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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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는 5년 안에 끝난다.”

2013년 국내 현직 최고경영자(CEO)의 47%는 이렇게 내다봤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펴낸 ‘신한류, 지속발전을 위한 6대 제언’ 보고서에 들어 있는 내용입니다. CEO들은 한류가 아이돌 가수 일변도여서 저변이 좁고, 반한류 움직임이 있고, 유사한 드라마가 양산되고 외국이 쉽게 모방할 수 있어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당시는 싸이가 ‘강남스타일’을 터뜨릴 때였습니다.

[편집실에서]민주주의는 밥이다

8년이 지난 2021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세계 70여개국의 안방을 뒤집어놨습니다. CNN은 “정말 끝내준다”며 극찬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뽑기, 쪽자 등으로도 불린 달고나의 제작키트가 세계 최고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아마존에 등장했습니다. 앞서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차트를 석권했고, 영화 <기생충>은 오스카를 휩쓸었습니다. 몇해 전이라면 말도 안 되는 소설이라고 했을 일들이 ‘리얼’이 됐습니다.

요즘은 한류라는 말도 잘 안 씁니다. 아예 K팝, K드라마, K웹툰, K콘텐츠, K푸드 등으로 부릅니다. 각 장르에서 ‘K’의 약진이 두드러진다는 뜻일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K컬처’라고도 부르더군요.

사실 K컬처는 내 안의 비관론과의 싸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00년대 초반 드라마 <겨울연가>와 <대장금> 열풍이 불자 ‘곧 꺼지겠지’ 했습니다. 2010년대 초반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가 동남아를 휩쓸 때도 ‘저러다가 말겠지’ 했습니다. 이해는 됩니다. 1990년대 중반을 풍미했던 홍콩영화도, 2000년대 초반을 달구었던 일본영화도 지금은 형체가 없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K컬처는 오히려 기세가 뜨겁습니다. 도대체 뭐가 다른 것일까요?

지난해 미국 연수 중에 중국인 친구와 함께 영화 <기생충>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영화 어땠냐”는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잘 만들었네”라는 답을 기대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말했습니다. “중국에서는 나올 수 없는 영화야. 이렇게 사회비판적인 영화는.” 그 답변,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최근 성공한 K컬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징어게임>, <킹덤>, <D.P.> 등은 자본주의가 잉태한 불평등과 권위주의가 만든 권력의 부조리함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풍자합니다. 방탄소년단의 노래는 이런 시대를 사는 청년들의 아픔을 대변합니다. K컬처는 그저 흥겹거나, 재미있는 소비상품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고민하고 위로하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는 너무 당연하지만, 사회를 마음껏 비판할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켜낸 표현의 자유가 우리의 경쟁력이 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잘 키워나가는 이유, 또 하나가 생겼습니다. 민주주의는 밥입니다.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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