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수주 세계 1위’에 빛나는 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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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 태어난 나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는 과정과 함께 30대가 됐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란 게 아직도 어색하게 느껴지는데,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어릴 적 본 광고가 떠오른다.

‘한국의 선박’ 기념우표 / 우정사업본부

‘한국의 선박’ 기념우표 / 우정사업본부

안테나가 달린 골드스타 텔레비전 화면에 망망대해가 펼쳐졌다. 그 위로 큰 선박이 물살을 가르며 빠르게 지나갔다. 이런 문구가 뜨고 성우가 읽어줬다. ‘선박 제조 세계 1위.’ “아버지, 저게 사실이에요?” 공익광고인지 기업광고인지에서 나온 저 장면이 거짓말같이 느껴졌다.

우정사업본부는 선박 4종을 소재로 한 기념우표 67만2000장을 9월 15일 발행했다. 원유운반선, 컨테이너선, 벌크선, 쇄빙 LNG운반선 등 상업용 선박이 우표에 담겼다. 박종석 우정사업본부장은 “이번 기념우표 발행을 통해 세계 1위인 우리 조선업의 기술력을 확인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실제로 조선업은 오랜 시간 한국의 자부심 그 자체였다. 1990년대 중반에 부동의 1위 일본을 제치고 선두로 뛰어올라 십수년간 점유율 1위를 지켰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이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2016년에는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고, 조선·해운업이 기반 산업인 부산·울산·경남 지역 경기가 얼어붙었다. ‘수출 1위’에 올랐던 2010년 무렵 20만명을 넘던 고용인력도 2018년 무렵에는 10만명 수준으로 반토막났다. 불황이 이어지면서 조선사들은 구조조정을 통해 인력을 계속 줄여왔다. 수많은 가정이 타격을 입었다.

조선업계에서는 2020년을 전 세계 선박수주량 1위를 되찾은 뜻깊은 해로 본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또다시 주춤했던 해운업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시 살아나자, 올해는 선박 공급이 오히려 부족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국내 조선업계는 수주량 기준으로 올해 1분기 수주 1위, 6개월 연속 세계 1위(올해 3월 기준)를 달성했다. 고부가가치 선박과 친환경 연료 추진 선박 경쟁력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친환경 연료 추진 선박의 경우 2019년부터 전체 발주량 대비 수주 비중이 60~70% 후반대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2016년 이후 조선업 위기의 해법으로 ‘친환경 선박시장 개척’을 제시해왔는데, 국내 대형 조선사들은 2018년에 신규 발주된 LNG선 수주를 사실상 ‘싹쓸이’했다.

수주 랠리가 이어지고 있는 건 기쁜 소식이지만, 일자리 감소세는 아직 반등하지 못했다. 매일경제의 지난달 보도를 보면 5월 말 기준 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3사 직원수는 3만7845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500여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를 늘린 회사는 한 곳도 없었다. 지역의 하청업체들도 계속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지금의 아이들은 풍요로운 ‘선진국’에서 자라지만, 그동안 부의 불평등은 커져만 갔고 대다수 일자리의 질도 점점 나빠지고 있다. 조선업 사정이 나아지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우표에서 빛나는 큰 배들이 희망이 돼줄까.

<최미랑 뉴콘텐츠팀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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