로 IS-K에 대한 대테러전쟁이다. 어제의 테러단체가 오늘의 대테러작전의 선두에 서는 국제사회의 음영이 아닐 수 없다.

<김영미 다큐엔드뉴스 코리아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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