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24년 대선 출마설’ 군불 때는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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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판도 독주 체제 ‘고정’ 노리나

미국의 차기 대통령 선거일은 2024년 11월 5일이다. 다음 대선까지 남은 날짜를 세는 것보다 지난 1월 20일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재임 기간을 세는 게 훨씬 빠르다. 평소라면 차기 대권주자에 관해 얘기하는 게 너무 이를 것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있는 한 얘기가 달라진다. 현대 미국 정치에서 유래 없는 상식 파괴의 정치를 구사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기존 미국 정치의 문법을 벗어난 ‘아웃 라이어’로 군림하고 있다. 다음 미국 대선까지 3년 이상 남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출마 가능성에 군불을 지피며 한동안 떠났던 여론의 관심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9월 25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페리에서 열린 대규모 지지자 집회에 입장하면서 군중들을 향해 주먹 쥔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 페리|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9월 25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페리에서 열린 대규모 지지자 집회에 입장하면서 군중들을 향해 주먹 쥔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 페리|AP연합뉴스

강력한 공화당·보수 진영 제지

최근 미국 정치권과 언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차기 대선 출마 관련 설왕설래가 많아진 것은 트럼프 전 대통령 본인과 측근들의 발언이 발단을 제공했다. 2016년과 2020년 트럼프 대선 캠프에서 각각 수석 대변인과 선임고문을 맡았던 제이슨 밀러는 9월 초 한 인터넷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4년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로 언급했다. 밀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출마 가능성을 “99%와 100% 사이 어디쯤”이라고 말했다. 미 의회에서 가장 강력한 트럼프 충성파로 분류되는 짐 조던 공화당 하원의원도 비슷한 시기에 한 기자에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출마할 것이며 조만간 출마 선언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 스스로도 출마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그는 9월 25일 조지아주에서 대규모 지지자 집회를 열어 “우리는 2020년을 잊지 않는다”면서 “미국 역사상 가장 부패한 선거를 2024년 11월 훨씬 영광스러운 승리가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패배한 2020년 선거를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2024년 대선에서 빼앗긴 승리를 되찾아 오겠다는 주장인 것이다. 그는 10월 9일 미국에서 대선후보 경선을 가장 먼저 실시하기 때문에 ‘대선의 풍향계’라는 평가를 받는 아이오와주에서도 정치 집회를 열 예정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미 공화당 및 보수 진영의 지지는 여전히 강고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기대 효과 더불어 전임자와 대비되는 스타일로 안정적인 지지율을 누리다가 아프간 철군 사태, 코로나19 재확산 등으로 삐끗한 것도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선 호재다. 에머슨대는 9월 초 진행한 전국단위 여론조사 항목 중 2024년 대선 가상 양자 대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47%, 바이든 대통령이 46%의 지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2024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구도는 트럼프 독주 체제다. 에머슨대 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의 67%가 공화당의 차기 대선후보 경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투표하겠다고 밝혔다. 하버드대 미국정치연구소와 여론조사기관 해리스폴이 9월 중순 실시한 조사에선 공화당 지지자의 58%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화당의 차기 대선후보로 꼽았다. 공화당의 다른 잠재적 대권주자들은 10% 미만의 미미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내일 공화당 대선후보를 뽑기 위한 경선이 열린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은 떼어 놓은 당상이다.

대선 ‘3년 레이스’ 현실화될까?

미국에선 주요 대권주자들이 현직 대통령의 임기 중반에 실시되는 중간선거 이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것이 관례다. 일찍 대권 도전 선언을 할수록 일찍부터 주목을 받을 순 있겠지만 그만큼 언론의 검증과 다른 잠재적 대권주자들의 견제가 높아지고 행동의 제약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대선 조직을 일찍 가동할수록 필요한 정치자금의 양도 늘어난다.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현 시점에서 2024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면 3년이 넘는 초장기 레이스를 펼쳐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9월 25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페리에서 열린 정치 집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연설을 귀담아 듣고 있다. / 페리|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9월 25일(현지시간) 조지아주 페리에서 열린 정치 집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연설을 귀담아 듣고 있다. / 페리|AP연합뉴스

그럼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조기에 공식화하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하는 배경에 대해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차기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판도를 일찌감치 고정시키려는 의도가 먼저 꼽힌다. 공화당에선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 등 트럼프 행정부 인사, 론 드샌티스(플로리다)·크리스티 놈(사우스다코타)·래리 호건(메릴랜드) 등 주지사 그룹, 톰 코튼·테드 크루즈·마코 루비오 등 상원의원 그룹 등이 잠재적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공화당 지지자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 출마 가능성을 풍길수록 다른 주자들이 설 자리는 좁아들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2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에 대한 장악력 극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지율이 높을뿐 아니라 지난해 말 대선사기 주장을 펼치면서 지지자들로부터 거뒀으나 쓰지 않고 축적해둔 막대한 후원금을 보유하고 있다. 마음에 드는 공화당 후보들을 지원할 ‘실탄’이 풍부한 것이다. 내년 중간선거 출마를 준비 중인 공화당 정치인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를 순례하듯 앞다퉈 방문하고 있다. 중간선거에서 연방 하원과 상원 다수당 지위 회복을 노리고 있는 공화당 지도부로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얻어지는 ‘붐 업’ 효과가 싫지 않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서 퇴출당해 지지자들과 소통할 개인 채널을 상실한 상황에서 조기 출마 선언은 미디어의 관심을 제고하는 효과도 낳는다. 뉴욕 검찰의 트럼프재단 탈세 의혹 수사 등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한 각종 수사를 차기 대권주자에 대한 정치적 탄압 프레임으로 포장해 반격할 수 있는 기회도 열린다.

무성한 관측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실제로 2024년 대선에 출마할지, 한다면 공식 출마 선언을 언제 할 것인지는 오롯이 트럼프 전 대통령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는 2011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의 재선을 저지하겠다며 대선에 출마할 것처럼 말했다가 불출마한 전력도 있다. 미국 언론은 이번엔 ‘안전하게’ 그의 출마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미국 언론은 2015년 그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 정도로 치부하고, 2016년 대선 본선에서는 그의 승리를 전혀 예측하지 못해 큰 수모를 당한 경험이 있다. 필립 범프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트럼프 전 대통령 출마 가능성을 짚은 기사에서 “만약 당신이 그의 불출마를 확신한다면 2015년부터 관심을 기울여 왔냐고 다시 묻고 싶다”고 밝혔다.

<김재중 워싱턴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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