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한국의 과학기술 ‘쇄국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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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사망률 저하와 중증예방에 효과가 있는 백신이 개발됐지만, 델타 변이 등장과 향후 등장할 새로운 변이바이러스로 인해 방역에 새로운 도전과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백신 음모론이나 정치적 신념 등의 이유로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일이야 각 국가가 행정체제 안에서 풀어야 할 사안이지만, 변이바이러스의 등장은 국제적 공조와 과학기술정보의 공유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가 변이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유전체 염기서열정보 공유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한 이유다.

유전자 DNA 염기서열 이미지 / 경향신문 자료사진

유전자 DNA 염기서열 이미지 / 경향신문 자료사진

코로나19 이후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 세계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과 동향을 페이스북을 통해 리포트 중인 과학자 김태형 테라젠이텍스 바이오연구소 상무는 유전체학자다. 그는 특히 코로나19 변이바이러스의 확산에 관한 정보를 탁월하게 분석해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는데, 그가 항상 글에서 아쉽게 생각하는 지점이 바로 한국의 유전체 정보 쇄국정책이다. 그에 따르면 향후 의·생명 산업의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유전체 정보의 수집과 분석 그리고 이를 공유하는 플랫폼 구축에 있어 유럽과 미국은 ‘대항해시대’라는 철학을, 한국은 ‘쇄국정책’이라는 철학을 고수하고 있다.

국내 유전체 산업 ‘쇄국의 길’ 걷나

2019년 네이처 유전학 리뷰에는 유럽 21개국의 연구자들이 모여 100만명의 유전체 데이터를 생산하고, 이를 2022년까지 완전 공개한다는 로드맵이 출판됐는데, 이는 해당 논문 직전 미국이 발표한 ‘All-of-Us’라는 100만명 유전체 정보 프로젝트에 맞서기 위한 계획이다. 김 상무에 따르면, 현재 미국과 유럽의 의·생명 산업계에선 유전체 데이터를 생산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생산한 데이터를 연구자들에게 공개하고 공유함으로써 발생하는 가치의 극대화에 더 큰 목표를 두고 있다. 유럽과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중국이나 한국 역시 정부 주도로 엄청난 돈을 투자해 유전체 정보를 모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국 내에만 머무르게 될 그 정보의 가치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여러 법적 규제를 문제 삼으며 유전체 정보를 절대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유전체 정보는 시간이 지나면 거의 쓸모 없어지는 연구데이터다. 유전체가 중요하다니까 지방정부까지 엄청난 세금을 들여 유전체 염기서열정보를 만들어냈지만, 관료의 한계는 거기까지다. 이 데이터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연구현장과 산업현장에 있는 전문가들인데, 한국의 정책관료들은 현장 과학기술자들과 대화하는 방법 자체를 배우려 하지 않는다. 현장과 관의 불협화음 속에 한국의 유전체 산업은 쇄국의 길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김태형 상무의 평가다.

유럽의 대항해시대 이후 동아시아 3국은 쇄국과 개항을 반복하며 근대의 아침을 맞이하게 됐다. 지금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개항은 시대적 조류였으나, 당시의 관점으로 생각하면 쇄국정책에도 타당한 이유는 존재했다. 특히 조선은 1636년 병자호란 이래 수세기 동안 사대교린의 테두리 속에 쇄국정책을 고수했고, 1863년 흥선대원군의 집권 이후에는 ‘척양척왜’라는 기치 아래 철저히 쇄국했다. 이후 1876년 병자수호조약으로 어쩔 수 없이 쇄국의 빗장을 풀게 된 조선의 운명이 어땠는지는 역사가 잘 기록하고 있다. 중국은 서양과의 교역이 가장 활발했던 국가였지만, 명나라 이래 ‘하이진’이라 불린 강한 쇄국정책을 실시했다. 중국 또한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적 침탈에 오랫동안 신음해야 했음은 역사에 기록돼 있다.

일본에도 흔히 메이지유신 이전 200년의 쇄국 기간이 존재했다. 하지만 쇄국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건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이며, 제도적 의미에서의 쇄국은 없었다는 게 최근의 주류적 견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이 기독교 등의 종교는 엄격하게 금지했지만, 나가사키의 데지마섬 등의 통로를 통해 서양의 과학기술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특히 네덜란드와의 교류를 통해 17세기 이후 유럽의 근대과학 저술들이 보급됐고, <해체신서>라는 해부학책의 대유행을 거치며 이미 18세기 일본엔 ‘난학’이라는 새로운 학풍이 학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메이지유신을 통한 국내체제 정비와 서양 과학기술의 도입을 통한 국력의 증강이, 이후 일본 제국주의 확산의 기반이 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과학기술과 산업의 국제화는 기본

해외에 오래 살다 보면,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라는 말을 비웃게 된다. 캐나다처럼 IT의 발전이 더딘 국가조차 외국에서 세금 신고하는 일이 아주 간단한데, 해외 거주 한인들은 아직도 각종 정부발급서류를 떼기 위해 영사관을 방문하거나 울화통 터지는 정부 웹사이트에서 시간을 낭비해야 한다. 지난 20여년간 국내의 전문가들이 지속적으로 비판해왔지만, 인터넷 정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자국의 정부 웹사이트에 접속하기 위해 국내 휴대폰을 로밍해 해외에서 사용해야 하는 현실, 한국은 결코 인터넷 강국이 아니다.

쿠팡, 카카오, 배달의민족 같은 유니콘 기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들이 모두 내수용 기업이기 때문이다. 쿠팡으로 해외배송을 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카카오톡의 서비스 중 해외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건 채팅이나 통화뿐이다. 이게 왜 문제인지는 한국의 직구족들이 애용하는 알리익스프레스나 아마존을 보면 된다. 중국기업 알리바바와 미국기업 아마존을 통한 해외배송은 이제 한국에선 일상이 됐지만, 해외에서 쿠팡으로 주문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의 인터넷 기업들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테두리를 한반도로 상정하고 성장을 준비하고 있다. 쿠팡, 카카오, 배달의민족 모두 해외에서 거주하는 한국교포들에겐 아무 의미 없는 서비스일 뿐이다.

오래전 한 대기업의 회장이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로 인기를 얻었다. 그후 수십년이 지났는데, 한국의 모든 관심사는 한반도 안으로 좁혀져 가고 있다. 선진국이라며 ‘K’로 장식된 홍보물을 도배하면서도 대통령 후보 중에 국제적 감각을 지닌 사람은 단 한명도 없는 나라, 이웃국가 중국과 일본을 무시하면서도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과학기술자 한명 없고, 몇몇 대기업 외에는 외국인이 아는 기업 하나 없는 나라, 국가의 미래인 과학기술과 산업 분야에서 갈라파고스에 갇힌 한국이 다시 쇄국의 길을 걷는 건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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